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중국이라는 큰 나라의 황제가 돌아가신 그 어느 날
황태후와 신하 간에 황위 계승을 놓고 한판 입배틀이 벌어졌으니..........
황태후 향씨 : 첫째 황제가 죽었고, 아들도 없으니 빨리 다음 황제를 세워야 함.
장돈 : 예법에 의해 돌아가신 황제 폐하의 동복동생 넷째가 황제가 되어야 함.
황태후 : 나이로 따지면 둘째가 되어야 하는데 눈병이 있으니, 당연히 셋째가 황제감.
장돈 : 노망나셨나? 나이로 따지면 둘째, 예법을 따지면 넷째지.
황태후 : 모두 내 남편의 아들들인데, 다 자격이 있음. 차례대로 셋째가 황제감.
증포 : 장돈 너 우리랑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당연히 황태후 말씀 들어야지.
채변+허장상 : 옳소! 물러나라 장돈!
황태후 : 옛날에 남편이 말하길 아들 중에 셋째가 제일 건강하고 효심이 깊다고 했음.
장돈 : ......................
속마음
황태후 향씨 : 주씨 그X 나 아들 없다고, 후실 주제에 감히 날 깔봐
첫째 아들 황제 됐다고, 날 얼마나 무시했어 ㅠ.ㅠ
넷째 그놈까지 황제 만들 순 없어!!!!!!!!!
셋째 개가 얼마나 이뻐. 얼굴도 서글서글하고,
뭣보다도 개는 감수성이 풍부해. 예술성이 있어, 예술성이.......
장돈 : 우라질. 그따위 카사노바가 무슨 황제감. 드디어 나라가 산으로 가는 구먼.
증포 : 장돈 이젠 물러나야지 ㅋㅋ
채변+허장상 : 증포님을 총리로!!!
출연
황태후 향씨 : 신종황제의 정실.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음
장돈 : 집권당 신법당 총재.
증포 : 신법당 부총재
채변+허장상 : 신법당 소속 의원?
첫째 : 철종 . 신종황제의 6남. 덕비 주씨 아들
둘째 : 신왕 조필. 신종황제의 9남. 현비 무씨 아들
셋째 : 단왕 조길. 신종황제의 11남. 귀의 진씨 아들
넷째 : 간왕 조사. 신종황제의 13남. 덕비 주씨 아들
※ 정실 황태후 향씨와 덕비 주씨 사이가 극히 안 좋았다고 함
※ 신법당/구법당
→ 서하와의 전쟁 이후 서하와 요에 납부하는 세폐가 대폭 증가
전쟁으로 인해 병사의 수는 늘어났으나, 군비 확충을 못해 질이 크게 떨어짐
서민들의 무임금 노역 증가, 빈농들 대지주로의 예속화, 세액 감소
→ 극심한 나라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신종조 왕안석이 기존 부유층의 자금을 극빈층으로 옮기는 신법을 만듦.
1.노역에 시달리는 빈민들에게 품삯을 준다거나 ↔ 노역이 면제되던 계층에게 돈을 받는다거나
2.소상인에게 저리의 돈을 빌려준다거나 ↔ 대상인의 독점을 막는다거나
3.농민들에게 나라에서 저리의 돈을 빌려준다거나 ↔ 지주들의 소작농 착취를 금한다거나
4.나라에서 직접 각 지역 간 장사를 하여 이윤을 얻는다거나 ↔ 각 지역의 상인들의 상권을 침해한다거나
5.돈이 생긴 농민들에게 자체 말을 기른다던가 하여 국방비를 줄인다던가 ↔ 문치의 평화로운 세상을 어지럽힌다거나
이에 기존 사마광(자치통감의 저자)을 대표로 하는 보수파 구법당이 강력하게 반발
후에는 신법당 조차 구법당과의 당쟁의 수단으로 변질됨
쉽게 : 서민을 살려 나라를 튼튼하게 하자! VS 대책 없는 복지정책은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
→ 후에는 서로 왜 싸우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싸움. 당쟁을 위한 당쟁이 되어감.
이렇게 하여 예술을 사랑하시어 송나라를 시원하게 말아드신 임금이 등극하였으니................
