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이 발해땅을 못취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왕건이 발해땅을 못취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1789년 5월에 정조가 내각(內閣)에서 낸 시험문제중 일부입니다.

이에 정약용을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정약용이 이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합니다)



다산시문집 대책(對策) 지리책(地理策) 中


정조

발해(渤海)의 옛 강토가 절반쯤은 거란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고려 태조가 통일은 하였으나 어찌 여한이 없겠는가?


정약용

발해(渤海)가 절반 가량은 거란에게 흡수되어 버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신이 살펴보건대,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에 발해가 뒤를 이어 일어났는데, 당 현종(唐玄宗) 시대에 이르러서는 발해왕 대조영(大祚榮)이 부여(夫餘)ㆍ옥저(沃沮)ㆍ조선 땅들을 모조리 차지하여 국토가 사방으로 수천 리나 되었습니다. 가탐(賈耽)의 《군국지(郡國志)》에 ‘발해의 땅이 동쪽 천정(泉井 덕원(德原)의 옛 이름)에서 서쪽 책성(柵城)까지 통틀어 39역(驛)으로서, 압록강(鴨綠江) 이북까지 강토를 멀리 개척했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遼) 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킨 후로는 압록강 이북 지방은 모조리 요 나라의 통치권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오직 압록강 이남에 있는 보주(保州)와 정주(定州)만이 그런대로 신라에 예속되었으며, 그 뒤에 고려 태조도 발해의 옛 강토를 수복 개척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한스러운 일입니다.



요약
정조 : 왕건이 발해땅 못먹어서 아쉬웠을까? 네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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