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에 노예로 끌려간 모친을 모셔온 김천(金遷)

 몽고가 고려에 행한 악행은 고종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더 심해졌는데요,

1254년에만 끌려간 사람이 206800 여명이나 되고, 살육된 자는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지요.
몽고군이 거쳐간 모든 고을들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몽고군이 잠시 물러간후 벼농사를 지어놓으면, 다시 쳐들어와 모든 수확물을 빼앗가 버렸지요.

식량이 없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속에서
노예로 끌려간 어머니와 동생을 찾아온 김천을 소개할까 합니다.

2,30 여년전 강화도로 천도를 최우가 강행할 당시 이미 이런 일을 예견한 이가 있었는데요.
유승단(兪升旦)은 최우가 주최한 재추회의에서, 최우가 두려워 아무도 천도를 반대하지 않자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고려사中
“작은 나라가 큰 나라 섬김은 이치에 당연한 일이다. 예로써 섬기고 믿음으로써 사귀면, 저들 역시 무슨 명분으로 매양 우리를 괴롭히겠는가. 성곽을 버리고 종묘사직을 돌보지 않은채, 섬으로 도망하여 구차스럽게 세월만 끌며, 변방의 장정들은 칼날에 다 죽고 노약자들은 끌려가 종이나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이 국가의 장구한 계책이 아니다." 

그러나 천도는 감행되었고, 천도를 반대한 김세충(金世沖)은 곧바로 참수 당하였으며, 유승단 또한 이해에 사망하게 됩니다.
고종은 천도의 공으로 최우를 진양후(晉陽侯)로 책봉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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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년 몽고의 6차 침입당시 몽고군 산길대왕(散吉大王)이 명주를 쳐들어 왔습니다.
몽고군은 이곳에서도 수많은 포로를 잡아갔는데, 몽고군은 주로 여자와 어린아이들만을 포로로 잡아가고
대부분의 성인남자는 몰살을 시켰던 모양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김천(金遷)의 가문은 명주(溟州)의 호장출신인데, 몽고군이 명주에 들어왔을때 김천은 15세였습니다.

(호장은 군현의 장리를 말하며, 고려 초중기에는 전국군현에 파견된 현령은 대현의 20여명에 불과하였습니다.
나머지 군현은 호장이 관리하였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지방 소호족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후삼국 당시처럼 호족이 해당지역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것은 아니구요,
고려 중기에는 단지 영업전을 지급받았구요. 이나마 몽고난을 거치면서 지방 소호족의 기반은 상당수 붕괴되고 말았지요.)

난리중에 아버지와 함께 피신한 모양인데, 그만 모친과 동생은 포로로 잡히게 되었지요.
몽고군이 물러가고 끌려간 포로들이 대다수 도중에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되자
모친과 동생이 죽은줄 안 김천은 모친상을 치루게 됩니다.
그후로 14년이 지난후 모친과 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되고, 결국 헤어진지 20년만에 어머니를 모셔오게 됩니다.


고려사 김천 열전中

김천은 명주(溟州) 아전이며 아명은 해장(海莊)이다. 고종 말년에 몽고병이 침범하였을 때 그 모친과 동생 김덕린(金德麟)이 포로로 잡혀 갔다. 그때 김천이 나이는 15세였는데 밤낮 울며 지내다가 잡혀 간 사람들이 도중에서 다수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모친 상을 예법대로 지켰다. 

그 후 14년에 백호(百戶) 습성(習成)이란 자가 원나라에서 돌아와서 장마당에서 사흘 동안이나 "명주 사람 있소!"라고 외쳤다. 
때마침 정선(旌善) 사람 김순(金純)이 응답하니 습성이 말하기를 [김씨라는 여자가 원나라 동경(東京)에서 말하기를 "나는 본래 명주 사람인데 해장이란 아들이 있소"라고 하면서 이 편지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는데 당신은 해장을 아는가?]라고 하였다. 
김순이 "나의 친우이다"라고 말하고 그 편지를 받아다가 김천에게 전해 주었다. 

그 편지에 "나는 살아서 어느 주(州) 어느 마을 누구 집에 와서 노비로 되었다. 배고파도 얻어 먹지 못하고 추워도 얻어 입지 못하고 낮이면 밭 매고 밤이면 절구질한다. 그 동안 갖은 고생을 다 겪었다. 누가 나의 생사(生死)를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김천은 이 편지를 읽고 통곡하였으며 식사 때마다 목이 메어 밥을 넘기지 못하였다. 김천은 가서 모친을 속신(贖身)하려 하였으나 집이 빈한하여 재물이 없었으므로 남에게서 은(銀)을 꾸어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 모친을 찾으러 가겠다고 신청하였으나 조정에서 허가하지 않으므로 되돌아왔다. 그 후 충렬왕이 원나라로 입조(入朝)할 무렵에 또 서울로 와서 청하였으나 조정의 결정은 지난번과 같았다. 

