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년 7월 #1 첫 전투인 찰지수 전투 2달전의 아골타의 말
금사 태조 1114년 기사中
[若以阿疏與我,請事朝貢.]
[만약 아소를 내게 보내 준다면, 조공으로 섬길 것이다.]
*찰지수 전투 : 1114년 9월에 찰지수에서 벌어진 대요 최초의 전투
여진 2500 vs 요 7000 (중앙군2천+거란,해족3천+발해2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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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년 1월 #3 전투인 달로고성 전투 직전의 아골타의 말
요사 천조제 1115년 1월 기사中
[阿骨打遣賽刺復書, 若歸叛人阿疏, 遷黃龍府於別地, 然後議之.]
[아골타가 새자(賽刺/賽剌새랄)에게 다시 서신을 보내와,
만약 배반자 아소(阿疏)를 보내 준다면, 황룡부(黃龍府)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겠다 하니,
그런 연후로 의논하였다.]
*달로고성 전투 : 1115년 1월에 달로고성에서 벌어진 3번째 전투
여진 1만 vs 요 27만 (기병 20만, 보병 7만)
*2번째 전투는 출하점 전투 : 1114년 11월 출하점에서 벌이진 두번째 전투
여진 1만 vs 요 보기병 10만
(여진 1만중 초기에 아골타를 따라 기습작전에 돌입한 병사수는 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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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년 9월 #4 황룡부 함락후의 아골타의 말
요사 천조제 1115년 9월 기사中
[女直複遣賽剌以書來報:若歸我叛人阿疏等,即當班師.]
[여진이 다시 새랄(賽剌)을 파견해 서신을 보내 알리기를
만약 나에게 배반자 아소등을 보낸다면, 즉시 군을 돌릴 것이다.]
*황룡부 대치전 : 1115년 8월 금이 황룡부를 선제 공격하자, 천조제가 최초로 거란 기병을 총동원하여 친정하였으나,
선봉장 야율장노가 회군하여 반란을 일으킴. 이후 천조제도 회군하였고, 아골타는 황룡부를 함락함.
여진 2만 vs 요 31~50만 (요사 최소 31만~송막기문 5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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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만 돌려주면 전쟁은 없을 것이다!>
대체 아소가 누구인데 그토록 아골타는 아소를 원했을까요?
아골타는 거란과의 전쟁 명분을 두가지로 역설했습니다.
1. 흘석렬부 추장 아소를 거란이 송환치 않음
2. 매조공로를 거란 관리가 이용시 폐악이 심함
→ 즉 모욕과 굴욕
기타 개인적인 여러가지 이유도 다수 있으나 가장 큰 명분중에 하나가 바로 아소의 송환을 거란이 거부한다는 것이였지요.
(천조제가 연회에서 술주정하고 아골타에게 춤추라고 모욕을 준일. 쌍육 놀이를 하다가 죽이려고 한일.
형의 상중에 거란인이 교만하게 군일. 부조로 들어온 말을 빼앗아 간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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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태조 1114년 여진의 기사中 (여진의 출정식)
即奉后率諸將出門,舉觴東向,以遼人荒肆,不歸阿疏,並己用兵之意,禱于皇天后土。
곧 모후를 받들어 제장(諸將)을 거느리고 문을 나서, 동쪽을 향해 술잔을 들며,
요나라 사람이 황사(荒肆/거칠고 방자함)하고, 아소를 돌려 보내지 않아,
몸소 용병으로 물리친다는 뜻을, 황천후토(皇天后土/하늘과 땅의 신령)에게 기원하였다.
致遼之罪,申告于天地曰:
「世事遼國,恪修職貢,定烏春、窩謀罕之亂,破蕭海里之衆,有功不省,而侵侮是加。
罪人阿疏,屢請不遣。今將問罪于遼,天地其鑒佑之。」
요의 죄를 이르러, 천지에 신고(申告/거듭 고함)하여 말하길
「요국의 일에 있어, 직공(職貢/공물,조공)을 정성을 다해 닦았으며, 오춘(烏春)과 와모한(窩謀罕)의 난을 평정하였고,
소해리(蕭海里)의 무리를 격파하였는데, 공이 있음을 아니 살피고, 침모(侵侮/침해하고 업신여김)로서 이에 더해졌다.
죄인 아소(阿疏)를, 여러번 청하였으나 아니 보냈다.
이제 장차 요에 문죄(問罪/죄를 물음)하려 하니, 하늘과 땅이 보살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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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요와 왕래하던 사신이 뜸해진 것도, 아소 관련 때문이었지요.
금사 태조 1114년 기사中
康宗嘗以不遣阿疏爲言,稍拒其使者。太祖嗣節度,亦遣蒲家奴往索阿疏,故常以此二者爲言,終至于滅遼然後已。
강종이 일찍이 (요나라가) 아소(阿疏)를 보내지 않는다고 말하며, 점차 그 사자를 거부하였다.
태조가 절도사를 이어받자, 역시 포가노(蒲家奴)를 파견하여 아소를 수색하게 하였는데,
항상 이 연고로서 두사람(오아속,아골타)이 (아소 송환을) 말하니, 요를 멸한 연후(然後)에야 끝나게 되었다.
