덕이 있다-
사람이 좋다 이런것은 객관화 시켜서 볼 수가 없고, 결국 사람들의 평론등이 이를 결정하는것인데, 따라서 이 시기는 인물평이 굉장히 널리 퍼졌으며 또 중요했습니다.
삼국지를 보면 어떤 인물을 평가하고, 그 평가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것을 자주 볼 수 있지요. 후한을 건국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호족세력들은 나중에 이르면 사인(士人)들이 되었습니다. 자연히 사인들이 가지는 여론을 주도하는 힘 같은것은 막대했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창업 군주인 광무제 유수는 낙양의 태학에서 공부하던 사인 출신입니다.
햇병아리 사인들은 자연히 이름 높은 사인들을 칭송하게 되고, 유명한 사인들의 이름은 널리 퍼지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 삼군(三君)
두무(竇武), 유숙(劉淑), 진번(陳蕃)
* 팔준(八俊)
이응(李膺), 순익(荀翌), 두밀(杜密), 왕창(王暢),
유우(劉祐), 위랑(魏朗), 조전(趙典), 주우(朱宇)
* 팔고(八顧)
곽임종(郭林宗), 종자(宗慈), 파숙(巴肅), 하복(夏馥),
범방(范滂), 윤훈(尹勳), 채연(蔡衍), 양척(羊陟)
* 팔급(八及)
장검(張儉), 잠질(岑晊), 유표(劉表), 진상(陳翔),
공욱(孔昱), 원강(苑康), 단부(檀敷), 적초(翟超)
* 팔주(八廚)
도상(度尚), 장막(張邈), 왕고(王考), 유유(劉儒),
호모반(胡母班), 진주(秦周), 번향(蕃嚮), 왕장(王章)
3군은 세상이 추앙할만한 사람들이며, 팔준은 뛰어난 인재들을 말했고, 팔고는 덕행으로서 사람들을 이끌며, 팔급은 사람을 인도하여 세상이 추종하는 인물에 도달했으며, 팔주는 재물로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들을 살펴본다면
삼군
두무 ─ 두무는 두융의 고손자인데, 두융은 저 광무제 유수에게 땅을 넘겨준 일종의 건국 원훈 중에 한명입니다. 대단한 명문가로, 이미 이전에 태후를 배출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두씨는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가, 환관들에게 크게 당했었죠. 한서를 쓴 유명한 역사가 반고가 연류되서 죽었던게 그때 일입니다.
두무는 바로 그런 집안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무의 딸은 후한 황제 환제의 황후이니, 황후를 두 명이나 만들어낸 가문이 바로 두씨였습니다. 1차 당고의 금이 벌어질 당시, 환관 세력과 사인 세력 사이에서 조정을 하며 일을 수습했지요.
두무의 딸은 훗날 황태후가 되었고, 두무는 이때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천하 사인들의 대표의 위치에 선 두무는 다른 삼군 중에 한명인 진번의 의견을 듣고 환관 세력의 일소를 노렸으나, 오히려 환관들에게 발려버렸죠. 2차 당고의 금떄 자살하고 맙니다.
진번 ─ 진번은 삼공 중 하나인 태위까지 되었던 인물입니다. 진번을 처음 추천한 사람은 이고인데, 이 이고는 황제인 순제가 유모에게 큰 지위를 주려고 하자 직언으로 이를 만류했고, 후한 외척 간신의 본좌인 양기와 맞서다 제거 당한 엄청난 명망을 가진 인물입니다.
진번은 낙안군의 태수로서는 부정부패를 일소했고, 중앙에서는 환관을 상대로 분투하여 엄청난 명성을 얻었습니다. 외척 간신인 양기가 사람을 보냈을때는 오히려 양기의 하인을 떄려죽였습니다. 환관들은 진번을 죽이고 싶어도 그의 명성이 너무 높아서 감히 손을 대질 못했는데, 두무와 함께 환관 세력 일소를 노리다 2차 당고의 금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유숙 ─ 유숙은 유씨 종실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으로 명성을 날린 인물입니다. 천거를 받았지만 관직을 안나갔고, 황제였던 환제가 강제로 데려와서 억지로 상서에 호분중랑장을 시킬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환관을 그만 등용하라고 상서한것이 명성을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팔준
이응 ─ 이응은 팔준에 속했지만 그 명성과 인기는 삼군에 맞먹었던 인물입니다. 환관에 맞선 사인들의 대표라고 볼 수도 있으며, 지방에 있을때는 부패한 관리와 호족을 모조리 숙청했고 군대를 이끌고 선비족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학문의 후진을 양성하고, 환관에 연줄이 있는 사람들을 건들다 오히려 처벌을 받은적도 있지만 덕분에 명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십상시 장양의 동생 장삭을 사형시키는 엄청난 일도 벌였습니다.
