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후 인조가 신하들에게 대책을 묻습니다.
<옛날에 천하무적 금 올출의 괴자마를 남송의 악비가 마찰도로 이겼다고 들었다.
헌데 왜 남송군은 이후에 마찰도를 주력으로 쓰지 않았는고?
또 무기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왜놈은 총을 가지고 있고, 되놈은 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둘 다 가지고 있고 튼튼한 성도 있다. 헌데 왜!!!?? 임진란과 정묘란에 그 지경이었는고?>
하니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대책으로 아룁니다.
요지는 병기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인조가
왜 남송이 악비 이후로 마찰도를 주력으로 삼지 않았나 하고 말하는 점입니다.
그렇게 중기병에게 유리하다면 마찰도가 주력이어야 하는데,
이후에 마찰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제가 알기로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명집(東溟集) 대책(對策) 中
왕은 묻는다. 병가(兵家)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도구에는 나름대로 장기(長技)가 있다. 자신의 장기를 가지고 상대방의 단기(短技)를 공격한 다음에야 그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를 거둘 수가 없다. 중국의 기예는 이적(夷狄)과 같지 않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령(鼂令)이 그 대강을 말하였다. 그런데 혹 고금(古今)에 따른 다르고 마땅한 점이 있거나, 전하여 익히는 데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인가?
배와 수레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어느 때에 처음 시작되었는가? 헌원씨(軒轅氏)의 지남거(指南車)와 오자(吳子)의 여황(艅艎)과 진(秦)나라의 소융(小戎)과 한(漢)나라의 무강(武剛)과 양복(楊僕)의 누선(樓船)과 왕준(王濬)의 용양(龍驤)에 대해 그 제도를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삼판(三版)이 이미 물에 잠겼는데도 진양(晉陽)은 완전하였으며, 70개의 성이 모두 함락되었으나 즉묵(卽墨)만은 온전하였다. 수양(睢陽)의 다 죽어 가는 군졸을 가지고 강회(江淮) 지방을 막았으며, 진창(陳倉)의 조그마한 성을 가지고 공명(孔明)에게 능히 항거하였다. 이것은 무슨 장기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괴자(拐子)의 말은 올출(兀朮)이 믿는 바인데도 끝내 패사하고 말았고, 마찰(麻札)의 칼은 남군(南軍)의 날카로운 병기인데도 그 쓰임이 일정치 않았다.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남쪽과 북쪽으로 적들과 마주하고 있어서 싸우고 지키는 방책을 평소에 강구해 놓았다. 이에 성지(城池)가 깊고 단단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기계(器械)가 정밀하고 날카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임진년(1592, 선조25)의 난리 때에는 모두 함락되어 나라가 뒤엎어졌으며, 정묘년(1627, 인조5)의 난리 때에는 오랑캐의 말이 깊숙이 쳐들어왔다. 이것은 장기(長技)를 제대로 쓰지 못하여서 그런 것인가?
강한 활과 건장한 말, 화포(火砲)와 병선(兵船), 갑옷과 방패, 칼과 창 등은 각 오랑캐들이 장기로 삼는 바가 같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겸하여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단점을 가진 오랑캐들을 제압할 수 없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기예(技藝) 외에 별도로 승리를 쟁취하는 요체가 있는 것인가? 유학자라고 해서 군사에 관한 일을 몰라서는 유학자가 될 수가 없다. 그러니 각자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하고, 배우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말라.
동명집(東溟集) 대책(對策) 中
신은 다음과 같이 대책(對策)을 올립니다. 제가 듣건대, 옛날에 중니(仲尼)가 자로(子路)에게 말하기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군자는 알지 못하는 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법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여기는 것은 대개 성인께서 크게 경계한 바입니다. 지금 집사(執事) 선생께서 국가에 어려운 일이 많은 때를 만나, 병가의 만전의 계책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초야에 있는 선비들을 하찮게 보지 않고 제승(制勝)의 방략에 대해 논하게 하였으며, 전승(全勝)의 요체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아아, 천하에서 알기 어려운 것 가운데 병가의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준걸(俊傑)들도 잘 알지 못하여 의혹하였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어리석은 일개 서생이 어찌 감히 머리를 쳐들고 병법에 대해 논해, 알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아는 체해서 성인께서 경계한 바를 범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비록 이와 같이 하면 승리하고 저와 같이 하면 패할 것임을 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일찍이 옛사람들이 지은 책을 읽어 보고는 이와 같이 하는 경우에는 승리하고 저와 같이 하는 경우에는 패한다는 것은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옛사람들이 말한 추구(蒭狗)를 거론하여, 집사 선생을 위해 진달하고자 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천하의 기예에는 장기(長技)가 있고 단기(短技)가 있습니다. 장기를 가지고 단기와 겨룰 경우에는 이길 수가 있고, 단기를 가지고 장기와 겨룰 경우에는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사물의 이치가 모두 그러한데, 병가의 경우에는 더욱더 심합니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승리를 거둔 자가 한두 사람이 아니며, 패한 자도 역시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장기를 가지고 단기를 공격하여 패한 경우는 없었으며, 역시 단기를 가지고 장기를 공격하여 승리한 경우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사들이 서로 교전하기 전에는 반드시 장기와 단기를 비교하면서 말하기를 “어느 기예는 우리들의 장기이고 상대방의 단기이며, 어느 기예는 상대방의 장기이고 우리의 단기이다.” 합니다.
