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여 제발 여진의 뒤통수를 쳐줄 텐가?

 때는 바야흐로 1126년 북방의 여진족이 거란족의 연희를 본진에 끌고 온 지 한 달도 채 안되어, 

여진족의 추장 걸매는 갑자기 창끝을 남쪽 한족 동네 길이에게 돌리게 되는데,

이유인즉슨, 길이 동맹하자고 해놓고 막판에 ally를 풀려고 했기 때문인 것이라는데....

여진 기병의 말발굽 소리만 들어도, 모세의 기적처럼 자동으로 흩어지는 한족 보병을 
목도한 길이는 드디어 말씀하시었다.

"에라이 나는 도교나 연구할 테야"

이리하여 도군태상황제(道君太上皇帝) 가 되신 길이
나 몰라라 본진 커맨드를 버리고 수염난 환관 관이과 함께 여행을 떠나시게 되는데.......

남겨진 길이의 아들 환이는 본진이 포위당하자, 멀티에서 병력이 오든 말든 일단 항복하고 보는데....

"님아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일단 화해하죠?'

돈발로 여진족을 물리친  환이는 이제는 바다 건너 고려족에게 손을 내미는데?

<고려여 제발 여진의 뒤통수를 쳐줄 텐가?>

아 이를 어이 하랴~
이때 고려족에는 포동포동한 귀여운 소년왕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있었음을...

할배 자겸이는 지가 왕이 되려고 노망이 났고,
마스터 준경이는 할배에게 놀아나고 있고.

간신히 어의양반의 도움을 받아 막 할배를 내쫓은 찰나에

환이의 편지를 들고 후장-_-이 고려에 도착하는데.......

고려사절요 1126년 7월 기사中
가을 7월에 송 나라에서 합문지후 후장(侯章)ㆍ귀중부(歸中孚) 등의 60여 명을 보내 와서 조서로 이르기를, 
“짐이 태자로 있은 지 10여 년간 감히 태만하고 안일하게 지낸 일이 없었더니, 도군태상황제(道君太上皇帝)께서 제위에 있은 지 오래되어서 만기(萬機)의 번거로움에 싫증이 나시어, 마침내 양위할 뜻을 말씀하시니 짐이 사양하였으나 명을 받지 못하고 드디어 제위에 올랐노라. 높으신 조종조의 기업과 지중하신 상황의 부탁을 깊이 생각하여, 밤낮으로 조심스러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금 나라 사람이 무도하게 곽약사(郭藥師 송 나라 장수)의 배반을 기회로 연산(燕山)을 함몰하고, 국경에서 소란을 일으켜 수도에까지 미쳤다. 짐이 즉위하자마자 이런 놀라운 일을 당하여, 왕에게도 미처 알리지 못하였노라. 짐이 생각건대, 왕은 대대로 충효를 닦으며 책봉을 받들어 역사가 오랜 변경의 나라로 오랫동안 나라의 은혜를 받아 왔다. 우리 할아버지 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사절을 명하여 국교를 닦을 적에 예의와 성의가 아울러 극진하여, 정의는 골육지친과 같으며, 의리는 임금과 신하의 사이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선왕 도군태상황제 때에도 예물을 후히 보내고 대우도 특별하였다. 짐이 생각건대, 중국과 왕과는 멀리 요해(遼海)가 가로막혀 있는데도 은혜와 예절이 이와 같으니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어려운 고비를 당할 때에 똑같은 적개심으로 적을 물리치는 데 힘써 주기를 바란 것뿐이다. 왕의 나라가 금 나라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거리가 수백 리도 되지 않는데, 그들의 소굴을 소탕하여 중국에 보답하지 못하니, 이것이 어찌 역대 왕조에서 특별히 대우하던 본의이겠는가.
금 나라 사람이란 일찍이 왕에게 신하 노릇을 하던 해변의 조그만 종족으로 하늘을 배반하고 신을 거역하여 거란을 쳐 없애고 드디어 중국을 업신여겨 횡포가 차츰 심해지니, 가령 그들이 뜻대로 된다면 왕에게 무슨 덕이 있겠는가. 고립무원의 군사로 깊이 쳐들어 왔을 적에 응당 쳐 없애 버려야 했지만, 짐은 그들이 숙왕(肅王)을 위협하여 인질로 데려갔기 때문에 다만 군사에게 명하여 국경 밖으로 몰아내었다. 장차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그만 족속의 죄를 문책하려 하노니, 왕은 마땅히 군사를 독려하여 서로 안팎이 되어 토벌을 행하라. 왕에게 사특함이 있는 자를 다스려 바로잡고 포로를 조정에 바쳐 중국에서 베푼 여러 세대의 은혜에 보답함은 큰 충성이며, 혼란하고 어두운 것들은 공격하고 횡포한 자를 쳐 없애어 사막 밖에 위엄을 펴는 것은 큰 의(義)이며, 영토를 확장하여 그 소굴을 뒤엎어 교만하고 신하 노릇 하지 않는 오랑캐를 앙갚음하는 것은 큰 위엄이다. 한 번 거병하면 세 가지를 모두 얻을 터인데, 왕은 무엇을 꺼려 하지 못하는가. 높은 관작과 후한 물품도, 짐은 왕에게 아무것도 아끼지 않을 것이니, 왕은 노력하여 주기를 바란다." 하였다.