이에 이응의 이름은 온 천하에 퍼졌고, 사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 중에 이응을 흠모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인들은 그를 만나거나 초청을 받는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여겼고, 이응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을 "등용문"이라 불렀는데,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나 당고의 금때 사형당합니다.
두밀 ─ 두밀은 이응과 더불어 환관 세력을 격렬하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역시 2차 당고의 금때 사망했습니다. 8고의 일원이었던 범방이 2차 당고의 금때 죽게 되었을때, 범방의 어머니가 "이제 이응, 두밀과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무엇이 두려우냐?" 라고 하였을만큼 어마어마한 명성을 자랑하던 거물 사인이었습니다.
왕창 ─ 왕창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던 사인인데, "천하의 모범은 이원례(李元禮: 이응)이고, 강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진중거(陳 仲擧:진번) 이며, 천하의 준수한 자는 왕숙무(王叔 茂 : 왕창) 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팔급의 일인인 유표를 가르친 인물입니다.
왕창의 손자는 조조의 부하였던 왕찬인데, 왕찬이 채옹의 집에 오자 채옹 역시 상당한 명성을 날림에도 불구하고 신발까지 거꾸로 신고 허겁지겁 나가 "왕공의 손자다! 나는 그만 못하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팔고
범방 ─ 범방은 1차 당고의 금이 벌어질때, 가장 먼저 고문대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고문은 엄청나게 지독했고, 그 이상으로 수치스러워 사인들의 자존심을 상처입혔습니다. 지독한 고문에 여러 사인들은 절개를 잃고 허튼 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범방은 끝까지 고문을 견뎌냈다고 합니다.
2차 당고의 금이 벌어질때도, 범방은 체포 조서를 가진 하급 관리가 오자 울면서 자진해서 출두했다고 합니다. 현령은 그런 범방의 모습을 보고 아예 인수를 풀고는 "함께 도망칩시다."라고 제안했지만, 범방은 손을 내저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끝나는 일이오."
범방은 그대로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범방의 어머니는 위에 쓴대로 "이제 너는 이응, 두밀과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 죽어도 무슨 여한이 있겠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요.
"이미 명성을 얻었는데, 오래 살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 어찌 둘 다를 얻을 쏘냐."
후한서를 쓴 범엽은 이 일을 기록하면서 "아들은 그 죽음에 승복하였고, 어머니는 그 의를 기뻐하기에 이르렀다. 아아, 장하도다!" 라고 찬탄하면서, 또한 깊은 슬픔으로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같은 인물들이 있었는데, 어찌 후한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파숙 ─ 하북성 사람인 파숙은 스스로 처벌을 받기를 원했던 인물입니다. 관청의 현령은 자기도 벼슬을 버릴테니, 차라리 같이 도망치자고 했지만 파숙은 끝까지 자신을 법대로 처리해주길 바랬다고 합니다.
팔급
유표 ─ 유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삼국지의 군웅 중에 한명이기도 하지요. 그는 왕창에게 학문을 배웠고 스스로 어려서부터 지식으로 이름이 높았고, 다스리고 있던 형주도 대단히 학문적이고 평화로운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있는동안은 말입니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굳이 쓸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팔주
장막 ─ 조조를 뒤통수를 친것으로 유명하지요. 의협심이 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모반 ─ 호모반의 자는 계피이고, 태산군 사람인데 재물을 가볍게 보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고 합니다. 집금오 벼슬을 하고 있었던 듯 한데, 원소가 반동탁 연합군을 일으키자 동탁에 의해 원소를 설득하러 떠났습니다.
물론 원소가 설득될리는 없고, 원소는 역시 평판이 좋은데다 자기 편이었던 하내태수 왕광에게 호모반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호모반은 왕광의 누이동생의 남편이었으니, 사이가 애매했습니다. 호모반은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고, 왕광은 호모반의 자식들을 껴안고 울었지만 호모반은 그대로 처형되었습니다.