우리들의 장기이고 상대방도 장기일 경우에는 서로 간에 승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단기이고 상대방도 단기일 경우에도 역시 서로 간에 승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장기이고 상대방의 단기일 경우나 상대방의 장기이고 우리들의 단기일 경우에는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집니다. 우리들의 장기가 상대보다 많거나 우리들의 단기가 상대보다 적을 경우에는 우리가 대부분 승리합니다. 상대의 장기가 우리보다 많거나 단기가 우리보다 적을 경우에는 상대방이 대부분 승리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장기이고 상대는 모두 단기일 경우에는 우리가 백전백승하며, 상대가 모두 장기이고 우리가 모두 단기일 경우에는 상대방이 백전백승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본다면, 양측의 군사들이 서로 맞닥뜨려 싸우기도 전에 승부가 이미 결판난 것입니다. 그런즉 싸워서 이기는 방도는 비록 만 가지로 같지 않지만, 우리들의 장기를 가지고 상대방의 단기를 공격하는 데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병가에 있어서 장기는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이른바 장기라는 것은, 험한 곳에서는 보졸(步卒), 평지에서는 거기(車騎), 물에서는 주즙(舟楫), 가까운 거리에서는 칼이나 창, 먼 거리에서는 활과 화살과 같은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때문에 험한 곳에서는 보졸이 유리하고 거기가 불리하며, 평지에서는 거기가 유리하고 보졸이 불리하며, 물에서는 거기나 보졸이 모두 불리하고 주즙이 유리하며, 먼 거리에서는 활과 화살이 칼이나 창보다 유리하며, 가까운 거리에서는 칼이나 창이 활이나 화살보다 유리한 것입니다. 이 몇 가지의 것들은 각각 유리한 점이 있어서 유리한 것이 이기고 불리한 것이 집니다. 이것은 필연의 이치이고 자연의 형세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형세가 혹 유리한데도 불리한 자에게 지는 경우도 있으며, 불리한데도 유리한 자에게 이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어째서입니까? 그 까닭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아, 어찌 유독 병기(兵技)에만 장기와 단기가 있겠습니까. 무릇 장수(將帥) 역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장수란 것은 근본이고 기예라는 것은 말단입니다. 참으로 근본이 없으면서 한갓 말단만을 가지고 승리를 쟁취하고자 한다면, 이 몇 가지 병기(兵器)는 모두 헛된 병기가 될 뿐입니다. 저 주즙을 버리고 거기를 잃고 갑병을 끌며 궁검을 버린 채 도주하는 자들은 어째서 그랬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한갓 그 말단만을 알고 그 근본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옛날의 싸움을 잘하던 자는 그 기예가 상대보다 나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장수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하면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고, 공격을 하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전승을 거두는 요체는 오직 장수에 달려 있으며, 오직 장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밝으신 물음을 인하여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중국의 다섯 가지 유리한 점과 이적(夷狄)의 세 가지 유리한 점에 대해서는 조령(鼂令)이 이미 다 말해 놓았으니, 제가 감히 번거롭게 다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아, 조령은 한(漢)나라의 신하이니, 그가 말한 중국이란 한나라이고, 그가 말한 이적이란 흉노(匈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중국은 한나라가 아니며, 오늘날의 이적은 흉노가 아닙니다. 그런즉 고금이 같고 다른 차이가 없지 않으며, 전습(傳習)을 잘하고 잘 못하는 차이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이 비록 한나라가 아니기는 하지만 중국은 중국이고, 오늘날의 이적이 비록 흉노는 아니지만 이적은 이적입니다. 그렇다면 조령이 한 말을 옛날의 경우에서 구해 본다면 옛날과 다른 점이 거의 없습니다.