편지 요약
울 아빠가 본진 버리고 도망가는 바람에 내가 황제가 됐음.
니네는 옛날부터 우리랑 친했잖아?
우리가 니네한테 퍼준 게 한 두번이야?
이게 다 이럴 때를 위해서 그런 거거든.
저 여진족 놈들은 원래 니네들 부하 아닌감?
아 물론 나 혼자서도 간단하게 해결이 되긴 하는데...
그땐 동생이 인질로 잡혀서 말이야 험!험!
자 쉽게 애기할게.
잘들어 소년왕~ 자, 일단 여진족의 뒤통수를 쳐! 그러면 뒷일은 이 형이 다 알아서 함
그럼 여진족네 땅 동생에게 줄게.
꼭 연락해. 꼭이야~

후장이 다시 소년왕에게 글을 올리는데

고려사절요 1126년 7월 기사中
후장(侯章)이 사관에서 또 왕에게 글을 올리기를, “저희들이 올 때에 황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선대 때부터 요순의 도를 행하여 근본을 힘쓰고 교화를 돈독히 하여 귀국과 수호하여 온 지 거의 2백 년 동안 예절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고, 우리 도군태상황제가 이어받아서 은총이 더욱 두터웠는데, 근래에 나쁜 무리들의 발의에 의해 모두 국경의 분쟁을 일으켜, 금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발호하여 명분 없는 군사를 일으키고 오합지졸을 모아서 준비가 없는 틈을 타서 습격함으로써 우리 중국을 소요하게 하여 위협과 노략질을 함부로 감행하였습니다. 이때에는 왕을 떠받드는 군사 수백만이 있었으나 대신이 건의하기를, '기왕 황하의 남쪽에서 공격하지 않았으니 대하(大河)의 북쪽에서 맞아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깊숙이 들어온 뒤에 대군이 한번만 출동하여도 모조리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지금의 황제가 즉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효제와 공경과 검소로써 밤낮으로 정무를 부지런히 관장하였으며, 어진이에게 책임을 맡기고 재능 있는 사람을 등용하고 신의를 숭상하고 의를 생각하여 그들을 쳐 없애 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금 나라 사람도 허물을 뉘우쳐 화의를 고하고, 길을 빌려 사막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므로, 주상께서 금과 비단을 주어 호군하는 밑천을 삼게 하였는데, 다시 만족을 모르는 욕심을 품어 하북(河北)의 관진(關鎭)을 노리고 있으니 사람과 신이 함께 노할 일입니다. 사세가 어쩔 수 없게 되어, 가을의 서늘한 때를 기다려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고자 하는데, 이런 때를 당하여 귀국에서 어찌 앉아서 보고만 있겠습니까. 만일 국경으로 군사를 인솔하여 함께 이 도적을 소탕한다면, 이는 무궁한 우호를 맺는 것이요, 인하여 성공할 것이니, 특별히 사신을 보내어 오게 된 것입니다.