이들의 면모를 보면, (명성의 급이 더 높을 수록) 환관들과 대립하다 죽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인들은 대부분 호족이고, 따지고보면 외척도 호족에 들어갈텐데, 이를테면 두무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호족 vs 환관의 대립이 되는 것이지요.
사인으로 발전한 호족에 비해, 환관들은 꺼리는것도 없고 평판따위도 신경쓰지 않는 존재들이라 두 세력은 처음부터 완전히 대립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환관들이 강해진것은 황제가 외척을 처리하면서 환관들이 급부상했기 때문인데, 그 이전까지 환관이 열후가 되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지만 환관이 열후가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환관중에서도 삼군처럼 레전드급 명성을 가진 환관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정중이었죠. 외척 두씨가 전횡을 부릴때, 황제의 손발이 되어 이를 해결하여 환관 역사상 최초로 열후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중 본인은 항상 겸양했고 사양했으며 겸손한, 말 그대로 좋은 충신이었습니다. 더구나 열후가 된것은 두씨 토벌후 10년이 지난후였습니다.
채륜도 있습니다. 종이를 발명(보는 시각에 따라서 제지기술 발전)하여 인류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로, 용정후라는 열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식읍은 200호였죠.
그 후의 환관들은 이렇게 겸양하는 태도를 찾아볼수 없는 안면몰수 밖에 없었습니다. 외척 염씨 일족을 물리친 19명의 환관들은 모두 열후가 되었는데, 그중 가장 높은 사람은 무려 1만호를 꿀꺽했습니다. 외척 양기를 물리친 다섯명의 환관들도 권력을 독식했습니다.
환관의 권력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켜준것은 순제 4년인 135년의 일입니다. 후한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이 해는 특기할만 합니다.
햇병아리 사인들은 자연히 이름 높은 사인들을 칭송하게 되고, 유명한 사인들의 이름은 널리 퍼지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 삼군(三君)
두무(竇武), 유숙(劉淑), 진번(陳蕃)
* 팔준(八俊)
이응(李膺), 순익(荀翌), 두밀(杜密), 왕창(王暢),
유우(劉祐), 위랑(魏朗), 조전(趙典), 주우(朱宇)
* 팔고(八顧)
곽임종(郭林宗), 종자(宗慈), 파숙(巴肅), 하복(夏馥),
범방(范滂), 윤훈(尹勳), 채연(蔡衍), 양척(羊陟)
* 팔급(八及)
장검(張儉), 잠질(岑晊), 유표(劉表), 진상(陳翔),
공욱(孔昱), 원강(苑康), 단부(檀敷), 적초(翟超)
* 팔주(八廚)
도상(度尚), 장막(張邈), 왕고(王考), 유유(劉儒),
호모반(胡母班), 진주(秦周), 번향(蕃嚮), 왕장(王章)
3군은 세상이 추앙할만한 사람들이며, 팔준은 뛰어난 인재들을 말했고, 팔고는 덕행으로서 사람들을 이끌며, 팔급은 사람을 인도하여 세상이 추종하는 인물에 도달했으며, 팔주는 재물로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들을 살펴본다면
삼군
두무 ─ 두무는 두융의 고손자인데, 두융은 저 광무제 유수에게 땅을 넘겨준 일종의 건국 원훈 중에 한명입니다. 대단한 명문가로, 이미 이전에 태후를 배출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두씨는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가, 환관들에게 크게 당했었죠. 한서를 쓴 유명한 역사가 반고가 연류되서 죽었던게 그때 일입니다.
두무는 바로 그런 집안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무의 딸은 후한 황제 환제의 황후이니, 황후를 두 명이나 만들어낸 가문이 바로 두씨였습니다. 1차 당고의 금이 벌어질 당시, 환관 세력과 사인 세력 사이에서 조정을 하며 일을 수습했지요.
두무의 딸은 훗날 황태후가 되었고, 두무는 이때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천하 사인들의 대표의 위치에 선 두무는 다른 삼군 중에 한명인 진번의 의견을 듣고 환관 세력의 일소를 노렸으나, 오히려 환관들에게 발려버렸죠. 2차 당고의 금떄 자살하고 맙니다.
진번 ─ 진번은 삼공 중 하나인 태위까지 되었던 인물입니다. 진번을 처음 추천한 사람은 이고인데, 이 이고는 황제인 순제가 유모에게 큰 지위를 주려고 하자 직언으로 이를 만류했고, 후한 외척 간신의 본좌인 양기와 맞서다 제거 당한 엄청난 명망을 가진 인물입니다.
