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소년왕이 지상이 말을 들어 금을 쳤다면

 지상이 말을 듣고 소년왕이 거병하였다면 이길수 있으려나요?

 
우선 연표를 살펴보죠.

8

7

송 정벌 명함

8

17

종한 서경 출발

8

18

누실이 송 장호군 격파 

8

20

종망 보주 출발, 야율탁, 나야가 송을 웅주, 중산에서 격파

9

3

종한 태원 함락

9

8

종망 송 충사민 정형에서 격파

11

3

종한 태원에서 개봉으로 출발

11

5

종망 진정에서 개봉으로 출발

11

12

살랄답 천정관 격파

11

14

종한 융덕부 함락

11

19

종한 택주 함락, 종망 황하 도하

11

25

회주 함락, 종망 개봉에 이름

윤11

1

종망이 송군을 격파

윤11

2

종한 개봉에 당도

윤11

25

개봉 함락

윤11

30

흠종 청성으로 옮김

12

2

흠종 종한에게 항복, 개봉으로 돌아감

2

6

휘종, 흠종 평민으로 강등

2

7

휘종 청서성에 입성

3

27

청서에서 휘, 흠종 북행시작

4

27

종한, 종망, 휘,흠종 끌고 경사도착

 
걸매가 2번째 송 정벌을 명한 게 1126년 8월 7일
종한이 서경을 출발한 게 8월17일
선봉 누실이 송 장호를 격파한 게 8월18일
종망이 보주를 출발한 게 8월20일
종망이 황하를 도하한 게 11월19일
종망이 개봉에 도착한 게 11월25일
종한이 개봉에 도착한 게 윤11월 2일
즉 종한이 서경에서 출발해서 개봉에 도착한 날수가 103일
종망이 보주에서 출발해서 개봉에 착한 날수가 94일
 
윤11월2일부터 종한이 이끄는 6만 금군이 개봉 공격한지 23일 만에
윤11월 25일 개봉 함락

종한이 길이와 환이를 끌고 청성에서 회군을 시작한 게 1127년 3월27일
종한이 길이와 환이를 끌고 금 수도에 도착한 게 4월27일, 총 30일
 
변방의 보고란 것이 1126년 8월~1127년 5월 사이에 왔다는 것인데,
1127년 1월 이후에 온 보고라면, 이미 송은 상황 종료된 상태고
종한이의 기병 6만이 회군하는데 길면 30일, 빠르면 20일 정도?

1127년 1월 이전에 온 보고라면 송군이 발목을 잡는다는 가정하에 길면 2달
2달 동안에 다음이 가능하다면 금 정벌도 꿈은 아닐 겁니다.
1. 완안부를 턴다.
2. 걸매를 사로잡는다.
3. 사로잡혔던 연희를 옹립하여 거란국을 재흥시킨다.
4. 6만 종한이 이끄는 정예 기병을 깨부순다.

우선 완안부를 털려면 2가지 루트가 필요합니다.
1. 동북쪽으로 이동하여 갈라전 → 두만강 생여진 → 송화강 생여진 격파
   → 정예병이 대송 전쟁에 투입되었다 하더라도, 25여 개 정도 되는 부족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완안부까지 가야 함,
      한 부족당 최대 500 정도 병력을 낸다 하면 약 1만 여진군,
      요동에서 올수 있는 거란족, 해족, 발해족, 한족 원군 병력 수만.
   → 가장 현실적인 루트
 
2. 서북쪽으로 이동하여 갈소관 → 동경 → 송화강 생여진 격파
   → 구 요나라의 성들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진군해야 함. 시간 오래 걸림
   → 일이 잘못되면, 요동에서 서쪽은 생여진 잔여군, 동쪽은 종한 본군 기병 6만,
       남쪽은 숙여진 10여 부족의 잔여군. 요동의 거란, 발해, 해족, 한족에 둘러싸일 가능성 매우 높음.
 
완안부를 턴다는 전제하에서 걸매를 잡을 수 있습니다.
완안부에 근접해 걸매가 직접 남은 군을 이끌고 고려군과 친정하여야만 가능성이 높아질 듯하네요.
 
완안부를 털고 다음에 할 일이 연희를 수중에 넣는 일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할 듯싶네요. 연희를 다시 요나라 황제에 앉히고 전국에 격문을 보내는 것이지요.
 
또한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종한이 이끄는 정예 금기병 6만을 격파해야만 합니다.
이 당시 금군 6만은 무적이다고 금사에서 평할 만큼 절대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최대 17만....... 이건 문종 같은 태평성대가 오랫동안 이어져야 가능할 것 같은 수치이고,
이미 곡식 보유량도 동북9성 전투에서 상당량 소비되었고, 요 몇 년간 기근이 발생하여
그리 넉넉하지는 못 했을 겁니다.
해서 많으면 10만 잡고, 종한의 최정예병 6만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것도 가을 추수가 끝난 후 10월~3월 사이에 결판을 내야만 하는데요, 가능할려나 ㅎㅎ
 
아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17만으로 여진 2만을 못 이겼다는 것은 약간 상황이 다르긴 합니다.
17만으로 시작한 동북9성 전투는 초기에는 성공적이었고, 
1108년 3월까지 군정 6466호, 백성 69000호를 이주하고는
이후로는 철저하게 수성전이었고, 상주 정규군도 1만 내외가 9성에 분산 배치되었고,
본토에서 출격하는 병력 1~4만으로 각 성을 오가며 수비에 치중하였지요.

애당초 추수 이후10월~3월까지가 고려군 17만 병 총동원 가능 기간입니다.
나머지 기간의 출정은 고려의 정규군 4만과 군정에서 충당해야 하는 것이지요.
 
동북9성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요충지를 틀어막고 군정을 배치하고, 백성들을 집단 이주시켜
축성을 하고, 축성이 끝나면 개간을 시작하며, 대군은 철수한다가 기본 전략이니.....
 
즉 1127년 농번기가 시작된 5월까지 소년왕이 머뭇거렸다는 것은,
변방의 보고가 사실이었어도, 실상 뒤통수 작전은 시행하지 못했을까 싶네요.

시행했다 하더라도, 2달 동안에 완안부를 털어야 하는데..............
귀양보낸 마스터 준경이라도 다시 써먹어야 할 텐데.............



소년왕 : 고려왕 인종 왕해
걸매 : 금 황제 태종 오걸매
연희 : 요 황제 천조제 야율연희
길이 : 송 상황제 휘종 조길
환이 : 송 황제 흠종 조환
지상이 : 고려 좌정언 정지상
부식이 : 고려 추밀원부사 김부식
종한이 : 금 개국공신 야율종한 (아골타의 사촌 조카)
종망이 : 금 개국공신 야율종망 (아골타의 둘째 아들)
관이 : 송나라 추밀원사 광양군왕 (환관) 동관
할배 자겸이 : 고려 국공 인종의 외조부 이자겸
마스터 준경이 : 고려 평장사 척준경
어의양반 : 고려 태의 최사전
후장 : 송나라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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