후장의 말 요약
님아~ 우린 200년 동맹국인거 알죠?
원래 우리 군대가 수백만임. 여진족 그건 발에 때도 안됨.
하지만 워낙 우리 황제님께서 착하셔서 ㅠ.ㅠ
너~무 착하셔서 여진족 애들 불쌍해서 돈 주고 돌려보냈음.
헌데 애네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까불고 있음.
단도직입적으로 올 가을에 여진족 놈들 후장 아니 뒤통수를 까주기 바람

이에 소년왕이 말씀하시길

고려사절요 1126년 7월 기사中
“본국이 선조 때부터 이제까지 상국을 섬겨 공손하게 순종하는 정성을 감히 태만히 한 적이 없었으며, 신종황제께서 비록 멀리 요해(遼海)가 가로 막고 있으나 하늘의 밝은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듯이 사신을 내려보내어 국교를 닦으시고 은총과 예의가 더욱 두터웠으며, 도군태상황제께서 이어받들어 대우하심이 한층 더하였고, 예물도 평상시의 배나 되니, 실로 백 번을 태어나도 갚기 어려운 은혜입니다. 생각건대, 천지같이 크신 덕으로 그 보답함을 책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감격한 마음은 그 만분의 일이라도 갚기를 원하였습니다. 지금 엎드려 사신이 받들어 전하는 조서를 보니, 금 나라 사람이 무도하고 횡포가 더욱 심하여, 바야흐로 천하의 군사를 일으켜 조그마한 무리를 문죄하려 하는데, 소국으로 하여금 군사를 독려하여 거느리고 서로 안팎이 되어 토벌을 행하라 하니, 저는 처음부터 받들어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생각건대, 금 나라 사람은 처음에는 본래 우리나라에 예속되어 있으며 항상 약탈을 일삼아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변방을 겨우 안정시켜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쳐들어오면 징계하여 방어하고 물러가면 방비하고 지켜 그들을 견제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숙왕(肅王 숙종) 때에, 추장 영가(盈歌)란 자가 힘으로 여러 오랑캐를 제압하고 위력으로 모든 부족을 항복 받아 백두산을 노려보고 자주 우리 국경을 침범하더니, 오달(吳達)과 혜노(惠奴)가 계속하여 일어나 흉한 세력이 날로 떨쳤습니다. 얼마 전에 포로가 되었던 사람이 금 나라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상국의 사신이 오랑캐의 영토에 왔는데 예절이 항복하러 온 사신 같아 북요를 대하는 전례와 같았다.' 하며, 또 변방 사람의 말을 들으니 금 나라 사람이 거란을 함몰하고 드디어 상국의 경계를 침범하였다 합니다. 황제가 즉위하신 직후이기에 쳐 없애지 않고 그들이 화의를 청하자 그것을 허락하였다 하니, 중국과 같은 큰 힘으로도 이러하온데, 하물며 우리나라와 같이 고립된 처지에서 장차 무엇을 믿겠습니까.
금년 4월에 특별히 사절을 보내서 수호하여 벌써 여러 달이 지났는데, 오히려 회보가 없습니다. 생각하건대, 본국은 천재가 잦아서 국고가 다 없어져 모든 적을 방어할 기구가 하나도 남은 것이 없으므로, 바야흐로 공인(工人)들을 모아 부흥시킬 것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이제 조서를 내려 간곡히 유시하시니 이는 실로 옛 수치를 씻고 큰 은혜에 보답할 시기입니다만, 잔폐한 군사로써 새로 이긴 적군을 당해 낸다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하니, 다만 군사를 훈련하고 병장기를 수리하였다가, 상국의 군사가 와서 저쪽 국경을 제압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감히 힘을 다하여 서로 안팎이 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천자의 위력을 힘입어 오랑캐의 무리를 평정하는 데 협조하는 것이 나의 원하는 바로서 하늘이 실로 이를 감시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사명을 받들어 복명하는 날에 마땅히 이 뜻으로 보고하여 주십시오." 

소년왕 말씀 요약
황제 님말을 듣고 눈물 흘릴뻔했음. ㅠ.ㅜ
여진족 그놈들 원래 우리 쫄따군였긴 한데, 지금은 아님
솔직히 까고 이야기하면, 우리 요 몇년 난리통이라 가진 게 없음.
그래서 여진족 애들에게도 화해 편지 보냈음.
BUT 님이 원한다면 언제든 준비하고 있겠음.

