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오걸매가 형 아골타의 뒤를 이어 금황제가 된지 2년째 되던 1124년.
당시 오걸매가 이끄는 금나라는 요나라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고 있었고,
서하마저 쳐들어 가 항복을 받아 내던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시기였는데.......
오걸매가 어떤 인물인고 하면.
그 옛날 요나라 천조제가 두어연에서 아골타에게 춤을 춰보라고 명했는바
아골타는 배알이 뒤틀려 춤을 추지 않았고, 이에 천조제는 아골타를 죽여 버리려고 하였는데
이때 오걸매 등이 호랑이와 곰을 때려잡아 천조제의 마음을 돌릴 정도로 맹장이었는데
아골타(阿骨打) 술자리에서 죽을뻔하다2 - 두어연(頭魚宴) http://cafe.naver.com/booheong/85190
그런데 이때 신하라 칭하던 고려가 까분다는 갈라전(예전의 동북9성) 지역의 급보?가 날라 드는데.....
금사 태종 1124년 5월 기사中
乙巳,曷懶路軍帥完顏忽剌古等言:
「往者歲捕海狗、海東青、鴉、鶻于高麗之境,近以二舟往,彼乃以戰艦十四要而擊之,
盡殺二舟之人,奮其兵杖。」
上曰:
「以小故起戰爭,甚非所宜。今後非奉命,毋輒往。」
을사일(乙巳日)에, 갈라로(曷懶路)의 군수(軍帥)인 완안홀랄고(完顏忽剌古) 등이 말하길
「지난번 고려(高麗)의 국경에서 매년 붙잡는 해구(海狗/물개), 해동청(海東青/보라매),
아(鴉/갈까마귀), 골(鶻/송골매)을 잡기 위해, 근자(近者)에 배 두척으로 가게 하였는데,
그쪽에서 이내 전함(戰艦) 14척으로 기다리다가 공격하여,
두 배의 사람을 모두 죽이고, 그 병장(兵杖/병장기兵仗器)을 흔들었습니다.」
상(上)이 말하길
「이런 작은 일로 전쟁(戰爭)이 일어난다면, 심(甚)히 마땅한 바가 아니다.
이제부터 봉명(奉命/명을 받듦)하지 않고서는, 문득 (고려의 바다에) 가지 마라.」
사실 고려에서는 1123년에도 여진의 선박이 동해를 통해 고려 영내로 들어오면
곧장 요격할 태세를 갖춰 놓은 상태였다는데...
고려사 1123년 6월 기사中
을유일. 동남해(東南海) 도부서사(都部署使) 박경린(朴景麟)이 여진의 병선 30척이 국경을 침범했다고 잘못 보고하는 바람에 병마판관(兵馬判官) 양제보(楊齊寶) 등을 추가로 보내어 방어하게 했는데 경주(慶州 :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까지 갔으나 적군을 보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한줄요약
→ 고려 : 신하라 말했지만~ 오기만 해? ㅋㅋ
→ 갈라전 : 아뉘 우리 예전 여진 아니거던? 황제님아 혼쭐좀~
→ 오걸매 : 그냥 고려는 건들지 마셈
헌데 2달도 채 안돼 또 갈라전에서 연락이 옵니다.
금사 태종 1124년 7월 기사中
壬辰,鶻實答言:
「高麗約吾叛亡,增其邊備,必有異圖。」
詔曰:
「納我叛亡而弗歸,其曲在彼。凡有通問,毋違常式。或來侵略,整爾行列,與之從事。敢先犯彼,雖捷必罰。」
임진일(壬辰日)에, 골실답(鶻實答)이 말하기를
「고려(高麗)가 우리와의 약조를 배반하고 업신여겨, 그 변비(邊備/국경의 경비)를 늘리니, 필시 다른 일을 도모할 것입니다.」
조(詔)하여 말하길
「우리를 배반하고 도망간 자들을 받아들여 만약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저쪽에 있다.
무릇 통문(通問/서로 왕래하여 물어봄)이 있으면, 상식(常式)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혹여나 침략(侵略)하여 온다면, 너는 행렬(行列/군대)를 정돈하고, 더불어 일을 쫓으라.
감(敢)히 먼저 저쪽을 범(犯)한다면, 비록 승전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벌(罰)할 것이다.」
-한줄요약
→ 갈라전 : 황제님아~ 진짜 고려 놈들 혼쭐좀
→ 오걸매 : 두번 말 안함. 고려는 건들지 마셈.
P.S) 오걸매의 취미는 음악 감상?
대송 전쟁시 종한과 종망의 원정대가 떠나자 곧장 궁궐에서 신악을 즐겼음 ^^;
송사전 금열전에서도 오걸매가 음악을 매우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음.
P.S2) 이 당시 금이 손봐준 종족은
거란족, 서하 당항족, 해족, 한족, 발해족, 실위족, 달로고족, 올야족, 철려족, 속고족 등 무차별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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