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골타의 당근 "노비해방"

 아골타가 요를 공격하면서 여진 병사들에게 맨 처음 내건 구호는 신분상승이었습니다.

특히나 노비나 천민의 신분해방이 눈에 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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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타가 최초 대요 전투인 찰지수 전투 직전 여진 병사들에게 한말
*찰지수전투 : 여진 2500 vs 요 7000(중앙군2천+거란족,해족3천+발해2천)
  → 최초 전투에서 요의 선봉인 발해군에 밀려 중군까지 위험했으나, 거란본군에 역전(力戰)하여 승리.

금사 태조 1114년 기사中
遂命諸將傳挺而誓曰:
「汝等同心盡力,有功者,奴婢部曲爲良,庶人官之,先有官者敘進,輕重視功。
   苟違誓言,身死梃下,家屬無赦。」
드디어 제장(諸將)에게 몽둥이(挺은 梃의 오기로 보임)를 전하여 맹세하길 명하며 말하길
「너희들은 한마음으로 진력(盡力/있는 힘을 다함)하여, 
   공이 있는 자, 노비(奴婢)와 부곡(部曲/천민층이 살던 고을)은 양민(良民)으로 할것이며,
   서인(庶人/서민,양민)에게는 벼슬을 줄 것이고, 
   이미 관직에 있는자는 서진(敘進/차례를 더함, 진급)할 것이니,
   공(功)의 경중(輕重/가볍고 무거움)을 볼것이다.
   진실로 서언(誓言/맹세)를 어긴다면, 몸은 몽둥이(梃) 죽을것이고, 가속(家屬)은 용서치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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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내부에서도 오랜 부족전쟁을 거치거면서 포로가 되거나 생계가 어려워 노비가 된 사람과
천역에 종사하며 부곡에 거주하는 천민이 있었는데요, 
대요 전쟁을 거치면서 전투에 참여한 노비와 천민은 모두 양민으로 전환이 된듯싶습니다.

게다가 연전연승하면서, 각지에서 항복하는 계요적여진(숙여진), 발해족, 거란족, 한족, 해족, 
실위족 등등에게도 신분해방을 당근으로 내세웠습니다.
당장 발해인과 계요적여진만 하더라도 곧바로 맹안모극에 편입시켜 
<여진과 발해는 원래 같은 집안이다> 며 회유책을 썼고 
(물론 요를 멸한 이후에 발해족은 다시 팽당합니다만.....)
항복한 여러 종족의 수장에게는 만호, 천호 등을 하사하여 벼슬을 그대로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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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아직 항복하지 않은 지역에는 이런 포고문을 내걸기도 하였습니다.

금사 태조 1122년 기사中
十月丙戌朔,次奉聖州。詔曰;
「朕屢敕將臣,安輯懷附,無或侵擾。然愚民無知,尚多逃匿山林,即欲加兵,深所不忍。
   今其逃散人民,罪無輕重,鹹與矜免。有能率衆歸附者,授之世官。或奴婢先其主降,並釋爲良。
   其佈告之,使諭朕意。」
10월 초하루 병술일(丙戌日)에, 봉성주(奉聖州)에 머물렀다. 조(詔)하여 말하길
「짐(朕)이 여러번 장신(將臣/장수)에게 칙서()를 내려, 편안하게 모아 따르고 붙게 하여, 
  혹여나 침요(侵擾/침노하여 씨끄러움)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이 알지 못하고, 오히려 산림(山林/산과 숲)에 도닉(逃匿/도망쳐 숨음)이 
  많다 하니, 곧 병력을 늘려, 숨은 곳을 (공격하는 것은) 차마 하기가 어렵다.
  이제 그 도산(逃散/도망하여 흩어짐)한 인민(人民)은, 죄(罪)의 경중(輕重)에 관계없이, 
  모두 괴로움을 면하게 하라.
  무리를 인솔하여 귀부(歸附)한 유능(有能)한 자는, 세관(世官/세습 관직)을 수여하라.
  혹은 노비(奴婢)가 그 주인보다 먼저 항복하였다면, 모두 양민(良民/평민)으로 풀어주어라.
  마땅히 포고(佈告/널리 알림)하여, 짐(朕)의 뜻을 따르고 깨우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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