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후삼국 관련 떡밥 하나 날려볼게요.

 때는 진성여왕이 즉위하고 2년(888년)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징효대사께서 [강원도 영월 사자사]에 머물다가, 초적이 일어나자 [경북 상주]로 피난 가십니다. 
사자사는 이후에 초적의 공격을 받고 불타 버렸지요.

경북 상주를 거쳐 경북 문경의 조령에 있다가 진성여왕이 [경기도 음성의 원향사]로 옮기세요 라며 사람을 보냈지만
난 동문들이 있는 [전남 화순의 쌍봉사]로 갈란다 하고는 남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가는 길에 충남 공주성을 지나가다가, 호족 김공휴가 <스님 우리성에서 머무르시지요> 하지만
나는 계속 [전남 화순의 쌍봉사]로 갈란다 하고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김공휴는 사람을 몇 사람 딸려 보내줍니다.

그러다가 전북 금산을 지나는데, 도적떼가 우르르 몰려 듭니다.
[스님 있는 거 다 내 놓으셈] 이럴려는 찰라 
다른 도적떼들이 또 나타나 서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틈에 징효대사는 탈출을 하게 되지요. [아 부처님의 가호로다!]

떡밥1. 888년~890년대 초중반에 전북 일대는 통일되지 못하고 
         어떤 세력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 전남 광주에 도착하십니다. 험난한 이여정을 비문에는 
<한탄스러운 바는 전국 방방곡곡에 초적이 출몰하여 조용한 곳이 없었다. 이러한 위험한 때에 밤을 새워가며 길을 재촉하여>
라고 표현하지요.

광주에 도착한 징효대사를 광주 호족인 김사윤이 맞아줍니다.
광주에 좀 머무르셨는지, 어떻게 소식을 알고 진성여왕이 [광주의 영선사]에 머무세요라고 연락을 취해옵니다.

떡밥2. 888년~890년대 초중반에 전남 광주 일대에 조정의 영이 내려오긴 했다.
             최치원도 893년까지 충남 서산의 태수였으나 893년에 조정에서 최치원을 소환령을 내렸으나 길이 막혀서 못 감

그러자 김사윤은 
<스님 전남 순천 낙안 동림사에 머무시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징효대사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곳은 곧 싸움터가 될 터이니 나는 여기 못 있겠다>

떡밥3. 888년~890년대 초중반에 전남 광주 일대에 전운이 감지되었다.
         아마 광주 동남쪽에 기반을 잡은 견훤이 몰려 올려나 보다.

그러시고는 곧장 배를 타고 서해로 가십니다.
풍랑을 맞아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다행히 경기 남양의 한 포구(평택 근처)에 도착하시어서는
간신히 경기 강화의 은강선원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에 진성여왕은 또 어떻게 아셨는지 스님을 경기 남양주 부수(NO.2 관리) 장연설을 보내 
<스님을 국사로 모십니다. 나라를 밝게 해주세요.>라고 전하게 합니다.

떡밥4. 890년대 중반~897년 이전에 경기 남양주까지 진성여왕의 영이 닿기는 했다.

징효대사님은 한 번에 거절하시고는
<지금 세상이 엉망진창인데, 나 같은 반딧불로는 이 깜깜한 밤을 밝힐 순 없다.
 어두운 현실을 보니 세상사가 모두 싫어졌다. 나 가만히 놔둬>

900년 3월 9일 아침에 징효대사님은 강화의 은강선원에서 열반하십니다.

P.S1) 원문을 보실 분은 

P.S2) 떡밥은 떡밥일 뿐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P.S3) 
1. 떡밥의 주된 내용은 견훤이 거병 초기부터 전남북을 모두 휘어잡지 못하였다.
   892년 견훤이 스스로 임명한 지절도독 전주, 무주, 공주 등의 주군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2. 890년대 초중반까지의 견훤의 세력은 광주를 차지하지도 못하였고, 광주 동남쪽 해안지대의 군현에 머물렀다.
   (서남쪽 여수, 나주, 목포 지역이 아님)
3. 890년대 중반까지 조정의 영이 어느 정도는 지방에 내려오긴 하였다. 다만 길이 거의 막혀 의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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