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와 그 황족에 대한 주원장의 반응

 모두 명사 태조본기의 내용입니다.




毋肆焚掠妄殺人,元之宗戚,咸俾保全。庶幾上答天心,下慰人望,以副朕伐罪安民之意。不恭命者,罰無赦。


"여러 장수들은 성을 함락해도, 제멋대로 방화, 약탈하거나 망령되게 살인하지 말라. 원의 종실 친척들은 (죽이지 말고) 모두 보전시켜라. 바라건대, 위로는 천심(天心)에 답하고 아래로는 인망(人望)을 위로하여 짐이 죄를 벌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려는 뜻을 도우라. 이 명에 공손히 따르지 않는 자는 벌하여 사면하지 않을 것이다"


步禱山川壇,露宿凡三日,還齋於西廡。辛酉,賚將士,省獄囚,命有司訪求通經術明治道者。壬戌,大雨。壬申,李文忠捷奏至,命仕元者勿賀。諡元主曰順帝。癸酉,買的裏八剌至京師,群臣請獻俘。帝曰:「武王伐殷用之乎?」省臣以唐太宗嘗行之對。帝曰:「太宗是待王世充耳。若遇隋之子孫,恐不爾也。」遂不許。又以捷奏多侈辭,謂宰相曰:「元主中國百年,朕與卿等父母皆賴其生養,奈何為此浮薄之言?亟改之。」乙亥,封買的裏八剌為崇禮侯


산천단(山川壇)에 걸어가서 기도하며, 노숙(露宿)하길 무릇 3일이었다.

신사일, 장수와 군사들을 위로하고, 옥의 죄수들을 살피며, 유사에게 명하여 경전에 통달하고 치도에 밝은 자를 물어 구하도록 하였다.

임술일, 큰 비가 내렸다.

임신일, 이문충의 승첩보고(捷奏)가 이르자, 원 조정에 벼슬한 자들은 하례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원주(元主)의 시호를 순제(順帝)라 하였다. 

계유일, 매적리팔라가 경사에 이르니, 주변의 신하들이 포로를 바치도록 청하였다. 황제가 말하길 "(주나라) 무왕이 은을 정벌할 때, 이 방법을 썼는가?"라 했다. 중서성의 신하가 당태종은 일찍이 이를 행했다고 대답했다. 황제가 말하길 "태종은 왕세충(王世充)을 기다린 것 뿐이다. 만약 수나라 자손을 만났다고, 두려워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 하고 끝내 불허하였다. 

또 승첩 보고에 과장된 말이 많다 하여, 재상에게 이르길 "원이 중국에서 1백년동안 주인이 되어서, 짐과 경 등의 부모들은 모두 원나라의 생양(生養)에 힘입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들뜨고 경박한 말을 하는가, 빨리 고치라"고 했다.

을해일, 매적리팔라를 숭례후(崇禮侯)로 봉하였다.






첫번째는 서달과 상우춘이 25만의 대군을 이끌고 북벌 할 당시 내린 조서로, 게중에 원나라의 종실들은 죽이지 말고 보호하라는 내용입니다.



두번째 문단에서 이문충의 승리 보고가 있을때는, 원나라 조정에서 벼슬을 했던 사람들은 하례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과거 옛주인이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례한다는 이는 충의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문단의 그 뒷부분은 원나라 순제의 손자 매적리팔라가 사로 잡히자, 당태종이 왕세충을 잡아다 퍼포먼스용으로 사용한것처럼 (이를테면 로마의 장군들이 개선하면서 사로 잡은 적국의 왕들을 끌고 와 굴욕을 안기는 일과 비슷) 매적리팔라를 사용하라는 이야기인데,


이에 대해 "원나라는 백여년 동안 중국의 주인이어서, 나와 그대들의 부모들은 모두 그 은덕을 입었는데 어찌 지금의 판세라고 하여 함부로 말을 하는가." 라고 신하들을 훈계하는 부분입니다. 




비단 원나라 뿐만 아니라 진우량의 자손에서 나하추 등, 주원장은 자기 적수에 대해 오히려 도량있는 모습을 보여준 경우가 많습니다. 주원장의 증오의 대상이 된 주요 인물들은 어디까지나 문인들과 공신 관리들 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