주거(舟車)의 제도는 어느 시대에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옛사람 가운데에는 물에서 싸운 자도 있고 육지에서 싸운 자도 있는데, 물에서 싸우는 자는 반드시 배를 가지고 싸웠고, 육지에서 싸우는 자는 반드시 수레를 가지고 싸웠으니, 그 제도가 생겨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남거(指南車)는 황제가 타고서 치우(蚩尤)를 사로잡은 것이고, 여황(艅艎)의 배는 합려(闔廬)가 타고서 장안(長岸)에서 싸운 것입니다. 진(秦)나라가 서융(西戎)을 정벌할 적에 사용한 소융(小戎)이 주시(周詩)에 실려 있고, 한나라가 흉노를 정벌할 때 사용한 무강(武剛)이 천사(遷史)에 실려 있습니다. 양복(楊僕)이 백월(百越)을 평정할 적에는 누선(樓船)이라는 칭호가 있었으며, 왕준(王濬)이 익주(益州)를 함락시키고서 용양(龍驤)이라는 호칭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전해지는 바는 한갓 이름뿐이며, 그 처음 만들었을 때의 제도에 대해서 저는 알지 못합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배의 제도가 비록 같지 않으나 물에 뜨는 것은 같으며, 수레의 제도가 비록 같지 않으나 육지에서 가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배의 제도를 가지고 옛날 배의 제도를 추론해 본다면, 그 제도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오늘날 수레의 제도를 가지고 옛날 수레의 제도를 추론해 본다면, 그 제도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백(智伯)의 물은 진양(晉陽)의 삼판(三版)을 수몰시킬 수가 없었으며, 악의(樂毅)의 군사는 즉묵(卽墨)의 한 귀퉁이도 깨뜨리지 못하였습니다. 수양성(睢陽城)은 일개 성인데도 날로 불어나는 백만의 군사를 막았으며, 진창(陳倉)은 일개 고을인데도 죄를 캐물으러 오는 와룡(臥龍)의 군사에 항거하였습니다. 아아, 윤탁(尹鐸)이 보장(保障)을 설치한 것과 전단(田單)이 군사를 사랑한 것, 순원(巡遠)이 나라에 충성한 것은 지금까지도 혁혁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즉 그 당시의 공은 아마도 병가(兵家)의 장기(長技)에만 달려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창을 함락시키지 못한 것은 하늘이 한(漢)나라를 돕지 않은 것이니, 어찌 한때의 장기만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악비(岳飛)의 충성과 용맹은 만고에 우뚝 뛰어나니, 올출(兀朮)이 패하여 달아난 것이 역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마찰(麻札)의 칼이 괴자(拐子)의 말을 제압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압한 것은 악비인 것입니다. 가령 오늘날 저들에게 그런 말이 있고 우리에게 그런 칼이 있더라도 장수가 악비가 아니면 저는 그 칼로 그 말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하겠습니다.
공손히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남쪽 경계는 왜(倭)와 접해 있고, 북쪽 변경은 호(胡)와 접해 있습니다. 이 두 오랑캐들은 실로 우리나라에게는 상대하기가 버거운 적입니다. 이 두 오랑캐들이 가지고 있는 병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말해 볼 수 있습니다. 화포(火砲)와 병선(兵船)은 남쪽의 왜에게 있는 것이고 북쪽의 오랑캐에게 없는 것이며, 강한 활과 건장한 말은 북쪽의 오랑캐에게 있는 것이고 남쪽의 왜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갑옷이나 방패, 검이나 창과 같은 기계(器械)에 이르러서는 정교하고 날카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거룩하고 신령스러운 분들이 계속해서 임금 자리에 올라 융병(戎兵)을 잘 검칙하였습니다. 이에 성지는 험고하고 기계는 잘 벼리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도이(島夷)가 겁나 숨고, 산융(山戎)이 벌벌 떨며 우리 군사들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이 마땅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독 임진년(1592, 선조25)의 변란에는 남쪽 오랑캐들에게 기왓장이 부서지듯 무너졌고, 정묘년(1627, 인조5)의 난리에는 북쪽 오랑캐들에게 흙덩이가 붕괴되듯 무너졌단 말입니까.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변방에 대한 걱정이 아주 큰데, 남쪽의 왜놈들은 길을 빌려 달라는 거짓 계책을 쓰고 있고, 북쪽의 오랑캐들은 공갈하는 듯한 패만스러운 말을 마구 뱉고 있습니다.
