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투구를 안 쓰고 나오길래, 한번 만들어 봤어요^^;
太祖嘗宴紇石烈部活離罕家,散步門外,南望高阜,使衆射之,皆不能至。
太祖一發過之,度所至逾三百二十步。宗室謾都訶最善射遠,其不及者猶百步也。
天德三年,立射碑以識焉。
태조가 일찍이 흘석열부(紇石烈部) 활리한(活離罕)의 집에 연회를 갔는데,
문밖으로 산보(散步)하여, 남쪽의 높은 언덕을 바라보며, 화살을 쏘게 하였는데, 모두 능히 도달하지 못하였다.
태조가 한발을 쏘아 넘어가니, 넘겨서 도달한 바를 헤아려 보자 320보였다.
종실(宗室) 만도가(謾都訶)가 가장 훌륭하게 멀리 쏘았으나, 그것은 오히려 백보나 미치지 못하였다.
천덕(天德/금 폐황제廢皇帝의 연호) 3년(1151년)에, 사비(射碑/화살 쏜것에 대한 기념비)를 세웠으니 이로써 알수 있다.
烏春既死,窩謀罕請和。
既請和,復來攻,遂圍其城。
太祖年二十三,被短甲,免胄,不介馬,行圍號令諸軍。
城中望而識之。
壯士太峪乘駿馬持槍出城,馳刺太祖。
太祖不及備,舅氏活臘胡 馳出其間,擊太峪,槍折,刺中其馬,太峪僅得免。
오춘(烏春)이 이윽고 죽었는데, 와모한(窩謀罕)이 화의를 청해 왔다.
이윽고 화의를 청하고는, 다시 공격해 오니, 드디어 그 성을 에워 쌓았다.
태조가 23세였는데, 단갑(短甲/상반신을 보호하는 갑옷)만 입고, 투구를 벗어, 개마(介馬/무장한말)도 없이,
포위를 순시하며 각군을 호령(號令)하였다.
성중에서 망을 보다 이를 알아챘다.
장사(壯士) 태욕(太峪)이 준마를 탄채 창을 잡고 성을 나와, 태조를 치자(馳刺/질주하여 찌름) 하였다.
태조가 미처 준비하지 못하였는데, 구씨(舅氏/외삼촌) 활랍호(活臘胡)가 그 사이를 질주하여, 태욕을 공격하니,
창(槍)이 절단되어, 그말을 찔렀는데, 태욕이 겨우 벗어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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