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과 일본의 서신배틀이 틀어질 거라 예견한 이장용

 원 세조가 일본에 전하라는 칙서가 고려에 도착하자, 김준의 무신정권도 이를 고민한 모양입니다.

이장용은 원나라 사신 흑적에게 서신을 따로 보내 일본에 서신을 보낸다던가, 공격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피력합니다.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예전 수문제 당시에도 일본이 "해뜨는 천자" 운운하며 매우 오만함
2. 만약 오만한 언사가 있다면 원 세조에게 알리기도 어려움
3. 공격하려 하여도 바닷길의 풍파가 매우 거셈, 군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음.
4. 일본을 공격하려는 이유가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올린 말 때문에 그러한 것임.
   전혀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임
5. 일본이 원의 강성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믿고 있기 때문임.
6. 일본이 오면 다행이고, 안 와도 별 상관없으니. 그냥 서로 모른 채 지내는 것이 속 편함.
7. 이건 원 세조를 향한 나의 충정임. 진짜임.

→ 헌데, 원종은 이장용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원 사신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이장용을 귀양 보내고, 일본에 사신으로 갈 예정이던 반부마저도 귀양 보내려 합니다.
→ 이때 마침 반부가 원사신 흑적과 같이 있다가 군사들이 와서 반부를 끌어내자 흑적이 성을 냅니다.
    그리고는 원종에게 당장 일을 멈추라 하지요. 해서 이장용과 반부는 죄를 받지 않고, 이달에 반부가 일본으로 떠나게 됩니다.

※ 결론 : 이장용이 원사신에게 마지막 희망으로 서신 배틀을 중지해 볼려 하였으나,
             왕의 의심만 받고, 결국 서신은 일본으로 향하게 됨.
             종국에는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장용의 예언대로 모두 바다에 막혀 실패함
             

고려사절요 1267년 8월 기사中
이장용이 흑적의 무리에게 글을 보내기를, 

“일본이 바다 건너 만리 밖에 있어서 비록 간혹 중국과 서로 통하기는 하였으나 일찍이 해마다 조공을 닦지 않은 까닭에 중국에서도 또한 개의치 않아, 오면 무마하고 가면 끊었으니, 얻더라도 왕화(王化)에 도움이 될 것이 없고, 버리더라도 황위(皇威)에 손상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성명(聖明)한 천자가 위에 있어 일월(日月)이 비치는 곳에는 모두 신첩(臣妾)이 되었는데, 미련한 저 작은 오랑캐가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벌[蜂]도 쏘는 독기가 있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국서(國書)를 내리는 것도 매우 옳지 않습니다. 수 문제(隋文帝) 때에 일본이 상서(上書)하기를,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 하였으니, 그 오만하여 명분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그때의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국서가 들어간 뒤에 만일 오만한 대답과 불경한 언사가 있다면, 내버려 두자니 대조(大朝)에 누가 될 것이고 치려고 해도 풍파가 세차서 천자의 군사가 만전(萬全)할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배신(陪臣)이 알기에는 대조의 관후한 정치로써 또한 반드시 일본을 회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사람이 올린 말 때문에 한 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취사(取捨)에 대한 이해가 이와 같으니 한 통의 봉서(封書)는 내리지 않는 것이 도리어 득(得)이 될 것입니다. 또 일본이 어찌 대조의 공덕이 성한 것을 듣지 못하였겠습니까. 이미 들었다면 당연히 들어와 조회하여야 할 것인데, 오지 않는 것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월로 기약하여 오고 오지 않는 것을 천천히 보아서 오면 그 복종하는 것을 장려하고, 오지 않으면 치지 도외하여 서로 잊어버리고 저대로 생활하도록 맡겨 두는 것이 실상 하늘이 만물을 덮어주는 데 사심이 없는 것과 같은 성인의 지극한 덕이 될 것입니다. 배신(陪臣)이 두 번 천자의 뜰 앞에서 사신으로 친히 후한 은혜를 받았으니 지금 비록 먼 곳에 있으나 개와 말이 주인을 사모하는 정성을 만분의 일이라도 다하기를 생각합니다." 

하였다. 

장용이, 일본이 마침내 오지 않을 것이며, 장차 우리나라에 누만 될 것을 미리 헤아렸기 때문에 은밀히 흑적에게 글을 주어서 몽고에 전문(轉聞)하여 일본을 불러서 회유하는 일을 중지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먼저 왕에게 아뢰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다른 마음이 있는가를 의심하여 곧 영흥도(靈興島)로 귀양보내기로 하였으며, 
접반(接伴)인 기거사인(起居舍人) 반부(潘阜)도 고하지 않은 죄로 채운도(彩雲島)로 귀양보내기로 하였다. 

마침 부(阜)가 흑적과 함께 있는데 무사가 졸지에 들어와 끌어내었다. 
흑적이 노하여 힐문(詰問)한 후 사실을 알고는 장용의 편지를 돌려주며 
그들을 귀양보내는 것을 중지하게 하니, 모두 면하게 되었다.


한줄요약
이장용 : 니네끼리 싸워 제발
원종 : 님 뭐셈 나 무시하심?
원사신 : 원종님아 나 안보임?


사극 무신에서 등장하였던 그 이장용입니다.^^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과거로 조정에 등용되었고 문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1267년 경에는 감수국사로 임명되어 실록을 편찬 중이었지요.
김준의 뒤를 이어 1268년에 문하시중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니, 김준과는 같이 조정일을 보기는 하였습니다.
당시 조정의 핵심이 해양공 김준과 문하시중 이장용이라고 보시면 간단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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