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공험진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는데요,
사서를 보니 상당히 재밌네요.
특히나 제가 존경하는 순암 선생과 성호 선생의 토론도 흥미진진하고요.
간단하게 현재까지 나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이 옳을까요?
고려사
1. 윤관이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로 삼았다.
2. 공험진은 남쪽 정주에서 길주로 가는 사이에 있었다.
조선초 태조
1. 공험진은 회령이다.
(현재 회령에는 건주도독 맹가첩목아가 거주한다. 따라서 맹가첩목아도 우리 조선인으로 인정해달라.
맹가첩목아도 20년 넘게 조선을 섬기고 있다고 맹세했다. 맹가첩목아는 청태조 노이합적의 6대조)
2. 따라서 공험진 이남은 전부 조선 땅이다.
3. 주원장에게 공험진 이남이 예로부터 조선 땅임을 표문을 통해 알려왔다.
4. 주원장도 공험진의 이북을 요동에 붙이라 명하였다. 또한 맹가첩목아를 조선에 붙임을 허락하였다.
5. 지금 동북방에서 공험진까지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은 정도전이다. 윤관보다 낫다.
조선초 세종
1. 공험진은 회령이다. 단 내방소다.
2. 공험진의 외방소는 철령위에 있다.
선춘령 등 세종이 근거를 찾아보라 명하였다.
3. 조선 국경에서 북쪽 300~700리 위까지도 윤관이 진입했었다.
4. 현 조선 최북단 국경 경원군 등에서 윤관의 비문이 나왔다는 말들이 있다.
성호 선생
1. 공험진은 회령이 맞다.
2. 단 공험진은 처음에 여진족이 놀라 땅을 비우고 도망가자 북쪽 맨 끝에 가서 비문을 세우고 돌아온 것이다.
즉 찍고 온 땅이다.
순암 선생
1. 고려사에 오연총이 정주에서 길주로 가다가 공험진에서 여진군의 매복 기습을 당해 대패했다.
2. 당연히 공험진은 길주 이남에 있다.
3. 지금 (조선) 세상에서 공험진이 두만강 북쪽에 있다고 하는데, 만약 이것도 맞는다면
이는 북쪽으로 국토를 개척하고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역시 안정복 선생의 사관으로서의 자세란 ㄷㄷㄷ 은근히 세종을 까는 듯한)
4. 지금 길주 이북에서 선춘령까지 1000리가 된다고 하는데 상고할 만한 주현이 하나도 없다.
선춘령비도 스승님이 말씀하신 대로 땅 찍고 비석 한 개 세우고 돌아온 것 뿐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조선초는 이성계가 회령을 조선 영토로 주원장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서에 나온 윤관이 여진과의 경계를 정했다는) 공험진은 회령이다고 주원장에게 표문을 올린 것이고,
공험진의 위치가 어디인지 잘 모르는 주원장도 공험진 북쪽은 요동에 붙여라 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세종조에는 4군 6진을 개척하면서 확실하게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획정하기 위해
혹은 두만강 이북까지도 알아보기 위해, 근거를 찾아보라 신하들을 닥달하였고
이에 경원군에서 윤관의 비문이 나온 적이 있다는 말이 전한다는 말까지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은근히 순암 선생도 세종의 조작 과해석?을 까는 듯하고 ㅎㅎ
이를 일제 학자들은 조선 기록은 모두 조작이다고 전제하고, 여정 등을 살펴서 함흥 일대에 비정하고.
실상 일제 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허점이 많습니다. 축성 개시일과 완성일이 차이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함흥 산성 일대로 비정하는 것을 보면 조금 얼토당토않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여하튼 재밌네요. 공험진에 대해 회원님들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1. 길주 이남에 있다.
2. 무슨 소리 두만강 회령 등지에 있다.
3. 두만강 이북에 있을지도 모른다.
4. 조센의 조작이무니다. 함흥에 있으무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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