아아, 남쪽의 왜놈들이 스스로 믿고 있는 바는 어찌 병선과 화포, 칼과 창, 갑옷과 방패 등의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북쪽의 오랑캐들이 스스로 믿고 있는 바는 어찌 강한 활과 건장한 말, 칼과 창, 갑옷과 방패 등의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들이 능한 것은 우리 측도 능하고, 저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우리 측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저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흙덩이처럼 무너뜨리고 기왓장처럼 부수면서, 우리에게 길을 빌려 달라고 하고 우리에게 공갈을 해대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 까닭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비록 몸은 초야에 있지만 강개한 마음은 평소 속에 쌓아 두고 있었습니다. 변방 지역에 분란이 많은 데 대해 격분하고, 성상께서 모욕을 받는 데 대해 통분하였습니다. 이에 저 자신의 비천함도 헤아리지 않은 채 저의 하찮은 소견을 진달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밝으신 물음을 받들었는데, 손바닥을 치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집사께서는 굽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아아, 적을 이기는 도구는 참으로 병선에 있고 화포에 있으며, 강한 활에 있고 건장한 말에 있으며, 칼과 창에 있습니다. 배로는 물에 뜰 수가 있고, 화포로는 불태울 수가 있고, 활로는 쏠 수가 있고, 말로는 돌격할 수가 있고, 칼로는 벨 수가 있고, 창으로는 찌를 수가 있고, 갑옷과 방패로는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물에 뜨고, 불태우고, 화살을 쏘고, 적을 베고, 적진으로 돌격하고, 상대를 찌르고, 몸을 보호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위하여 죽지 않고 병기를 내버리고 달아난다면, 몇 가지 병기들은 모두 헛된 것일 뿐입니다. 세상에 어찌 한갓 헛된 병기만 가진 채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싸움에서 이기는 방책은 사람들의 사력(死力)을 다하는 마음을 얻는 것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옛날의 뛰어난 장수들 가운데 사람들의 사력을 다할 마음을 얻지 못하고서도 승리를 거둔 자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병기(兵技)가 뛰어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외방을 맡은 장수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은 채 분발했다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맛난 음식을 끊고 적은 음식을 나누어 주면서 사졸들과 더불어 고생을 함께해 그들의 사력을 다할 마음을 얻은 자가 있다는 말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 점이 바로 임진년(1592, 선조25)에 기왓장이 부서지듯 부서지고 정묘년(1627, 인조5)에 흙덩이가 무너지듯 무너져, 길을 빌려 달라는 간사한 계책과 공갈을 해대는 패만스러운 말이 한꺼번에 나오게 된 이유인 것입니다. 아아, 역시 통탄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저들에게 모욕을 당한 것은 사람 탓이지 병기 탓이 아닙니다. 참으로 간성(干城)의 재주를 가진 장수를 얻어서 그에게 외방 지역의 방어를 맡긴다면, 반드시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하여 그들의 사력을 다하는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대개 우리나라가 깨진 것은 - 아마도 ‘패하게 된 것’일 듯하다. - 사람들이 달아나서입니다. 사람들이 달아나는 것은 윗사람들을 질시하여 그들을 위해서 죽지 않으려고 해서입니다. 참으로 죽음을 피하지 않고 싸운다면, 이는 천하의 정병(精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맨주먹으로도 적을 막을 수 있고, 몽둥이를 들고서도 갑옷을 입은 자를 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남쪽 왜놈과 북쪽 오랑캐들이 가지고 있는 장기를 겸하여 가지고 있는 데이겠습니까. 비록 치우(蚩尤)라 하더라도 상대할 수가 있는데, 더구나 하찮은 오랑캐들이겠습니까. 이것으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적을 제압하는 요체가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은데도 임금께서 구하여 찾지 않는 것이 걱정일 뿐입니다. 임금께서 성심으로 찾아 구하지 않으신다면, 그런 사람은 참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승리를 쟁취하는 방책은 참으로 장수를 얻는 데 있는데, 장수를 얻는 근본은 또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참으로 우리 전하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세도(世道)가 비천해져서 풍속이 나빠진 탓에 뛰어난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저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왜냐면, 부열(傅說)은 이윤(伊尹)이 살았던 시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이윤과 같았으며, 여아(呂牙)는 부열이 살았던 시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부열과 같았으며,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여아가 살았던 시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여아와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백기(白起)는 진(秦)나라의 장수였고, 한팽(韓彭)은 한나라의 장수였고, 영위(英衛)는 당나라의 장수였는데, 백기의 뼈가 썩어 없어진 뒤에 한나라에 명장이 있었고, 한팽의 뼈가 썩어 없어진 뒤에 당나라에 명장이 있어, 피차간에 각각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의 무사를 버려두고 옛날의 썩은 뼈에서 찾으려고 한단 말입니까.
