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통해 금을 견제해 보려는 남송의 계책이
○ [건염(建炎)] 2년(A.D.1128; 高麗 仁宗 6) 에 절동로(浙東路) 마보군도총관(馬步軍都總管) 양응성(楊應誠)이 상언(上言)하기를, “고려(高麗)에서 여진(女眞)까지의 길이 매우 가까우므로 신(臣)이 삼한(三韓)에 사신으로 가서 계림(鷄林)과 우호를 맺어 [여진(女眞)으로 잡혀간] 삼성(三聖)을 영접하여 올 것을 도모하겠습니다.” 하니, 곧 양응성(楊應誠)을 가형부상서(假刑部尙書)로 삼아 고려국(高麗國) 사신으로 임명하였다. 그러자 절동수신(浙東帥臣) 적여문(翟汝文)이, “양응성(楊應誠)은 폐하(陛下)를 속여 자신을 위한 계책을 세웠을 뿐입니다. 만약 고려(高麗)가 오(吳)· 월(越)을 엿보기 위하여 금(金)나라 사람도 나루터를 물어 왔다고 말한다면 앞으로 무슨 말로써 그에 대답하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폐하(陛下)의 명을 욕되게 한다면 원방(遠方)의 오랑캐에게 조소(嘲笑)당할 터이니 [양응성(楊應誠)을] 파견하지 마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양응성(楊應誠)은 이 말을 듣고도 끝내 부사(副使) 한연(韓衍)· 서장관(書狀官) 맹건(孟健) 등과 함께 항주(杭州)를 경유하여 바다를 건너서 갔다. 6월에 고려(高麗)에 도착하여 고려왕(高麗王) 해(楷)에게 하고 싶은 계획으로 효유(曉諭)하니 해(楷)가, “대조(大朝)는 본시 산동(山東)에 길이 있는데 어찌 등주(登州)를 경유하여 [여진(女眞)으로] 가지 아니하였습니까?”하였다. 양응성(楊應誠)이, “귀국(貴國)의 길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해(楷)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더니 얼마 후에 그 나라 문하시랑(門下侍郞) 부일(傅佾)에게 명하여 객관(客館)으로 나아가도록 하여 과연 적여문(翟汝文)의 말처럼 대답하였다. 양응성(楊應誠)이, “여진(女眞)은 수전(水戰)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하니, 부일(傅佾)은, “여진(女眞)은 항상 바닷길로 왕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진(女眞)이 옛날에는 신하(臣下)로서 본국을 섬겼지만지금에는 우리가 도리어 신하로서 여진(女眞)을 섬기고 있으니, 그 강약(强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에 [해(楷)가] 다시 중서시랑(中書侍郞) 최홍재(崔洪宰)· 지추밀원(知樞密院) 김부식(金富軾) 등을 [양응성(楊應誠)에게] 보내어 전일의 의사를 변동 없이 견지하면서,
“이성(二聖)이 현재 연운(燕雲)에 계신 이상 대조(大朝)에서 국토를 [여진(女眞)에게] 모조리 바친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성(二聖)을 맞아 올 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병사를 훈련시켜 여진(女眞)과 싸우지 않습니까?” 하면서 끝내 조서(詔書)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양응성(楊應誠)은 2개월여를 [고려(高麗)에] 체류하다가 하는 수 없이 수창문(壽昌門)에서 해(楷)를 접견하고 그가 올린 표(表)만을 받아가지고 귀국하였다.
○ [건염2년(建炎二年)]10월에 대궐에 이르러 입대(入對)하여 그 상황을 아뢰니, 고종(高宗)은 해(楷)가 국은(國恩)을 저버렸다고 대단히 노하였다. 상서우승(尙書右丞) 주승비(朱勝非)가, “고려(高麗)가 금(金)나라 사람과는 인접하여 있고 중국과는 바다로 막혀 있으므로 이해(利害)가 매우 분명합니다. 과거에 고려(高麗)를 너무 후하게 대우하였지만, 지금 어떻게 그 보답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아뢰자, 우복사(右僕射) 황잠선(黃潛善)은, “큰 전함(戰艦)에 정예병(精銳兵) 수만명을 싣고 가 곧바로 고려(高麗)의 도읍지를 공격하면 저들이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주승비(朱勝非)가, “바다를 건너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연산(燕山)의 사적이 가까운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하고 아뢰니, 상(上)이 노여움을 풀었다.
11월에 해(楷)가 그의 신하 윤언신(尹彦頣)를 보내와 표(表)를 올려 사죄하니, 조칙(詔勅)을 내려 이성(二聖)이 아직 귀국하지 못하였으므로 연회(燕會)에 음악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마침내 전문(殿門) 밖에다 막(幕)을 설치하여 객성관(客省官) 오득흥(吳得興)에게는 술과 음식을 반사(伴賜)하고, 중서사인(中書舍人) 장징(張澂)더러는 그를 압반(押伴)하여 예(禮)에 따라 환국(還國)하도록 하였다.
헌데 송나라가 금 상대하기도 빡센 판국에 바다 건너 고려를 쳐?
한줄요약하시는 짝다리 동관님의 말씀!
![]()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