송사 1100년 1월 기사中
元符三年正月己卯,哲宗崩,皇太后垂簾,哭謂宰臣曰:
「國家不幸,大行皇帝無子,天下事須早定。」
章惇又曰:
「在禮律當立母弟簡王。」
皇太后曰:
「神宗諸子,申王長而有目疾,次則端王當立。」
惇厲聲對曰:
「以年則申王長,以禮律則同母之弟簡王當立。」
皇太后曰:
「皆神宗子,莫難如此分別,於次端王當立。」
知樞密院曾布曰:
「章惇未嘗與臣等商議,如皇太后聖諭極當。」
尚書左丞蔡卞、中書門下侍郎許將相繼曰:
「合依聖旨。」
皇太后又曰:
「先帝嘗言,端王有福壽,且仁孝,不同諸王。」
於是惇為之默然。
乃召端王入,即皇帝位,皇太后權同處分軍國事。
원부(元符/송 철종哲宗의 연호) 3년 (1098년) 1월 기묘일(己卯日)에, 철종(哲宗)이 붕어(崩御)하니,
황태후(皇太后)가 수렴(垂簾/발을 드리움, 수렴청정)하였고, 곡(哭)하여 이르며 재신(宰臣/재상)에게 말하길
「국가(國家)가 불행(不幸)하여, 대행황제(大行皇帝/아직 시호를 봉하지 않은 황제)가 자식이 없었으나,
천하(天下)의 일은 모름지기 서둘러 정해야 한다.」
장돈(章惇)이 또 말하길
「예율(禮律/예법)에 따라 당연히 (철종의) 모제(母弟/동복동생) 간왕(簡王)을 세워야 합니다.」
황태후(皇太后)가 말하길
「신종(神宗)의 각 아들 중에, 신왕(申王)이 연장자이나 목질(目疾/눈병)이 있고,
다음이 곧 단왕(端王)이니 (단왕을) 당연히 세워야 한다.」
돈(惇)이 여성(厲聲/성이나 크게 소리침)하여 대답하여 말하길
「연수를 따지면 곧 신왕(申王)이 연장자이고, 예율(禮律)에 따르면 곧 동복동생인 단왕(簡王)을 당연히 세워야 합니다.」
황태후(皇太后)가 말하길
「모두 신종(神宗)의 아들이고, 이와 같이 분별(分別)에 어려움이 없으니, 차례에 의해 단왕(端王)을 당연히 세워야 한다.」
지추밀원(知樞密院) 증포(曾布)가 말하길
「장돈(章惇)이 신등과 더불어 상의(商議/서로 의논함)한 적이 없었고,
이에 황태후(皇太后)의 성유(聖諭/황태후나 임금의 가르침)가 극(極)히 당연합니다.」
상서좌승(尚書左丞) 채변(蔡卞)과 중서문하시랑(中書門下侍郎) 허장상(許將相)이 이어 말하길
「성지(聖旨/황태후나 임금의 뜻)를 모으고 따라야 합니다.」
황태후(皇太后)가 또 말하길
「선제(先帝)가 일찍이 말하길, 단왕(端王)은 복수(福壽/장수)가 있고, 또 인효(仁孝/인자하고 효행이 있음)하여,
각 왕(王)들과는 같지 않다 하였다.」
그리하여 돈(惇)은 묵연(默然/입을 다문 채 잠자코 있음)하였다.
이내 단왕(端王)을 불러 들어오게 하여, 황제(皇帝)의 위(位)에 나아가니, 황태후(皇太后)가
권동처분군국사(權同處分軍國事/수렴청정/임조칭제臨朝稱制)하였다.
*황태후(皇太后) 향씨(向氏) : 신종의 정실로 흠성현숙황후(欽聖憲肅皇后),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음.
*철종 조후(趙煦) : 신종의 후실인 덕비주씨(德妃朱氏/흠성황후欽成皇后 추존) 소생으로 6남
*신왕(申王) 조필(趙佖) : 신종의 후실인 혜목현비(惠穆賢妃) 무씨(武氏) 소생으로 9남, 철종 사후 신종의 아들 중 제일 연장자
*단왕(端王) 조길(趙佶) : 신종의 후실인 귀의진씨(貴儀陳氏/흠자황후欽慈皇后 추존) 소생으로 11남, 휘종
*간왕(簡王) 조사(趙似) : 신종의 후실인 덕비주씨(德妃朱氏/흠성황후欽成皇后 추존) 소생으로 13남, 6남이었던 철종의 동복동생
덕비주씨는 흠성현숙황후와 사이가 나빴다고 함
P.S) 만약에
1. 철종이 25세로 일찍 죽지 않았다면.......
2. 철종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3. 황태후의 딸이 아들이었다면.....
4. 황태후와 주씨와 사이가 좋았다면.....
5. 황태후와 진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6. 둘째 조필이 눈이 좋았다면.....
7. 넷째가 예법대로 황제가 되었다면.....
8. 증포가 장돈을 시기하지 않고 따랐다면.....
9. 셋째 조길이 건강하지 않았다면....... 너무 건강해서 탈 -_-;
P.S2) 휘종의 즉위가 북송을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고 보시는지요?
만약 이 당시 북송에 고려 문종과 같은 이가 황제로 등극하였다면
문무를 고루 갖추고 정비하여, 요금의 혼란 속에 연운 16주를 회복하고
북진에 성공하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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