진번은 낙안군의 태수로서는 부정부패를 일소했고, 중앙에서는 환관을 상대로 분투하여 엄청난 명성을 얻었습니다. 외척 간신인 양기가 사람을 보냈을때는 오히려 양기의 하인을 떄려죽였습니다. 환관들은 진번을 죽이고 싶어도 그의 명성이 너무 높아서 감히 손을 대질 못했는데, 두무와 함께 환관 세력 일소를 노리다 2차 당고의 금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유숙 ─ 유숙은 유씨 종실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으로 명성을 날린 인물입니다. 천거를 받았지만 관직을 안나갔고, 황제였던 환제가 강제로 데려와서 억지로 상서에 호분중랑장을 시킬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환관을 그만 등용하라고 상서한것이 명성을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팔준
이응 ─ 이응은 팔준에 속했지만 그 명성과 인기는 삼군에 맞먹었던 인물입니다. 환관에 맞선 사인들의 대표라고 볼 수도 있으며, 지방에 있을때는 부패한 관리와 호족을 모조리 숙청했고 군대를 이끌고 선비족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학문의 후진을 양성하고, 환관에 연줄이 있는 사람들을 건들다 오히려 처벌을 받은적도 있지만 덕분에 명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십상시 장양의 동생 장삭을 사형시키는 엄청난 일도 벌였습니다.
이에 이응의 이름은 온 천하에 퍼졌고, 사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 중에 이응을 흠모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인들은 그를 만나거나 초청을 받는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여겼고, 이응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을 "등용문"이라 불렀는데,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나 당고의 금때 사형당합니다.
두밀 ─ 두밀은 이응과 더불어 환관 세력을 격렬하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역시 2차 당고의 금때 사망했습니다. 8고의 일원이었던 범방이 2차 당고의 금때 죽게 되었을때, 범방의 어머니가 "이제 이응, 두밀과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무엇이 두려우냐?" 라고 하였을만큼 어마어마한 명성을 자랑하던 거물 사인이었습니다.
왕창 ─ 왕창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던 사인인데, "천하의 모범은 이원례(李元禮: 이응)이고, 강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진중거(陳 仲擧:진번) 이며, 천하의 준수한 자는 왕숙무(王叔 茂 : 왕창) 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팔급의 일인인 유표를 가르친 인물입니다.
왕창의 손자는 조조의 부하였던 왕찬인데, 왕찬이 채옹의 집에 오자 채옹 역시 상당한 명성을 날림에도 불구하고 신발까지 거꾸로 신고 허겁지겁 나가 "왕공의 손자다! 나는 그만 못하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팔고
범방 ─ 범방은 1차 당고의 금이 벌어질때, 가장 먼저 고문대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고문은 엄청나게 지독했고, 그 이상으로 수치스러워 사인들의 자존심을 상처입혔습니다. 지독한 고문에 여러 사인들은 절개를 잃고 허튼 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범방은 끝까지 고문을 견뎌냈다고 합니다.
2차 당고의 금이 벌어질때도, 범방은 체포 조서를 가진 하급 관리가 오자 울면서 자진해서 출두했다고 합니다. 현령은 그런 범방의 모습을 보고 아예 인수를 풀고는 "함께 도망칩시다."라고 제안했지만, 범방은 손을 내저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끝나는 일이오."
범방은 그대로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범방의 어머니는 위에 쓴대로 "이제 너는 이응, 두밀과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 죽어도 무슨 여한이 있겠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요.
"이미 명성을 얻었는데, 오래 살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 어찌 둘 다를 얻을 쏘냐."
후한서를 쓴 범엽은 이 일을 기록하면서 "아들은 그 죽음에 승복하였고, 어머니는 그 의를 기뻐하기에 이르렀다. 아아, 장하도다!" 라고 찬탄하면서, 또한 깊은 슬픔으로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같은 인물들이 있었는데, 어찌 후한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파숙 ─ 하북성 사람인 파숙은 스스로 처벌을 받기를 원했던 인물입니다. 관청의 현령은 자기도 벼슬을 버릴테니, 차라리 같이 도망치자고 했지만 파숙은 끝까지 자신을 법대로 처리해주길 바랬다고 합니다.
