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자랑스러워했던 송사전(宋史筌) 영인본 등이 있나요?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각별한 관심을 갖고 정리하다가, 여러 명망 있는 신하들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하였던

송사전(宋史筌) 150권이 현재 영인본이나 혹은 현존하고 있는 건가요?

정조의 홍재전서中
의례(義例) 1권, 목록 1권, 본기(本紀) 8권, 지(志) 47권, 세가(世家) 2권, 열전(列傳) 91권이다. 탈탈(脫脫)의 《송사(宋史)》는 허술하여 준거(準據)가 없으며 체례(體例)는 불합리하고 문장의 기술은 번잡해서 정사(正史) 중에서 가장 볼품이 없다. 홍무(洪武) 연간에 송렴(宋濂) 등에게 지시하여 《송사》를 개수(改修)하도록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고, 그후에 주공서(周公叙)가 개찬(改撰)을 건의하였으나 역시 끝내지 못하였다. 왕앙(王昂)의 《송사보(宋史補)》와 왕수(王洙)의 《송원사질(宋元史質)》은 약간 수정하기는 했지만 대강만을 적은 것이어서 구체적이지 못하다. 왕유검(王惟儉)의 《송사기(宋史記)》와 가유기(柯維騏)의 《송사신편(宋史新編)》은 그래도 괜찮은 사서(史書)라고들 하지만 이 책들은 모두 일실(逸失)되고 전하지 않으니, 송조(宋朝)의 사서(史書)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춘궁(春宮)에서 일강(日講)하는 틈틈이 《송사》를 찬수(纂修)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구사(舊史)를 가져다 놓고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읽으면서 일일이 산절(刪節)을 계속하여 대충 책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니 이것이 《송사전(宋史筌)》의 초본(初本)이다. 번잡한 글을 산절하기만 하고 새로 써넣지 않는 것으로 하나의 의례를 삼아서 지속적인 필삭(筆削)을 거쳐 원고를 바꿔 다시 쓰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고 나니 남은 것은 겨우 전체의 2, 3할뿐이었다. 즉위 이후로는 정사를 보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춘궁의 빈료(賓僚)를 역임한 신하들에게 분담하여 편찬하도록 하고, 다시 사실을 수집하고 의례를 정해 주었다. 정해진 의례에 따르다 보니 규모가 차츰 확대되었고 삭제하고 수정하는 부분도 점점 많아져서 현각(賢閣)에서 편찬하였던 원고(原藁)의 모습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신해년(1791, 정조15)에 원고를 관학(館學)의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선사(繕寫)와 대교(對校)를 거친 후 곧 비부(祕府)에 내려 보관하게 하였다. 역사서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역사서를 산절(刪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송사전》은 애초에는 《송사》를 산절하려는 의도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보니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서를 쓴 결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우선 묶어서 보관해 두고, 바로 인행(印行)하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는 간행된 것으로 되어 있고, 일부 외국 열전이 청장관전서 등에 수록되어 국역되었는데
원문 텍스트를 꼭 보고 싶네요. 
송사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자서전에 
송사전 이야말로 중국의 정사 송사를 빼버리고 그 자리에 넣을 만한 천고의 서적이다고 극찬하였는데요.

현재에 영인이 되었거나, 텍스트화 되었거나, 원문을 보는 것이 가능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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