이어 소년왕은 후장편으로 환이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고려사절요 1126년 7월 기사中
후장(侯章)이 돌아갈 때 왕이 표문을 붙여 통보하였다. 그 대략에, “생각하옵건대, 작은 제후국으로 대대로 두터운 은덕을 입어 항상 상국에 보답하는 데 충성을 다하기를 원하였으니, 어찌 근왕의 일에 힘쓸 생각이 없겠습니까. 문득 조서를 받아, 읽고서 다만 눈물이 흐름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즉시 명령을 따라 군사를 동원하여야 하지만, 다만 저희 나라는 본래 넉넉하지 못한데다가 근래에 재난을 겪어 저축하였던 것이 모두 타 버렸으니, 장차 물자와 식량을 저축하고 병장기를 수선한 후에야 동원할 수 있으며, 창졸간에 도모하기는 실로 어렵습니다. 더구나 적들의 세력이 모질고 완강하여 경솔히 건드릴 수 없으며 오랑캐의 땅이 험난하니, 어찌 쉽사리 멀리 쳐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황제의 명령이 문에 임하니 회피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상국의 군사가 적을 제압함을 기다려 조금이라도 위령(威靈)을 돕고자 합니다." 하였다.


소년왕 편지 요약
나 준비하고 있겠음.
대신 님이 먼저 선공해야 함.
그럼 내가 뒤통수를 치겠음


이렇게 여진족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작전이
실제로 벌어질 뻔하였는데........................

고려사절요 1127년 5월 기사中
이전에 변방에서 보고하기를, 
“금 나라에서 송 나라를 침범하다가 싸움에 져서, 송 나라의 군사가 승리한 기세를 이용하여 금 나라의 국경에 깊숙이 들어갔다."
하니, 이에 정지상ㆍ김안(金安)이 아뢰기를, 
“시기를 놓칠 수 없으니, 군사를 출동하여 송 나라의 군사와 호응해서 큰 공을 세우고, 주상의 공덕이 중국의 역사에 실려 만대토록 전하게 하소서." 하였다. 
왕이 김인존(金仁存)에게 물으니 아뢰기를, “전해 들은 일이란 항상 사실과 어긋나는 일이 많으니, 뜬소문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강한 적의 노여움을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김부식이 장차 곧 돌아올 것이니, 그를 기다려 진위를 알아보게 하소서." 하였다. 

요약
변방 : 급보요~
소년왕 : 뭔데?
변방 : 한족이 여진족을 털고 있다는 데요.
소년왕 : 헐 진짜?
지상이 : 님아 이건 역사책에 실릴 수 있는 기회임. 만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니까.
           어서 출병하셈. 어서~
인존이 : 님. 소문만 믿고 그럴거임? 좀있음 부식이가 올테니 기달려 보셈.

부식이는 이 전해 그러니까 후장-_-이 송으로 돌아간 1126년 9월에 
환이의 즉위식을 축하하기 위해 송으로 들어갔는데...
그만 종한이의 2번째 개봉 포위전이 벌어져서 온통 난리통이 되니 
길이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다가 1127년 5월에야 되돌아옴.

만약 부식이가 없었고, 소년왕이 지상이 말을 들었다면 
대략 만년에 한번 기록될 만한 사건이 벌어질뻔했음

고려사절요 1127년 5월 기사中
김부식(金富軾) 등이 송 나라의 명주(明州)에까지 갔다가, 
마침 변주(汴州)에 들어와 있는 금 나라의 군사를 만나 길이 막혀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중략)
이때에 부식이 돌아오니, 변방의 보고가 과연 거짓이었다.


출연자
소년왕 : 고려왕 인종 왕해
걸매 : 금 황제 태종 오걸매
연희 : 요 황제 천조제 야율연희
길이 : 송 상황제 휘종 조길
환이 : 송 황제 흠종 조환
지상이 : 고려 좌정언 정지상
부식이 : 고려 추밀원부사 김부식
종한이 : 금 개국공신 야율종한
관이 : 송나라 추밀원사 광양군왕 (환관) 동관
할배 자겸이 : 고려 국공 인종의 외조부 이자겸
마스터 준경이 : 고려 평장사 척준경
어의양반 : 고려 태의 최사전
후장 : 송나라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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