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걸매 송의 두 황제를 잡았음을 고려에 알려주다.

 고려사절요 1127년 9월 기사中

○ 금 나라의 선경사(宣慶使)로 영주(永州) 관내 관찰사 야율거근(耶律居瑾)과 진주 단련사(秦州團鍊使) 장회(張淮) 등이 왔다. 조서에 이르기를, “하늘의 명을 받들어 굳센 적을 없애고 다시 세운 것은 실로 비상한 일이며, 제후는 짐의 울타리가 되기에 사리상 당연히 알려야 될 것이다.
 당초에 변주(汴州)의 송 나라가 유연(幽燕) 지방을 수복하여 주기를 요청하기에 몰래 바다를 건너가서 수고하고 거듭 이웃 나라로서의 우호를 약속하니, 선황제께서 굽어 간곡한 심정을 긍휼히 여겨 드디어 허락하여 주었는데, 그들은 일찍이 베푼 공덕을 모른 척하고 맹약을 굳게 지키지 않고, 변경하고 망명한 자를 받아들여 원한을 맺고 있었다. 환(桓 송 나라 흠종)이 그대로 계승하여, 길(佶 휘종)이 하던 일을 되풀이하였다. 그런 대로 오랫동안 관대한 태도로 대하였지만, 마침내 잘못을 뉘우칠 줄 몰라 신과 사람이 함께 노여워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장수에게 명하여 한 번 토벌하자, 드디어 소굴이 앉은 자리에서 무너지고 종묘는 지킬 사람이 없어졌으며 아비와 아들이 사로잡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쌓인 감정이 깊었기에 왕조를 바꾸는 일에까지 이르렀다. 나라에는 임금이 없을 수 없으므로 새로 책봉을 내릴 것을 도모하였는데 더구나 백성들이 모두 어진 인물을 그리워하여 다 같이 옛날의 재상을 추대하기에, 이미 금년 3월에 원수부에 명해서 사람을 파견하여 조(趙)씨 왕 부자는 왕족 4백 70여 명과 함께 압송하여 궁궐로 들어오게 하고 따라서 예절을 갖추어 멸망한 송 나라의 태재(大宰)였던 장방창(張邦昌)을 책봉하여 대초(大楚)의 황제로 삼아 금릉(金陵)에 도읍을 정하게 하였노라. 아아! 흉악한 원흉을 잡아들였기에 이를 알리는 것이며, 하늘의 일을 완전히 마쳤으니 마땅히 다 같이 경하할 바이다. 
이제 경에게 의대(衣帶)ㆍ서각(犀角)ㆍ금은ㆍ비단ㆍ피륙 등의 물품을 보내니, 도착되는 대로 받으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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