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의 목숨을 구해낸 윤언이

 윤관의 아들 윤언이는 윤관의 원수가 되어 여진 정벌을 개시하던 1107년 12월에 17세의 나이로

음직으로 원수부의 사령(使令/잡무를 보는 관원), 즉 아버지 윤관의 당번병?이 됩니다.
1108년 1월, 여진의 첫 반격이 시작된 병목 가한촌(加漢村) 전투에서, 윤관의 8천 병사가 풀숲에 숨은 여진군의 기습을 받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데요, 이때 원수 윤관의 주위에는 10여명 밖에 없어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윤언이가 날쌔고 용감하게 적을 상대해서 시간을 벌었고, 이틈에 척준경의 결사대 10 여기가 돌진해서
여진인 10여명을 죽였고, 뒤이어 최홍정의 원군이 당도하여 윤관과 오연총의 목숨을 구하게 되지요.

이때 담당 관리, 포상을 담당하는 관리인지, 당번병을 담당하는 관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담당 관리가 윤언이에게 포상을 추천하게 됩니다.^^;

효도도 하고, 상도 받고!! 조금 낫 간지럽긴 하지만 ㅎㅎ
진사에 1등으로 뽑힐 만큼 머리도 좋았지요.

윤언이묘지명(尹彦頤墓誌銘)中
건통(乾統) 7년(예종 2, 1107) 12월 부음(父蔭)으로 벼슬에 올랐으며, 갑자기 동북면 행영병마사(東北面 行營兵馬使)가 상주한 바에 따라 사령(使令)이 되어 나갔다. (적이) 이미 가한촌(加漢村)을 공격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놀랐었는데, 적의 군사가 갑자기 공격해 오자 군졸과 장수들이 궤멸되어 어지러워졌다. 공이 홀로 원수(元帥)를 모시고 날쌔고 용감하게 적을 쫓아내어 공을 이루니, 담당 관리가 포상을 추천하였다. 원수는 곧 공의 아버지이다.
계사년(예종 8, 1113)에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되고, 갑오년(예종 9, 1114) 봄에 진사시(進士試)에 1등으로 뽑혔다.

P.S) 김부식이 윤언이를 매우 싫어합니다 ^^ 인생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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