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宋史) 양재흥(楊再興) 열전 국역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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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再興,賊曹成將也。
紹興二年,岳飛破成,入莫邪關。
第五將韓順夫解鞍脫甲,以所虜婦人佐酒。
再興率眾直入其營,官軍卻,殺順夫,又殺飛弟飜。
成敗,再興走躍入澗,張憲欲殺之,再興曰:
「願執我見岳公。」
遂受縛。
飛見再興,奇其貌,釋之,曰:
「吾不汝殺,汝當以忠義報國。」
再興拜謝。

양재흥(楊再興)은, 도적(盜賊) 조성(曹成)의 장수(將帥)이다.

소흥(紹興/송 고종의 #2 연호) 2년(1132년)에, 악비(岳飛)가 조성(成)을 격파(擊破)하고, 막사관(莫邪關)에 들어갔다.

(악비의) 제(第) 5장(五將)인 한순부(韓順夫)가 해안(解鞍/안장을 풂)하고 탈갑(脫甲/갑옷을 벗음)하여, 

소로(所虜/포로로 잡음)한 부인(婦人)과 좌주(佐酒/술자리를 함께 함)하였다.

양재흥(楊再興)이 솔중(率眾/무리를 거느림)하여 그 영(營)에 직입(直入/곧장 들어감)하여, 

(한수부의) 관군(官軍)을 물리치고 한순부(韓順夫)를 죽였으며, 또한 악비(岳飛)의 동생 악번(飜)을 죽였다.

조성(曹成)이 패(敗)하자, 양재흥(楊再興)은 주약(走躍/빨리 도주함)하여 산골짜기로 들어갔는데,

장헌(張憲)이 죽이고자 하였는데, 양재흥(楊再興)이 말하길

「원(願)컨데 나를 사로잡아 악공(岳公)에게 보이시오.

드디어 수박(受縛/포박을 받음)하였다.

악비(岳飛)가 양재흥(楊再興)을 보고는, 그 외모(外貌)가 기특(奇特)하니, (포박을) 풀어주며 말하길

「내가 너를 죽이지 않겠으니, 너는 마땅히 충의(忠義)로써 보국(報國)하라.

양재흥(楊再興) 배사(拜謝/절을 하여 사례함)하였다.



飛屯襄陽以圖中原,遣再興至西京長水縣之業陽,殺孫都統及統制滿在,斬五百餘人,俘將吏百人,餘黨奔潰。
明日,再戰于孫洪澗,破其眾二千,復長水,得糧二萬石以給軍民,盡復西京險要。
又得偽齊所留馬萬匹,芻粟數十萬。
中原回應。
復至蔡州,焚賊糧。
악비(岳飛)가 중원(中原)을 도모(圖謀)하고자 양양(襄陽)에 주둔(駐屯)하고는, 
양재흥(楊再興)을 보내 서경(西京) 장수현(長水縣)의 업양(業陽)에 이르게 하였는데,
(양재흥이) 손도통(孫都統)과 더불어 통제(統制) 만재(滿在)를 죽이고, 500 여인을 참(斬)하였으며,
장리(將吏/군관) 100인을 사로잡았으며, 여당(餘黨/남은 무리)은 분궤(奔潰/무너져 도망 감)하였다.
명일(明日/다음날)에, 손홍간(孫洪澗)에서 재차 싸워, 그 무리 2천을 격파(擊破)하고,
장수(長水)를 회복(回復)하였으며, 양식(糧食) 2만 석(石)을 획득(獲得)하여 군민(軍民)에게 공급(供給)함으로써,
서경(西京)의 험요(險要/험하고 중요한 곳)를 복진(盡復/모두 회복함)하였다.
또 위제(偽齊/가짜 제나라/금이 세운 괴뢰국 유예劉豫의 제나라)에 소속(所屬)된 유마(留馬/징발된 말) 만 필(匹)을 획득하니,
추속(芻粟/꼴과 군량)이 수십만(萬)이었다.
중원(中原)이 회응(回應/응하여 돌아옴/제나라에서 다시 송으로 돌아옴)하였다.
다시 채주(蔡州)에 이르러, 적량(賊糧/적의 군량)을 불살랐다.

위제(偽齊) : 가짜 제나라, 금이 북송을 멸하면서 1130년 괴뢰국 나라를 세우면서 
                 1128년 항복한 제남지부(濟南知府) 유예(劉豫)를 황제로 삼음.
                 남송의 한세충과 악비가 공격하자 민병 30만으로 대항하였으나 거듭 패하고 1137년 폐위됨.


飛敗金人於郾城,兀朮怒,合龍虎大王、蓋天大王及韓常兵逼之。
飛遣子雲當敵,鏖戰數十合,敵不支。
再興以單騎入其軍,擒兀朮不獲,手殺數百人而還。
兀朮憤甚,並力復來,頓兵十二萬於臨潁。
再興以三百騎遇敵于小商橋,驟與之戰,殺二千餘人,及萬戶撒八孛堇、千戶百人。
再興戰死,後獲其屍,焚之,得箭鏃二升。
악비(岳飛)가 금인(金人)을 언성(郾城)에서 깨트리자, 올출(兀朮/종필宗弼/금태조 아골타의 4남)이 노(怒)하여,
용호대왕(龍虎大王) 및 개천대왕(蓋天大王)과 더불어 한상(韓常)의 병(兵)과 합(合)하여 핍박(逼迫)하였다.
악비(岳飛)가 아들 악운(雲)을 보내 당적(當敵/대적)하게 하였는데, 수십합(數十合)을 오전(鏖戰/격렬하게 싸움)하니,
적(敵)이 부지(不支/지탱하지 못함, 버티지 못 함)하였다.
양재흥(楊再興)이 단기(單騎)로써 그 군(軍)에 들어가, 올출(兀朮)을 사로잡으려 하였으나 부획(不獲/획득하지 못 함)하였는데,
수백인(數百人)을 수살(手殺/손수 죽임)하고는 돌아왔다.
올출(兀朮)의 분노(憤怒)가 심(甚)하여, 병력(並力/군사를 병합함)하여 복래(復來/다시 옴)하고는,
12만(萬)을 임영(臨潁)에서 돈병(頓兵/군대를 주둔함)하였다.
양재흥(楊再興)이 300기(騎)로써 소상교(小商橋)에서 적(敵)과 만나자, 여러 번 더불어 싸워 2천 여인을 죽였는데, 
만호(萬戶) 살팔(撒八) 패근(孛堇/여진 관명)과 천호(千戶) 100명에 미치었다.
양재흥(楊再興)이 전사(戰死)하고 그 시신(屍身)을 후획(後獲/후에 획득함)하여 태웠는데,
얻은 전촉(箭鏃/쇠로 된 화살촉)이 2승(二升/두 되)이었다.


*소상하(小商河) 전투에서 양재흥의 300기가 여진 기병으로 돌진하여 특모패근(忒母孛堇)에 해당하는 만호 살팔과 

  맹안패근(猛安孛堇)에 해당하는 1000호장, 모극패근(谋克孛堇)에 해당하는 100호장, 포련패근(蒲辇孛堇)에 해당하는 50호장

  포함하여 약 100여인의 군관을 죽였다고 함.



-끝. 번역자(길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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