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은 흉노 원정의 후유증으로 멸망했을까?

 흉노측에 중점을 두거나 하는 식의 글들을 보면, 전한 한무제 시절 여러 대외원정, 특히 대 흉노전선에서 어마어마한 소모전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흉노도 크게 당했으나, 역시 전한도 국가 역량이 크게 바닥나서 무너졌다는 식으로, 마치 흉노원정을 전한 멸망의 직접적인 이유처럼 서술하는 경우인데,




무슨 대단한 연구성과가 아니라 그냥 사기나 자치통감만 봐도 들 수 있는 의문은, 전한의 멸망은 여타 중국 왕조가 멸망 할 당시처럼 엄청난 수준의 사회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무제 본인이 죽기 전에 반성의 조서를 내리고, 이후 100여년의 시간동안 그 정도로 거대한 싸움은 더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매제는 백성들의 생활에는 영향을 줄지 몰라도 국가재정 확충에는 도움을 주는 일이고, 다만 한무제 시기에는 전쟁으로 소모되어버렸던게 문제였던 일이었고



실크로드와 서역 등도 조충국 등의 원정으로 전한이 장악을 하고



흉노 원정이 내부적으로 여러 골칫거리와 사회 문제를 안겨주었을 수 있지만, 애시당초 망해가는 나라는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흉노 원정으로 인한 사회의 암이 과연 '급격한 국가붕괴' 를 가져올만한 수준이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를테면 사회, 경제, 정치, 군사, 자연 환경적 면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다 일어났다고 할만한 명말 등과 비교하면, 전한의 말기는 더욱 차이가 심합니다.




특히, 전한 멸망 직전인 기원 후 2년 경 제국의 인구는 5959만 명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6년 후 전한은 멸망합니다. 즉 멸망 직전의 시점이었지만, 전한의 인구는 무려 6천만에 달했고, 이를 집계할 행정능력도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전한의 멸망은 국가의 붕괴라기보단, 어린 황제들의 집권과 외척의 힘이 강해지며 '찬탈' 이 일어난 것이 대략의 모습입니다. 약해지고 붕괴된건 전한이라는 국가라기보단, '황실' 의 약화에 가깝고, 이후 벌어지는 급격한 쇠퇴와 혼란은 어디까지나 '전한의 붕괴' 라기보단 왕망이 집권한 이후였고.




이렇게 보면 흉노 원정 후유증이 전한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 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유목사나 흉노의 입장에서 전한을 바라보기 때문에 나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후한은 왕망 집권 시기의 대혼돈 이후 AD 57년에 인구가 6000만에서 2700만으로 감소하는데, 건국 후 100년이 지난 환제 시기에도, '흉노 정벌 후유증으로 재정은 바닥나고 백성들은 파탄 났으며, 국가는 급격히 붕괴되고 행정력은 약화되어 무너지' 고 있었다는 전한 극후반기의 인구를 따라 잡지를 못합니다. 한무제 시기부터 무너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무려 100년 동안 무너지고 있는 셈인데 말입니다. 100여년간 안정을 취하고 있던 나라가 100년이 넘게 무너지고 있던 나라만도 못한다는건 어폐가 있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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