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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중국인과 일본인의 정신구조는 왜 정반대인가
010. <중국인과 일본인>
011.일본인은 왜 중국의 논리에 휘말렸나
"...상기 책은 1938년 대만 태생으로 1964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과 메이지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태생적인 친일파 황문웅(黃文雄)이 쓴 글이다. 그는 전형적인 친일파로 일본 우익 이상으로 한국과 중국이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며, 그 영혼을 일본 우익에 저당 잡힌 희대의 친일파로 유명하다.
그가 중국과 한국을 비난 하면서 쓴 저서만도 수 십 권은 족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중국 ‘역사교과서’를 철저히 비판한다(韓國,中國「歷史敎科書」を徹底批判する, 小學館文庫, 2001年)’로부터 ‘일본을 함정에 빠트리는 중국,한국의 텇- 날조된 근현대사(‘-日本を陷れる中,韓國の罠-捏造去れた近現代示史, 2002년 德間書店)’, ‘대동아공영권의 정신’, ‘왜곡되어진 조선총독부(歪められた朝鮮總督府)’,‘회복 될 수 없는 한국(立ち直れない韓國)’, ‘한국인의 ‘반일’ 대만인의 ‘친일’’ 등 동 아시아 문제에 얕은 일본 우익사상을 저변에 깔고 오지랖 넓게 참여하며 망령된 소리를 일삼는 인물이다.
특히 ‘날조된 근현대사’라는 저서 속에서는 “중국침략, 일한병합, 남경대학살, 종군위안부 등의 문제에 있어 일본인은 이렇게 속았다!”라면서 중국과 한국에 의한 ‘역사왜곡’ 그 거짓과 음모를 밝힌다고 거창하게 일본 우익을 대변하여 한국과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감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치밀하지 못한 지식으로 한,중,일 문제에 터무니없이 나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수레 앞에 서서 막으려는 우매한 짓)’ 정도 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단, 그의 저서 또한 다작인 것을 감안하면 진짜 그가 혐한류와 혐중류(嫌中流)에 뛰어들어 직접 글을 쓰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오선화처럼 일본 우익인사들에게 매수되어 일부는 그가 직접 썼다고 해도 대부분은 뒤에서 일본 우익 작가가 써 주거나 공저가 대부분일 것으로 판단된다. 어쩌면 그도 매명(賣名-이름을 팜)의 대가로 일본에서 생물적 목숨의 연장을 위해서 손쉽게 빵과 바꾸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특이한 인물로 혐한류에 앞장서는 것은 분명하므로 황문웅이라는 대만출신 친일파도 연구대 상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단순히 중국을 까는 정도를 넘어서, 우익 중에서도 일본 극우나 할 중국침략 부정, 난징대학살 등도 모두 중국인의 날조, 과장, 조작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문제는 당연히(?)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황문웅
<납치, 유괴 문화가 낳은 '강제 연행' 설>
"...그런데, 이 '강제 연행'설을 갖고 일본과 한국의 「반일세력」이 강조하는 것이 "조선인 강제 연행" 이다. 그러나 일한 합방 이후, 그러한 사실은 있을 수 없다. 전후의 역사서에는, 조선인이 일본이나 타지로 이주한 것은 "일본인이 토지를 빼앗았기 때문"이며, 혹은 "강제 연행을 했기 때문이다" 라고 쓰고 있는 것이 많은데, 모두 거짓말이다. 실제로, 19 세기 이후의 인구 유실의 최대 원인은, 이조의 경제, 사회의 붕괴에 있다.
요컨데 '강제 연행' 이라고 하는 유괴, 납치는, 대륙이나 반도의 전통 문화이다.
<'연행' 은 커녕 마음대로 일본에 쇄도한 조선인>
분명히 전시에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에 건너갔다. 그러나 그것을 '강제 연행' 이라고 보는 것은 터무니 없는 실수이다. '연행' 은 커녕 조선인 노동자들은 엄격한 도항규제을 무시하면서까지, 마음대로 일본에 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화도 조약 「메이지 9(1876) 년」
·제1조 "조선국은 자주적인 나라로서, 일본과 평등한 관계에 있다."
... 이럼에도 오늘날 한국에서는, 일본이 조선 침략의 야심을 갖고 있었다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구미열강의 동아침략에 위기감을 안고 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청나라의 속국인 채 만족하여 살아가고 있는 이웃나라 조선이 일각이라도 빨리 각성하여, 청나라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근대개혁을 실시해서, 열강의 식민지화를 면하는 것이 일본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 후 일본은, 일관적으로 이 나라의 내정개혁, 근대화 지원 및 지도를 시도했으나, 궁정은 끊임 없이 “사대주의”에 매달려, 정세에 따라 청나라, 혹은 러시아에 의지하며, 소국 일본을 계속 경시해왔고, 일본을 모방해 근대화를 시도하는 세력을 탄압해 왔다.
그리고 그 때문에 발생한 것이 청일 전쟁이며, 러일 전쟁이다. 청일 전쟁의 결과 독립이 주어진 한국이지만, 삼국간섭으로 러시아에 대항 할 수 없던 일본의 모습을 보자마자, 반도 지배를 획책하는 러시아와 서로 협잡하여 일본의 영향을 배제했기 때문에, 일본은 이미 이 나라가 독립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선을 보호국화해, 두 번 다시 이 나라를 국제적 소요의 근원으로 만들지 않을 방침을 수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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