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금나라에서 3, 4대 황제가 피살되고, 황족이 몰살되었으며,
남송에게 거듭 패하던 금나라에
5대 황제 세종이 즉위하여 선정을 베풀 무렵인 1163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고려의 임금은 [제대로 놀아볼테야]를 시전하고 계시는 의종 폐하님의 치세였는데요.
서북면 압록강 금과 고려의 국경지대에서
난데없이 고려군이 국경을 넘어 금군의 진지를 공격하고 땅을 점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실상은 이렇습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정주와 인주 사이에 섬[대략 위화도]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고려 땅이었나 봅니다.
헌데 금군이 이곳을 차지하고 보루와 진지를 세운 모양입니다.
1163년 가을 당시 서북면에 발령받은 병마부사 김광중(金光中)은
[내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공을 세워 보겠다]라는 공명심에
조정에 보고도 않고 단독으로 휘하의 군을 움직여
그 섬을 공격해 금군을 내쫓고 보루와 진지를 불태웁니다.
또한 그 섬에 고려군을 주둔시키며 둔전 하게 하지요.
이일이 1164년에 금 세종에게 보고되었고, 1165년 1월 1일에 금 세종은 정월 축하 사신인
고려의 김장에게 이를 물어봅니다.
<저번에 우리 국경을 침략한 게 너희 임금의 뜻이냐? 아니면 장수가 독단으로 한 것이냐?
만약 장수가 독단으로 하였다면 너희 임금은 그 장수를 벌해야 한다>
이 소식이 고려 조정에 들어오자, 의종은 윤인첨에게 그 섬을 돌려줘라 명합니다.
헌데 윤인첨은 <아니? 땅을 주라고?>라고 하며 왕명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러다 3월에 금에서 드디어 병사를 파견해 그 섬을 공격해 고려 병사 17명을 포로로 잡아갑니다.
하니 윤인첨이 왕에게 보고도 않고 독단으로 사람을 보내 금의 국경수비대와 포로 협상을 하게 되지요.
하여 금이 고려 군졸을 풀어주게 됩니다. 역시 의종에게는 아뢰지 않았지요.
뭐 이때는 의종이 정사는 제쳐두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ㅎ
송사전 금열전 1164년 기사中
○ 대정(大定) 4년(A.D.1164; 高麗 毅宗)에 압록강(鴨綠江) 보수(堡戍)가 [고려(高麗)의] 침입을 받아 약간 불타고 허물어졌다.
○ [대정(大定)] 5년(A.D.1165; 高麗 毅宗) 정월에 세종(世宗)이 [고려(高麗)의] 정단사(正旦使)가 하직 인사를 하자 효유(嘵諭)하기를, “변경의 뜻밖에 일어난 작은 [변란은] 너의 임금이 시켜서 그러한 것이냐? 국경을 지키는 관리가 저지른 것이냐? 만약 국경을 지키는 관리가 저질렀다면 너의 임금도 당연히 그를 징계하여야 한다.”하였다.
고려사 1165년 3월 기사中
○ 3월에 금 나라 대부영주(大夫營主)가 정예병 70여 명을 보내어 인주(麟州)ㆍ정주(靜州) 두 관내의 섬을 공격하여 정주를 지키고 있던 별장(別將) 원상(元尙) 등 16명을 잡아서 돌아갔다. 그 섬은 인주ㆍ정주와의 거리가 7, 8천 보 되는 곳으로, 두 고을의 백성이 일찍이 왕래하면서 농사짓고 고기잡고 나무하고 풀깎던 곳이었는데, 금 나라 사람이 틈을 타서 나무도 하고 가축도 먹이면서 많이 살아왔었다. 계미년 가을에 급사중 김광중(金光中)이 병마부사(兵馬副使)가 되어, 땅을 수복하여 공을 세우려고 제 마음대로 군사를 동원해 그들을 공격하여 그 막사를 불사르고는, 수비하는 군대와 둔전을 두었다. 김장이 금 나라에 가니, 금 나라 임금이 김장을 책망하기를, “변경에 뜻밖의 일이 생기니, 그것은 너희 임금이 시켜서 한 짓이냐 변방 관리의 소행이냐. 과연 변방 관리의 소행이라면, 너희 임금은 마땅히 그 관리를 징계할 것이다." 하였다. 김장이 돌아와 아뢰니, 왕이 이에 그 섬을 반환하고 명하여 수비 군병도 철수하게 하였으나, 서북면 병마부사 윤인첨 등이 국토가 줄어짐을 부끄럽게 여겨서 오히려 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금 나라에서 장차 공격해 오려고 하였다. 인첨이 두려워하여 의주 판관(義州判官) 조동희(趙冬曦)와 비밀히 모의하고, 드디어 대부영(大夫營)에 첩문을 보내 모든 포로를 반환하겠다고 자청하여 다음날에 돌려 보내고도, 인첨 등이 비밀에 붙이고 아뢰지 않았다.
고려사 윤인첨 열전中
인주(麟州)와 정주(靜州) 어간에 섬이 있었는데 금나라 사람들이 그곳에 많이 와서 살고 있는 것을 병마 부사 김광중(金光中)이 공격하여 축출하고 수비병을 두었더니 금나라 임금이 그 섬을 양도하라고 힐책하므로 왕은 그 섬을 돌려주고 수비병을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윤인첨 등은 국토를 타국에 할양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더니 금나라 대부 영주(大夫營主)가 정예 군인 70여 명을 파견하여 그 섬을 공격하고 고려의 방수 별장(防守別將) 원상(元尙) 등 16명을 붙잡아 갔다. 윤인첨이 겁이 나서 의주 판관 조동희(趙東曦)와 밀의하고 공문을 보내 포로를 송환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더니 이튿날 돌려 보내 왔다. 윤인첨 등이 이 사건을 비밀에 붙이고 보고하지 않았더니 정부에서 알고 문책하였으나 윤인첨은 처벌당할 것이 두려워서 이리 저리 꾸며 대면서 끝내 보고하지 않았다.
무대가 된 정주와 인주 근처의 섬, 위화도
감탄하시는 짝다리 동관님의 말씀!
P.S) 김광중은 1170년 이의방의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숨었다가 박광승의 밀고로 죽임을 당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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