팔급
유표 ─ 유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삼국지의 군웅 중에 한명이기도 하지요. 그는 왕창에게 학문을 배웠고 스스로 어려서부터 지식으로 이름이 높았고, 다스리고 있던 형주도 대단히 학문적이고 평화로운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있는동안은 말입니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굳이 쓸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팔주
장막 ─ 조조를 뒤통수를 친것으로 유명하지요. 의협심이 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모반 ─ 호모반의 자는 계피이고, 태산군 사람인데 재물을 가볍게 보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고 합니다. 집금오 벼슬을 하고 있었던 듯 한데, 원소가 반동탁 연합군을 일으키자 동탁에 의해 원소를 설득하러 떠났습니다.
물론 원소가 설득될리는 없고, 원소는 역시 평판이 좋은데다 자기 편이었던 하내태수 왕광에게 호모반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호모반은 왕광의 누이동생의 남편이었으니, 사이가 애매했습니다. 호모반은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고, 왕광은 호모반의 자식들을 껴안고 울었지만 호모반은 그대로 처형되었습니다.
이들의 면모를 보면, (명성의 급이 더 높을 수록) 환관들과 대립하다 죽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인들은 대부분 호족이고, 따지고보면 외척도 호족에 들어갈텐데, 이를테면 두무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호족 vs 환관의 대립이 되는 것이지요.
사인으로 발전한 호족에 비해, 환관들은 꺼리는것도 없고 평판따위도 신경쓰지 않는 존재들이라 두 세력은 처음부터 완전히 대립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환관들이 강해진것은 황제가 외척을 처리하면서 환관들이 급부상했기 때문인데, 그 이전까지 환관이 열후가 되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지만 환관이 열후가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환관중에서도 삼군처럼 레전드급 명성을 가진 환관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정중이었죠. 외척 두씨가 전횡을 부릴때, 황제의 손발이 되어 이를 해결하여 환관 역사상 최초로 열후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중 본인은 항상 겸양했고 사양했으며 겸손한, 말 그대로 좋은 충신이었습니다. 더구나 열후가 된것은 두씨 토벌후 10년이 지난후였습니다.
채륜도 있습니다. 종이를 발명(보는 시각에 따라서 제지기술 발전)하여 인류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로, 용정후라는 열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식읍은 200호였죠.
그 후의 환관들은 이렇게 겸양하는 태도를 찾아볼수 없는 안면몰수 밖에 없었습니다. 외척 염씨 일족을 물리친 19명의 환관들은 모두 열후가 되었는데, 그중 가장 높은 사람은 무려 1만호를 꿀꺽했습니다. 외척 양기를 물리친 다섯명의 환관들도 권력을 독식했습니다.
환관의 권력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켜준것은 순제 4년인 135년의 일입니다. 후한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이 해는 특기할만 합니다.
바로 이해, 조정에서는 환관이 작위를 양자를 들여서 이을 수 있게 만든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환관이 아무리 강해도 죽으면 끝이었지만, 이제 그 힘이 이어질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조조가 누구의 집안인지 생각해보면, 결국 이것이 후한을 망하게 했습니다.
후한 후기의 환관중에서 레전드 환관은 조조의 할아버지 조등입니다. 갓파더라는 표현도 있던데, 정말 적절합니다. 조등은 그야말로 최강의 환관으로 어떤 환관들도 감히 손도 대지 못할 정도였지만, 반면에 청류파의 고명한 사인들과도 뜻밖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압도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겸손하게 굴었고, 양대 세력의 사이에서 항상 적절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미 전대의 대간신인 양기와도 인연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세대가 높은 사람이었죠.
후한 후기의 환관중에서 레전드 환관은 조조의 할아버지 조등입니다. 갓파더라는 표현도 있던데, 정말 적절합니다. 조등은 그야말로 최강의 환관으로 어떤 환관들도 감히 손도 대지 못할 정도였지만, 반면에 청류파의 고명한 사인들과도 뜻밖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압도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겸손하게 굴었고, 양대 세력의 사이에서 항상 적절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미 전대의 대간신인 양기와도 인연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세대가 높은 사람이었죠.
재밌는건 남들 품평을 해주는 인물 평 하는 인물들도, 또 거기서 평 잘하는 인물들이 명성으로 나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상위에 있던 사람이 허소와 곽허라는 인물이었습니다.
허소가 바로 허자장으로, 조조가 그리 품평을 받으려 했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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