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사서 원문 그대로가 무쌍 글이라 ㅎㅎ
하였다. 조금 후에 태조가 다시 군사로 하여금 소라[螺]를 불어 군대를 정돈하게 하고는 개미처럼 붙어서 올라가 적진(賊陣)에 부딪쳤다. 적의 장수가 창을 가지고 바로 태조의 후면(後面)으로 달려와서 심히 위급하니, 편장(偏將) 이두란(李豆蘭)이 말을 뛰게 하여 큰소리로 부르짖기를,
“영공(令公), 뒤를 보십시오. 영공, 뒤를 보십시오.”
하였다. 태조가 미처 보지 못하여, 두란이 드디어 적장을 쏘아 죽였다. 태조의 말이 화살에 맞아 넘어지므로 바꾸어 탔는데, 또 화살에 맞아 넘어지므로 또 바꾸어 탔으나, 날아오는 화살이 태조의 왼쪽 다리를 맞혔다. 태조는 화살을 뽑아 버리고 기세가 더욱 용감하여, 싸우기를 더욱 급하게 하니 군사들은 태조의 상처 입은 것을 알 수 없었다. 적군이 태조를 두서너 겹으로 포위하니, 태조는 기병 두어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나갔다. 적군이 또 태조의 앞에 부딪치므로 태조가 즉시 8명을 죽이니, 적군은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태조는 하늘의 해를 가리키면서 맹세하고 좌우에게 지휘하기를,
“겁이 나는 사람은 물러가라. 나는 그래도 적과 싸워 죽겠다.”
하니, 장수와 군사가 감동 격려되어 용기백배로 사람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니, 적군이 나무처럼 서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적의 장수 한 사람이 나이 겨우 15, 6세 되었는데, 골격과 용모가 단정하고 고우며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비할 데가 없었다. 흰 말을 타고 창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달려 부딪치니, 그가 가는 곳마다 쓰러져 흔들려서 감히 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군사가 그를 아기발도(阿其拔都)라 일컬으면서 다투어 그를 피하였다. 태조는 그의 용감하고 날랜 것을 아껴서 두란(豆蘭)에게 명하여 산 채로 사로잡게 하니, 두란이 말하기를,
“만약 산 채로 사로잡으려고 하면 반드시 사람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하였다. 아기발도는 갑옷과 투구를 목과 얼굴을 감싼 것을 입었으므로,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투구의 정자(頂子)를 쏘아 투구를 벗길 것이니 그대가 즉시 쏘아라.”
하고는, 드디어 말을 채찍질해 뛰게 하여 투구를 쏘아 정자(頂子)를 바로 맞히니, 투구의 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는지라, 그 사람이 급히 투구를 바루어 쓰므로, 태조가 즉시 투구를 쏘아 또 정자(頂子)를 맞히니, 투구가 마침내 떨어졌다. 두란이 곧 쏘아서 죽이니, 이에 적군이 기세가 꺾여졌다. 태조가 앞장서서 힘을 내어 치니, 적의 무리가 쓰러져 흔들리며 날랜 군사는 거의 다 죽었다. 적군이 통곡하니 그 소리가 만 마리의 소 울음과 같았다. 적군이 말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므로, 관군(官軍)이 이긴 기세를 타서 달려 산으로 올라가서, 기뻐서 고함을 지르고 북을 치며 함성을 질러,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시켜 사면에서 이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크게 쳐부수었다. 냇물이 모두 붉어 6, 7일 동안이나 빛깔이 변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가 없어서 모두 그릇에 담아 맑기를 기다려 한참 만에야 물을 마시게 되었다. 말을 1천 6백여필을 얻고 무기(武器)를 얻은 것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처음에 적군이 우리 군사보다 10배나 많았는데 다만 70여 명만이 지리산(智異山)으로 도망하였다. 태조는 말하기를,
“적군의 용감한 사람은 거의 다 없어졌다. 세상에 적을 섬멸하는 나라는 있지 않다.”
하면서, 마침내 끝까지 추격하지 않고 이내 웃으며 여러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적군을 공격한다면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될 것이다.”
