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혼, 강건성세의 여명(에필로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이렇다 할 국가적 연맹체도 이루지 못했던 수렵 민족이, 거대한 태풍이 되어 중국과 몽골, 한반도를 자신의 말발굽 아래 집어 삼키고, 수천년간 중국을 집어삼켰던 어떤 국가보다도 가장 먼 서쪽으로 진군을 했다. 연대기적 구성을 보면 참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절정에 오르기전까지 청나라는 끊임없이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투쟁하고, 전진을 강요 받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과업이 완수되었다 싶을 시기에 바로 내리막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당초 "청나라 쇠망사" 나 "청제국 연대기" 같은 제목 대신 "강건성세의 여명" 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이유는, 애시당초 서술하려고 했던것이 이 조그마하던 동북의 소규모 공동체가 태풍이 되어 중국을 집어삼키던 바로 그 시기, 즉 "강건성세" 의 "여명" 시기를 다루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했던 대로라면 주된 이야기는 도르곤의 시대에 마무리 되어야 했고, 그 끝은 강희제라는 소년 황제의 즉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내심 이게 상당히 즐거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남은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데 있어 누르하치, 홍타이지, 원숭환, 팔기, 의정왕대신회의와 같은 단어와 지내는 일은 나름대로 상당한 여흥이 되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여러 책을 한데 묶어 참조하는 정도였지만, 글을 쓰면서 새삼스레 또다시 배우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여정은 강희제를 따라 차오모드에서 가르단과 대면하였고, 저녁의 등불 속에서 신하에게 편지를 쓰는 옹정제의 곁을 배회하였으며, 제국의 군단에서 들려오는 진군의 나팔 소리를 따라 베트남으로, 티베트로, 미얀마로, 네팔로 향했습니다. 어느덧 '강건성세' 도 끝나 먼 바다에서 건너온 이들의 포함 소리가 들려오고, 무너지는 제국과 몰락하는 왕조, 절망과 빈곤의 겨울 속에서도 내일을 위한 차를 끓이는 유민들의 작은 희망이 보이고, 투쟁하는 혁명가들과 군벌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쉽게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으로 한 적도 없고, 관련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한 제가 이 여정을 걸으며 본 광경들은, 장구한 세월과 거대한 영토, 압도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자 투쟁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는 매몰되어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야기라, 저는 될 수 있는한 청나라의 연대기라는 긴 구성에도 각자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하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소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도가 약간이라도 전달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누르하치, 홍타이지, 원숭환, 숭정제, 홍승주, 전겸익, 강희제, 가르단, 옹정제, 연갱요, 건륭제, 홍수전, 석달개, 이수성, 증국번, 이홍장, 쑨원, 원세개, 채악 등. 그들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바라는 이상을 위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글이, 여러분들에게도 약간이나마 즐거움을 줄 수 있었다면 정말 기분 좋은 일이 될 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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