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악비 열전에 금군 종필(올출)이 이끄는 정예 중기병 괴자마 부대를 상대할 때,
송 보병으로 하여금 마찰도(麻札刀)를 들고 싸우게 하여, 오직 말 다리만을 노리고 공격하여
괴자마 부대를 박살낸 것으로 나오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마찰도는 8척이나 되는 긴 도끼로 이미 중국 남북조 시대에도 쓰였다고 하네요.
일화님에 의하면 조선후기의 병서에 중국의 주척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하며
주척에 의하면 1척은 20cm라고 하네요. 즉 1m60cm입니다.
조선의 영조척(營造尺)에 의하면 1척은 30.7cm 임으로 8척이면 2m45cm입니다.
송사(宋史) 악비(岳飛) 열전中
初,兀朮有勁軍,皆重鎧,貫以韋索,三人為聯,號「拐子馬」,官軍不能當。
是役也,以萬五千騎來,飛戒步卒以麻札刀入陣,勿仰視,第斫馬足。
拐子馬相連,一馬仆,二馬不能行,官軍奮擊,遂大敗之。
兀朮大慟曰:
「自海上起兵,皆以此勝,今已矣!」
兀朮益兵來,部將王剛以五十騎覘敵,遇之,奮斬其將。
飛時出視戰地,望見黃塵蔽天,自以四十騎突戰,敗之。
처음에, 올출(兀朮)에게 경군(勁軍/강한 군대)이 있었는데, 모두 중개(重鎧/중갑)하였고,
위색(韋索/가죽끈)으로 꿰어, 3인을 연결(連結)하여, 부르기를 「괴자마(拐子馬)」라 하였는데,
관군(官軍)이 당(當)함이 불능(不能/할 수 없음)하였다.
이 전투에서 또한, (괴자마) 1만 5천기(騎)로 오니,
악비(岳飛)가 보졸(步卒)에게 경계(警戒)하도록 하여 마찰도(麻札刀)로써 입진(入陣/진에 들어감)하게 하고는,
머리를 쳐들고 (적 기병을) 보지 말고, 단지 마족(馬足/말의 다리)를 베게 하였다.
괴자마(拐子馬)가 상련(相連/서로 잇댐)하니,
말 한 마리가 넘어지면, (남은) 두 마리의 행동(行動)이 불능(不能)하니,
관군(官軍)이 분격(奮擊/불발하여 공격함)하여, 드디어 크게 깨트렸다.
올출(兀朮)이 대통(大慟/크게 애통해함)하여 말하길
「해상(海上)에서부터 기병(起兵)하여, 모두 이로써 승리(勝)하였는데, 이제 끝났구나!」
올출(兀朮)이 익병(益兵/증병)하여 왔는데, 부장(部將) 왕강(王剛)이 50기(騎)로써 점적(覘敵/적의 형세를 엿봄)하고는,
조우(遭遇)하여, 분격(奮激)하여 그 (금군의) 장수를 참(斬)하였다.
악비(岳飛)가 이때 출격(出擊)해 전지(戰地/싸움터)를 보았는데,
망견(望見/멀리 바라봄)하니 황진(黃塵/누런 흙먼지)이 하늘을 가리니,
스스로 40기(騎)로 돌전(突戰/돌격)하여, 깨트렸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2년 1778년 7월 20일 기사 윤명동이 정조에게 올린 상소中
이럴 즈음에 승리할 수 있는 일종의 기계가 있는데, 배외갑(背嵬甲)·마찰도(麻札刀)가 그것입니다.
동위(東魏) 때 모용소종(慕容紹宗)이 말하기를, ‘천하에 이기기 어려운 자는 후경(侯景)만한 이가 없다.’ 했는데, 후경이 모용소종과 싸울 적에 자기의 군사들에게 각기 대부(大斧)를 잡고 곧바로 적에게로 핍박하여 들어가 머리를 숙이고 말의 발을 찍게 했기 때문에, 모용소종처럼 잘 싸우는 사람으로서도 대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이 법이 유전(流傳)되어 송(宋)나라에서 배외갑과 마찰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한세충(韓世忠)·유기(劉錡)가 올출(兀朮)을 격파할 적에 모두 배외군으로 하여금 예리한 도끼를 가지고 위로는 사람의 가슴을 찍게 하고 아래로는 말의 발을 찍게 하였으며, 악비(岳飛)는 5백 명의 군대로 10만의 무리를 깨뜨렸고 8백 명의 군대로 50만의 오랑캐를 무찔렀으니, 이는 모두 배외갑과 마찰도의 힘이었습니다. 배외갑은 곧 거북 등처럼 생긴 철갑(鐵甲)이고 마찰도는 곧 8척이나 되는 긴 도끼인데, 이제 그 형제(形制)에 관한 것이 영가(鈴家)의 책에 모두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쓰기가 매우 간편한데다가 바람 불고 비가 오거나 춥거나 덥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예리한 활촉이나 큰 칼이 격파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굽히고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기병(騎兵)과 싸우는 데에는 더욱 유리하여 다시 창이나 칼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1710년 숙종 36년 7월 5일 기사中
전(前) 인의(引儀) 안정기(安鼎基)가 상소하여 병거(兵車)·배외갑(背嵬甲)·마찰도(麻札刀)를 만들기를 청하니, 임금이 군문(軍門)에서 시험삼아 만들어 보도록 명하였다.【병거(兵車)는 그 제도를 작게 만들되, 깃대에 칼을 꽂고 앞에 장막(帳幕)을 쳐서 벌여놓으면 금성(金城)이 되고 꾸며놓으면 가가(假家)가 되어서 행군(行軍)할 때에는 짐을 나르고, 멈출 때에는 영벽(營壁)이 되므로, 기갑(器甲)을 숨기고 군졸을 보호한다. 배외갑(背嵬甲)은 생가죽으로 만들어 혹 옻칠을 하거나 기름을 바르는데, 그 만드는 방법이 농사꾼의 도롱이 같으며, 그 등을 높게 하고 그 앞면을 비워두되, 다만 가슴을 덮는다. 마찰도(麻札刀)는 그 자루가 길고, 양쪽에 칼날이 있게 만들어 좌우로 돌며 치고 찌르기에 편리하다 하였다.】
P.S) 마찰도의 기록은 제가 알기로 중국 정사 24에는 송사 악비전 한 부분만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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