아아, 장수라는 것은 나라를 지탱해 주는 자입니다. 나라의 존망과 백성의 사생이 달려 있습니다. 옛날에 진(秦)나라 소왕(昭王) 때 백기가 죽은 뒤에 소왕이 조회에 참석해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초(楚)나라의 쇠칼이 예리하고 창우(倡優)들은 졸렬하다고 하니, 나는 초나라에서 진나라를 도모할까 봐 걱정된다.” 하였습니다. 한나라 문제(文帝) 때에는 흉노(匈奴)가 변경 지역을 침입했는데, 그 걱정이 작았습니다. 문제가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말하기를 “아아, 나만 유독 염파와 이목 같은 장수를 얻을 수 없단 말인가? 그런 장수를 얻는다면 내가 어찌 흉노 따위를 걱정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진나라의 강성함은 천하에 상대가 없었고, 한나라 때에는 온 천하가 태평하였습니다. 진나라의 강성함은 초나라가 도모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으며, 한나라의 잘 다스려짐은 흉노 따위가 어지럽힐 수 있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장수가 될 만한 적임자를 얻지 못하자, 진나라는 그 때문에 두려워하였고, 한나라는 그 때문에 걱정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강성함은 진나라에 미치지 못하고, 잘 다스리는 정치는 한나라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남쪽과 북쪽으로 강성한 적들을 마주하고 있는 처지에서도 장수가 없는 것을 걱정할 줄 모르니, 신은 몹시 의혹스럽습니다. 집사께서 변방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지극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 물음이 유독 기계(器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만 묻고 장수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아아, 집사의 뜻을 잘 알 수 있겠습니다. 이른바 승리를 쟁취하는 요체가 참으로 장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집사께서 물으신 것은 장수에 대해 물은 것이지, 장기(長技)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찮은 사람이 올린 말이라는 이유로 내버리지 말고 구중궁궐에 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篇)을 짓기를 마치게 되어서 또다시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아, 승리를 쟁취하는 요체는 장수에게 달려 있는 데 불과하지만, 이는 오히려 둘째입니다. 첫째는 임금에게 달려 있습니다. 손자(孫子)가 말하기를 “임금 중에는 누가 도(道)가 있고, 장수 중에는 누가 능력이 있는가?” 하여, 먼저 임금이 도가 있는가를 묻고, 다음으로 장수가 능력이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니 손자와 같은 사람은 근본을 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이에 대하여 논하여 본다면, 장기(長技)는 뛰어난 장수만 못하고, 뛰어난 장수는 어진 임금만 못합니다.
지금 만 곡(斛)을 싣는 배를 밀고, 천 리를 달리는 말을 달리며, 의천(倚天)의 검을 잡고, 오호(烏號)의 활을 당기고, 수서(水犀)의 갑옷을 입었더라도 그 장수가 조괄(趙括)이라면, 백기(白起)를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태공(太公)이 상장(上將)이 되고,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손무(孫武)가 좌군(左軍)을 거느리고, 오기(吳起)가 우군(右軍)을 거느리고,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이 선봉장이 되고, 한신(韓信)과 팽월(彭越)이 후군(後軍)이 되었더라도 그 임금이 주(紂)라면, 무왕(武王)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말미암아 논해 본다면, 천하의 장기(長技)를 모두 합하여 병기로 삼았더라도 그 장수가 능력이 있는 것만 못하며, 만고의 영웅들을 합하여 장수로 삼았더라도 그 임금이 도가 있는 것만 못합니다.
현재 성상의 덕은 참으로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속에 품은, 권권(眷眷)해하는 생각은 삼가 우리 임금께서 요(堯) 임금이나 순(舜)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곤직에 잘못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중산보가 이를 깁는다.〔袞職有闕 維仲山甫補之〕” 하였는데, 오늘날에 곤직을 기워 주는 것은 집사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집사께서는 깊이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삼가 대책을 올립니다.
P.S) 하지만, 정두경이 을사사화를 일으킨 정순붕(鄭順朋)의 5대손임을 들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자라 하여 조정에서 온갖 태클을 걸어왔고, 벼슬길도 순탄치 못하였지요.
단지 최명길만이 변호할 뿐이었습니다. 대책도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효종이 즉위하고 벼슬길이 조금 순탄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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