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은,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참 세련된 맛이 있다는 겁니다.
무려 2100년전 사람에,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던 시기보다도 백여년은 전 인물인데,
그 시각이나 말하는 태도, 생각이 되려 사오백년전 학자들 문집 등을 읽을때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고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신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사마천이 비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따지자면 한신은 반역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보통 그 부분에 대한 질책이 더 클겁니다.
망령되어 반역죄를 저질렀다..등등
그런데 사마천이 한신을 비판하는 태도는 이렇습니다.
"몸가짐이나 똑바로 하면서 몸이나 사리지. 왜 천하의 판도가 이미 정해진 뒤에야 반역질을 하는가? 그러니까 일족이 몰살 당하는게 당연한 일 아닌가?"
단순히 '반역' 을 저질러서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잘나갈땐 멍하니 있다 기회 놓치고, 이미 판도가 끝장난 뒤에야 다른 마음 먹은 그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건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마천 본인은 제자백가 중에는 노장사상적인 경향이 강한 면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창공 순우의 열전이나 편작 열전에서 보이는 "사람이 재주가 있어봐야 그때문에 고생이나 더 당하지." 가은 태도가 그러한데,
그런데 이렇게 노장사상적 태도를 은연중에 보이면서도, 실제로 사람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공자의 말도 인용해가고 하면서 "과연 그렇다." 고 하며,
법가 사상가들의 냉혹한 면모에 대해서 상앙은 각박하다, 오기는 안쓰럽다 라고 평론하면서도,
"……한비자가 말하기를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밑전이 많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 말이 진정으로 옳음이여! 범수와 채택은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일체변사(一切辯士)다. 그러나 백발이 되도록 제후들에게 유세를 행하고 다녀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를 행한 나라의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
하는 등 사상적으로 편협한 태도도 거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 사람들 보다도 훨씬.
(장자에서 공자가 데꿀멍 당하는 온갖 에피소드 등에서 보듯이 유가에서 도가를 까는 만큼 도가에서도 유가를 자주 까기도 함에도)
그러면서도 단순히 마구 원칙론적인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데,
한고조 유방의 시기에 숙손통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고조 유방으로 하여금 예법과 유학을 따르도록 한 인물인데, 그 과정에 있어서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굽신거리는 태도를 보여 까이기도 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사가의 평이라면, 비굴하거나, 풍모가 없다거나 하는 평가를 내릴 법도 합니다.
그런데 사마천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大直若詘 道固委蛇
"길은 본래 구불구불한 법."
개인적으로 저 구절만큼, 사기를 보면서 손뼉을 친 부분이 없습니다. 정말 기가막힌 말입니다.
인물평에 있어서도 구구절절하게 그 사람을 찬양하는게 아니라, 간단하게 몇마디를 하면서도 사람에게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광에 대한 평가가 있겠네요.
諺 曰 「 桃 李 不 言, 下 自 成 蹊 」 。 此 言 雖 小 , 可 以 諭 大 也 。
속담에, <복사꽃과 오얏꽃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 아래로는 절로 길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록 사소한 것이지만, 큰 것을 깨닫게 할 만하다.
그 어떤 찬양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 평론이었습니다.
또 다르게 마음에 와닿는 평론이라면, 굴원에 대한 평론이 있습니다.
나는 이소(離騷), 천문(天問), 초혼(招魂), 애영(哀郢) 등의 굴원의 시를 읽고 그의 품은 뜻을 슬퍼했다. 또 장사에 갔을 때 굴원이 빠져 죽은 깊은 강물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굴원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를 생각해 봤다.
그리고 굴원을 조상한 가생의 글을 보고 당시 굴원이 그의 재능으로 제후들에게 유세했더라면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나라는 없었을 것임에도 스스로 그와 같이 행동을 한 것은 정말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복조부를 읽고 삶과 죽음을 같다고 여겨 진퇴를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을 잃고 마치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을 찾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각적인데,
기본적으로 정통성과 관련된 '본기' 에 대해서도,
명분을 떠나 실질적인 그 시대 천하의 패자였다고 하여 항우와 여후의 본기를 둔 행동이나(당연히 후대에서는 거품 물고 욕했습니다.)
화식열전에서는, 본인이 노장 사상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노자의 말이 아무리 좋아도 이 시대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다." 라고 단언하기도 하는데,
특히 화식열전은, 그야말로 사마천 본인의 사상과 생각이 집대성된,
역사가를 넘어, 일종의 사마천이라는 '사상가' 의 저서나 다름없을 정도로 본인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에서 모든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식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과 같은 언급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본인의 노장 사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어찌 정령이나 교화 혹은 징발에 의하거나 약속함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겠는가? 사람마다 각기 지닌 능력에 맞추어 있는 힘을 다해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고로 물품 값이 싼 것은 장차 비쌀 징조이며, 물건 값이 비싼 것은 장차 싸질 징조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일에 힘쓰고 그 일을 즐기며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듯이 밤낮으로 멈추는 때가 없다.
부르지 않아도 오고 구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물품을 생산한다. 어찌 이것이야말로 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겠으며, 자연스러운 일임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하여 원시적인 형태의 시장가격과 자유 방임주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 식견, 배타적이지 않는 태도, 감성 등등 여러면이 다른 옛 시대 사람들보다도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세련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상당합니다.
사기를 보면서 느끼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단순히 역사적 저술을 넘어, 사마천이라는, 한명의 정말 멋있는 인물과 마주 대하고
2000년의 세월을 넘어 독대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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