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114년 9월 완안부 직속병 1천과 인근 부족의 병력을 규합한 아골타는
총 2500의 병력으로 대요전쟁의 서막을 엽니다.
첫 타겟은 여진과 거란의 각장(榷場/무역시장)이 벌어지던 영강주(甯江州)입니다.
영강주는 현재 길림성 부여현이라고 하네요.
금사에서는 찰지수 전투 이후에 영강성을 함락한 것으로 나오고
요사와 거란국지에서는 영강주를 공격하고 찰지수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나옵니다.
종합하여 제 생각을 적어 보자면
1114년 9월 초순에 여진군 영강주 진입
→ 요회성(寥晦城) 함락 (요사에서는 이를 영강주 전투로 인식함)
→ 찰지수(紮只水) 전투
→ 영강성(甯江城) 함락
이렇게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각설하고, 이곳이 아골타의 첫 타겟이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타여진(打女真) 입니다.
풀어 해석하면 <여진놈은 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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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국지 천조황제 1114년 기사中
先是,州有榷場,女真以北珠、人參、生金、松實、白附子、蜜蠟、麻布之類為市,州人低其直,且拘辱之,謂之「打女真」。
州既陷,殺之無遺類,獲遼兵甲馬三千,退保長白山之阿朮火。
阿朮火者,女真所居之地,以河為名也。
이에 앞서, (요의 영강) 주(州)에 각장(榷場/송, 고려, 거란, 여진 등이 무역하는 장)이 있었는데,
여진(女真)은 북주(北珠/혼동강, 송화강 등에서 나오는 진주), 인삼(人參), 생금(生金/정련되지 않은 금), 송실(松實/소나무 열매), 백부자(白附子/노랑돌쩌귀로 진통제 등의 약재로 쓰임), 밀랍(蜜蠟/꿀에서 짜내는 기름), 마포(麻布/삼베) 종류(種類)를 장사하였는데,
(요의 영강) 주(州) 사람이 그 값을 낮게 쳐주며, 또한 (멱살을) 잡고 욕하니,
이를 일컫어「타여진(打女真/여진인은 때려야 한다) 」이라 하였다.
(요의 영강) 주(州)가 이윽고 함락당하자, 무리를 남김없이 죽였으며,
요(遼)의 병갑마(兵甲馬/병기와 갑주을 갖춘 말) 3천을 획득하고,
장백산(長白山)의 아출화(阿朮火)로 퇴보(退保/퇴각하여 유지함)하였다.
아출화(阿朮火)라는 것은, 여진(女真)이 거주하는 땅으로, 하천(河川/압록강)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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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장에서 영강주 거란족이 여진족이 물품을 팔러 오면, 시세보다 값을 적게 쳐주고
따지면 멱살을 잡고 욕하는 게 다반사였나 봅니다.
거란족들이 여진족을 우습게 보며 <여진놈들은 때려야 정신을 차리지> 이러니
여진족들이 속으로 부글부글 하였겠지요.
결과는 여진족이 복수하여 영강주 사람을 모조리 학살하게 됩니다.
대요 전쟁 초기에 여진군이 거란을 함락할 당시의 묘사를 보면 거의 학살 수준입니다.
여진족 병사들이 거란족 어린아이를 창에 꿰고 술 먹고 놀았다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P.S) 평상시 약하다고 무시하면 훗날 천배로 당할 수도 있습니다.
P.S2)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무식한 선생님들이 한국놈은 때려야 정신을 차린다라며
학생들을 마구 때렸는데, 이게 일제의 문화인지, 군사문화인지 뭐 그랬겠지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당시에는 참 당연하게 여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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