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를 살피다 보니,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호랑이를 단독으로 죽인 효자들에 대한 기록이 있어
간략하게 올립니다.
고려사 열전 효우(孝友) 中
최누백(崔婁伯)
최누백은 수원(水原) 아전 상저의 아들이다. 상저가 사냥 갔다가 범한테 물려 죽었다.
그때 최누백의 나이는 15세였는데도 그 범을 잡으려 하였다. 그 모친이 못가게 하여 최누백은 말하기를
「아버지의 원수를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
도끼를 메고 범의 발자국을 밟아 가니 범은 벌써 배불리 먹고 누워 있었다.
누백이 바로 앞으로 나서서
「네가 내 아버지를 먹었으니 나도 마땅히 너를 잡아먹을 터이다.」라고 꾸짖으니
「네가 내 아버지를 먹었으니 나도 마땅히 너를 잡아먹을 터이다.」라고 꾸짖으니
범은 꼬리를 치며 넙죽 엎드렸다. 갑자기 도끼로 내려치고 그 배를 갈라서 범의 고기는 항아리에 담아서 개울 바닥에 묻고 그 부친의 뼈와 고깃점을 골라 모아서 그릇에 넣어 홍법산(弘法山) 서쪽에 매장하였다.
그 곁에 묘려(墓廬)를 세워 놓고 지켰다. 하루는 졸고 있는데 상저가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시(詩)를 읊었다.
가양나무 헤치고서 효자 묘려 다달으니 가슴속엔 느낌 많고 기쁜 눈물 끝없어라!
날마다 흙 져다가 무덤을 꾸리나니 그 정성 뉘 알손가?
밝은 달 청풍뿐이네 생전엔 봉양하고 사 후엔 묘 지키니 뉘라서 너의 효성 시종이 없다더뇨!
시를 읊고 나서 간 곳 없었다. 거상이 끝난 후 묻었던 범의 고기를 꺼내서 다 먹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의종 때에 여러 관직을 거쳐 기거사인(起居舍人) 국자사업(國子司業) 한림학사(翰林學士) 벼슬을 하였다.
군만(君萬)
군만은 광대(優人)였다. 공양왕 원년(1389년)에 그의 부친이 밤중에 범에게 물려갔다.
군만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는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산으로 들어갔다.
범은 그 부친을 다 먹어 버리고 산모퉁이에서 엎드려 있다가 군만을 보고 으르렁대며 앞으로 와서 먹은 뼈마디를 토해 놓았다.
군만은 그 범을 단번에 쏘아 죽이고 칼을 뽑아 그 배를 가르고 부친의 해골을 추려 모아서 불에 태워 매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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