하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물러와서 군악(軍樂)을 크게 울리며 나희(儺戱)를 베풀고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부르며 적군의 머리[首級]을 바친 것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여러 장수들이 싸우지 않은 죄를 다스릴까 두려워하여 머리를 조아려 피를 흘리면서 살려주기를 원하니, 태조는 말하기를,
“조정의 처분에 달려 있다.”하였다
고려사절요 1380년 9월 기사中
9월 ○ 우리 태조가 변안열 등과 함께 남원에 이르니, 배극렴 등이 와서 길에서 뵈오며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적이 험한 곳에 의지하고 있으니, 나오는 것을 기다려서 싸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다. 태조가 개연(慨然)히 말하기를, “군사를 일으켜 적을 치면서 적을 보지 못한 것이 한이거늘, 이제 적을 만났는데도 치지 않는 것이 옳으냐”하고, 드디어 여러 장수의 부서를 정하고서 밝아 오는 아침에 맹세하고, 동으로 운봉(雲峰)을 넘어 적과 상거하기 수십 리쯤 되는 황산(荒山) 서북에 이르러 정산봉(鼎山峰)에 올랐다. 태조가 길 우편의 험한 지름길을 보고 말하기를, “적이 반드시 이 길로 나와 우리 뒤를 엄습할 것이다. 내가 이 길로 나가겠다” 하였다. 여러 장수는 모두 평탄한 길로 나갔는데, 적세가 매우 날쌘 것을 바라보고 싸우지 않고 퇴각하였다. 해는 벌써 기울었다. 태조가 험한 길에 들어서니, 과연 적의 기예(奇銳)부대가 튀어나왔다. 태조가 대우전(大羽箭) 20개를 쏘고 계속하여 유엽전(柳葉箭)을 50여 발이나 쏘아 모두 그 얼굴에 맞히니, 활시위 소리에 따리 죽지 않는 자가 없었다. 모두 3번을 만나 무찔러 섬멸하였다. 또 땅이 진흙 속이어서 저편과 우리가 함께 그 속에 빠져 서로 엎치락뒤치락하였는데, 나와서 보니 죽은 것은 모두 적이고, 우리 군사는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다. 적이 산에 웅거하고 굳게 지키니, 태조가 군사를 지휘하여 요해처에 나누어 웅거하게 하고, 휘하 이대중(李大中)등 10여 명을 시켜서 도전하였다. 태조가 올려치니 적이 죽을 힘을 다하여 충돌하므로, 우리 군사가 헤어져 쫓겨 내려왔다. 태조가 장사(將士)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말고삐를 단단히 잡아서 말이 넘어지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조금 뒤에 태조가 다시 나팔을 불게하여 군사를 정돈하고, 개미처럼 기어올라 적진에 충돌하였다. 적장 한 사람이 창을 끌고 곧 태조의 뒤로 달려와 매우 위급하였는데, 부하 장수 이두란(李豆蘭)이 말을 달려 크게 부르기를 “영공(令公)은 뒤를 보시오. 영공은 뒤를 보시오”하였으나, 태조가 미처 보지 못하므로, 두란이 쏘아 죽였다. 태조는 말이 화살에 맞아 거꾸러지면 바꿔 타고, 또 맞아서 꺼꾸러지면 또 바꿔 탔으며, 나는 화살이 태조의 왼편 다리를 맞히니 태조가 화살을 빼어 버렸는데, 기운이 더욱 씩씩하여 싸움을 더 급하게 하였다. 군사들은 태조가 부상한 것을 알지 못했다. 적이 태조를 두어 겹으로 포위하였으나, 태조가 기병 두어 사람과 함께 포위를 뚫고 나왔다. 적과 충돌하여 태조가 선 자리에서 8명을 죽이니, 적이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태조가 하늘과 해를 가리켜 맹세하고, 좌우를 지휘하여 말하기를, “겁나는 사람은 물러가라. 나는 적을 죽이겠다.”하니, 장사들이 감동하고 분발하여 용기가 백배해서 사람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적은 박은 듯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 겨우 15·6세 되어 보이는 한 적장은, 얼굴이 단정하고 고우며 빠르고 날래기가 비할 데 없었다.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둘러 달려와서 충돌하니, 향하는 곳마다 쫓기고 쓰러져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우리 군사들이 아기발도(亞只拔都)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하였다. 그 용맹하고 날쌤을 아껴서 두란에게 생포[生擒]하라고 명령 하였다. 두란이 여쭈어 말하기를, “만일 생포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상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 사람이 얼굴까지 갑옷을 입어서 쓸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투구를 쏠 터이니, 투구가 떨어지거든 네가 곧 쏘아라” 하고, 드디어 말을 달려나가며 쏘니, 투구 꼭지를 맞히었다. 투구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니, 그 사람이 급히 바로 썼다. 태조가 곧 쏘아서 또 꼭지를 맞히니, 투구가 드디어 떨어졌다. 두란이 곧 쏘아 죽이니, 이에 적의 기운이 꺾였다. 태조가 몸을 빼쳐 나가 분격하니, 적의 정예 부대가 거의 다 죽었다. 적의 통곡하는 소리는 마치 만 마리의 소가 우는 것 같았으며, 말을 버리고 산으로 오르니, 여러 군사가 승승(乘勝)하여 달려오르며 북을 치고 떠드는 소리가 땅을 움직이는 듯하였다. 사면으로 공격하여 드디어 크게 깨뜨리니, 냇물이 온통 붉어져 6,7일간이나 빛이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마시지를 못하고, 모두 그릇에 담아 오래 가라앉힌 뒤에야 마실 수 있었다. 노획한 말이 1천 6백여 필이며 병기는 무수하였다. 처음에는 적이 우리의 10배였느데, 겨우 70여 명이 지리산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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