김천은 오랫동안 서울에 묵고 있으면서 옷은 해어지고 식량도 떨어져 우울하게 지나가던 중에 도상에서 같은 고을 중 효연(孝緣)을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슬픈 사정을 하소연하니 효연은 말하기를
"내 형 천호(千戶) 효지(孝至)가 지금 동경으로 가니 당신은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곧 주선해 주었다. 어떤 사람이 김천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모친의 편지를 받은 지 벌써 6년이 지났는데 그간 모친의 생사를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도중에 불행히 강도나 만나면 목숨과 돈을 빼앗길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천은 "가서 못보더라도 목숨과 몸덩이를 어찌 아끼겠는가?"라고 말하고 드디어 효지를 따라 동경에 들어가서 우리 나라의 역어 별장(譯語別將) 홍명(弘命)과 함께 북주(北州) 천로채(天老寨)로 가서 모친이 있는 곳을 찾았다. 

원나라 군졸 요좌(要左) 집에 갔더니 한 노파가 나와서 절을 하는데 누더기옷에 머리는 쑥대머리요. 얼굴에는 때가 더덕더덕 묻었다. 김천은 그 노파를 보고도 자기 모친인 줄 모르고 "너는 어떤 사람이냐?"라고 물으니 "나는 본시 고려 명주 호장(戶長) 김자릉(金子陵)의 딸인데 동생인 김용문(金龍聞)은 이미 진사(進士) 급제하였고 나는 호장 김종연(金宗衍)에게 출가하여 해장과 덕린 두 아들을 두었더니 덕린은 나를 따라 이곳에 와서 있은 지 이미 19년이 되었소! 지금 서쪽 이웃에 사는 백호(百戶) 천로(天老)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소! 오늘 뜻밖에 다시 우리 사람을 보게 되었구려!"라고 하였다. 김천은 이 말을 듣고 꿇어앉아 절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울었으며 어머니도 김천의 손을 쥐고 울면서 "네가 진정 내 아들이냐?!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고나!"라고 하였다. 

요좌가 마침 집에 없어서 김천은 어머니를 속신하지 못하고 동경으로 가서 별장 수룡(守龍)의 집에 한 달이나 유숙하다가 수룡과 함께 요좌 집에 다시 가서 속신을 요구하였으나 듣지 않았으므로 김천이 애걸복걸하여 은 55냥으로 겨우 속신하였다. 어머니를 말에 태우고 김천은 도보로 따라왔으며 김덕린은 동경까지 배송 와서 울면서 "편안히 돌아가십시오, 지금은 따라가지 못하나 하늘의 복이 있으면 반드시 서로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모자가 서로 안고 흐느껴 울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때 중찬(中贊) 김방경(金方慶)이 원나라로부터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경에 이르러서 김천의 모자를 불러 보고 칭찬과 감탄을 마지않았으며 원나라 총관부(摠管府)에 부탁하여 증명서를 교부하며 식사와 숙사를 제공받으면서 귀국하도록 하였다. 

명주 가까이 왔을 때 김종연(金宗衍)이 이 소식을 듣고 진부역(珍富驛)까지 마중 나와 부부가 서로 보고 기뻐하였다. 김천이 술잔을 들어올리고 통곡을 하니 좌중이 모두 눈물을 흘리었다. 김자릉(子陵)은 나이 79세였는데 딸을 보고 어찌나 기쁘던지 땅에 엎어졌다. 그 후 6년이 지나 천로의 아들이 김덕린을 데리고 왔으므로 김천은 86냥(兩)을 주고 속신하였다. 몇 해 안가서 전후 꿔 쓴 빚도 다 갚고 아우 김덕린과 함께 종신토록 효성을 다 하였다.



참 애잔하면서도 씁씁합니다. 
십수년만에 모친의 생사를 알고, 금전을 빌려 개경에 올라가 조정에 오랜기간 두번이나 청을 하였으나 조정은 묵살하였죠.
천신만고 끝에 몽고로 찾아갔지만, 노예가 된 비참한 몰골의 어머니를 못알아 보게 됩니다.
30대쯤에 끌려간 모친이 20년의 노예생활로 노파가 되어 있었기 때문 이였습니다.
어머니는 겨우 몽고군졸의 노예가 되었으며, 동생 또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어 있었지요.
몽고에서의 이민족 노예의 생활은 "누더기옷에 머리는 쑥대머리요. 얼굴에는 때가 더덕더덕 묻었다." 처럼 비참하기 그지 없었을 것입니다. 
고려여성과 어린이 수십만, 아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가 이처럼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였을 텐데요,
고려사에서 몽고난을 접할때마다 끓어 오르는 분노가 잘 가라않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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