금사 태조 1114년 6월 기사中
至是,復遣宗室習古乃、完顏銀朮可往索阿疏。習古乃等還,具言遼主驕肆廢弛之狀。
이에 이르러, 다시 종실(宗室) 습고내(習古乃)와 완안은출가(完顏銀朮可)를 보내 아소를 수색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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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아소는 누구일까요?
아소(阿疏)는 성현수(星顯水) 흘석렬부(紇石烈部) 사람인데, 아버지 아해(阿海)는 아골타의 할아버지 오고내 때부터 흘석렬부 발근(勃堇)이였습니다.
발근은 추장 바로 아래로 추정되는 여진 고유 관명이지요.
아해는 아골타의 아버지 핵리발에게 복속되었는데, 아해를 따라 아소도 완안부에 들락거리게 되지요.
아소는 특히 아골타의 할머니 당괄씨(唐括氏/소숙황후昭肅皇后)의 귀여움을 받았는데,
완안부에 오게 되면 한 달을 머무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즉 아골타와는 어릴 때부터 상당히 교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네요.
아해가 죽자 아소가 발근을 이어 받았고, 곧이어 부족장을 두고 다른 발근과 경쟁하였는데,
당시 완안부 족장이던 아골타의 숙부 파자숙이 아소의 손을 들어주어, 아소가 흘석렬부 추장이 됩니다.
헌데 아골타의 숙부 영가가 완안부 족장이 되자 아소가 드디어 배신하게 됩니다.
영가가 특별히 귀한 말도 주고 회유해 보지만, 아소는 거부하지요.
아소는 성을 빠져나와 요에 구원을 요청하러 갑니다. -_-; 대체 뭘 믿고 배신한 건지
그러지 않아도 요에서는 여진족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완안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아소의 요청이 있자 관리를 보내 아소성을 공격중인 병력을 물리라고 합니다.
이에 영가의 부하 핵자가 꾀를 부려, 아소성 인근에 주둔하면서 아소성의 군복?으로 갈아 입습니다.
그리고는 요사자와 함께 온 영가의 부하 호로와 막손의 말을 찔러 죽입니다.
즉, 싸움을 거는쪽이 아소측이라는 착각을 아소가 잘못했네 하게 됩니다.
하여 요 사신은 돌아갔고, 다시는 오질 않았지요. 이런 틈에 영가는 아소성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아소성은 영가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근거지를 잃고만 아소는 그대로 요에 머물게 되지요.
헌데 뒤를 이은 형 오아속이나 아골타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을 텐데 뒷통수를 쳤으니
아소가 굉장히 미웠나 봅니다.
계속 요에 <아소를 보내주세요~>라고 청하게 되지요.
헌데 요는 계속 이를 묵살합니다.
오아속과 아골타는 이를 모욕이라고 느꼈나 봅니다.
여진과 거란이 전쟁 중에도 아골타는 3번이나 아소를 돌려주면
군을 물리겠다고 말하지만, 끝내 요 천조제는 묵살합니다. 돌려주지 그랬니
만약 돌려줬다면 판국이 어찌 돌아갔을까요?
더욱 상황이 우스운건, 요금 전쟁 개시 8년후 1122년 아래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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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태조 1122년 4월 기사中
闍母、婁室招降天德、雲內、甯邊、東勝等州,獲阿疏而還。
도모(闍母)와 누실(婁室)이 천덕주(天德州), 운내주(雲內州), 영변주(甯邊州), 동승주(東勝州)등을
초항(招降/타일러 항복시킴)하여, 아소(阿疏)를 사로잡아 돌아왔다.
금사 태조 1122년 7월 기사中
壬午,希尹以阿疏見杖而釋之。
임오일(壬午日)에, 희윤(希尹)이 아소(阿疏)를 장(杖)을 때리고 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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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의 각지가 금에게 무더기로 항복하면서, 아마 숨어 있던 아소를 거란인이 금군에 인도한 모양입니다.
헌데 그토록 대국과의 전쟁 불사를 외치면서까지 그토록 미워하던 아소를
3개월만에 곤장 몇대 때리고는 풀어주게 됩니다. @_@ 천조제 대체 뭘 했던 거냐?
더욱더 우스운 건 금군에 사로잡힐 때 아소가 한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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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아소 열전中
天輔六年,闍母、婁室略定天德、雲內、寧邊、東勝等州,獲阿疏。
軍士問之曰:「爾爲誰?」曰:「我破遼鬼也。」
천보(天輔) 6년에, 도모(闍母)와 누실(婁室)이 천덕주(天德州), 운내주(雲內州), 영변주(寧邊州), 동승주(東勝州)등을
경략하여 평정하였을 때, 아소(阿疏)를 사로잡았다.
군사(軍士)가 물어 말하길
「너는 누구냐?」
대답하기를
「나는 파요귀(破遼鬼/요를 깨트린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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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아골타 : 순순히 아소를 넘긴다면~
- 천조제 : 어이가 없네. 너 따윈 파리채면 충분함.
- 아 소 : 천조제 폐하님 짱짱맨!
- 아골타 : 전쟁이닷!
- 천조제 : 어 이게 아닌데...
- 아 소 : 우리 태조 황제 폐하! 짱짱맨!
나 사실 2중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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