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5년 거란vs송vs고려vs정안국vs여진 간략상황

 985년부터 993년까지 동북아 5대 세력이 뒤엉킨 상황을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1편으로 985년 상황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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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년 각세력 상황


거란 : 정안국 2차 토벌 및 여진족 손봐줄 생각中

정안국 : 거란이 또 쳐들어 올까봐 전전긍긍中
여진족 : 고려가 거란과 짜고 괴롭힌다고 생각, 송에 원군요청中
송 : 태종 고려 및 정안국에 거란협공 협조공문 발송中
고려 : 성종 거란 칠까 말까 고민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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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년 요약 상황


1. 거란 : 이번 기회에 압록강 부근 정안국 끝장내고, 여진족놈들 사냥이나 해야겠음

           사실말인데 고려놈들이 제일 골치임.

2. 정안국 : 송형님 Help Me T.T 고려님 얼라이 Plz

3. 여진 : 고려형님 HELP. 아마 고려형님도 공격 당할꺼 같음.

4. 고려 : 거짓말 아냐?

5. 여진 : 형님 진짜라니까!!!

6. 고려 : 내가 니네들 믿을꺼 같음?

※ 거란 정안국 침공, 여진 박살냄

7. 거란 : 여진이 자꾸 귀찮게 해서 박살냈음. 고려는 신경꺼. 우리는 이만 돌아감.

            (다음엔 고려 니들 차례임)

8. 고려 : 어 진짜였네? 여진 10부족 추장은 일루오면 보호해줌

9. 여진 : 송형님~ 거란하고 고려하고 짜고 우리 괴롭힘. 고려가 여진백성 잡고 안돌려줌

10. 송 : 고려 너희들 여진하고 싸우지 말고, 여진백성 풀어줘.

11.고려 : 그게다 여진 이간질임. 난리통에 피난온 여진백성 구휼해준것뿐임. 자 여기 10부족 추장좀 보셈.

            그리고 여진 너무 믿지 마셈. 그놈들 인면수심임. 우리가 겪어봐서 잘암.

12.송 : OK! 여하튼 여진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 

         그리고 정말 중요한데 내가 거란 칠려고 하는데 고려+정안국+여진 원군 와줄꺼지?

13.고려 : 그게 저.....

14.송 : 행동을 확실하게해. 진짜 이번엔 거란 작살낼꺼야. 껄꺼야 말꺼야?

15.고려 : 알았음. 준비하고 있겠음.



송사 외국열전 고려中

○ 앞서 거란(契丹)이 여진국(女眞國)을 정벌할 적에 길이 고려(高麗) 국경을 경유하게 되자, 여진(女眞)은 고려(高麗)가 [거란(契丹)을] 끌어들여 전화(戰禍)를 꾸민 것이라 생각하고 [송(宋)나라에] 말(마,馬)을 바치러 와 조정(朝廷)에 참소하기를, “고려(高麗)가 거란(契丹)과 우호 관계를 맺고 서로 의지하여 후원(後援)으로 삼아 여진(女眞) 백성을 사로잡아가 돌려보내지 아니합니다.” 하였다. [그 후] 고려(高麗) 사신 한수령(韓遂齡)이 들어와 조공(朝貢)하자, 태종(太宗)은 급변(急變)을 알리기 위하여 여진(女眞)에서 올린 목계(木契)를 꺼내어 [한(韓)]수령(遂齡)에게 보여주면서, “본국(本國)에 돌아가거든 사로잡아간 [여진(女眞)] 백성들을 돌려보내 주도록 하라.” 고 하였다. 치(治)는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다가 [송(宋)나라 사신] [한(韓)]국화(國華)가 도착하자 사람을 시켜 한국화(韓國華)에게 말하기를, “지난해 말 겨울에 여진(女眞)이 급히 목계(木契)를 가지고 와 고하기를 ‘거란(契丹)이 군사를 일으켜 여진(女眞) 국경을 침입하였는데, 당도(當道)가 모르고 있을까 두려워 미리 그에 대비하라’고 하였소. [그러나] 당도(當道)는 여진(女眞)과 이웃 나라이기는 하지만 길이 멀 뿐 아니라 여진(女眞)의 속셈을 처음부터 알았고, [그들은] 탐욕스럽고 속이는 것이 많아 믿을 수가 없었소. 그 후 [여진(女眞)이] 또 사람을 파견하여, ‘거란(契丹)의 기병(騎兵)들이 벌써 매하(梅河)를 건너왔다.’고 알려 왔으나 당도(當道)는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의심하였던 터라 구원해 줄 겨를이 없었소. 그런데 얼마 후 거란(契丹)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여진(女眞)을 크게 공격하여 죽이고 노획한 것이 대단히 많았소. [여진(女眞)의] 무리들이 패전하여 흩어져 달아나자 거란(契丹)은 그들의 등뒤를 바짝 추격하여 당도(當道)의 서북 지방인 덕창(德昌)·덕성(德成)·위화(威化)·광화(光化) 등의 지경에까지 이르러 그들을 사로잡아 갔소. 그 때에 거란(契丹)의 한 기병(騎兵)이 광미하(德米河) 북쪽에 이르러 관성(關城)을 지키는 병졸에게 큰 소리로, ‘나는 거란(契丹)의 기병(騎兵)이다. 여진(女眞)이 우리 변경을 침입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다. 이제는 보복을 끝냈으므로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간다.’고 알렸소.

당도(當道)는 [거란(契丹)의] 군사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래도 뜻밖의 변이 있을까 염려하여, 바로 여진(女眞)에서 병란(兵亂)을 피하여 도망 온 천 여명에게 자량(資糧)을 주어 돌려보냈소. 여진(女眞)은 또 당도(當道)에게 매하(梅河)의 중요한 나루터를 봉쇄하고 성루(城壘)를 쌓아 [거란(契丹)을] 방어할 준비를 세우라고 권고하였소. 그래서 역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바야흐로 시찰하고 공사를 일으키도록 하였는데, 뜻밖에 여진(女眞)이 군사를 몰래 출동시켜 갑자기 쳐들어와 [우리]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고, 장정들을 사로잡아 노예(奴隷)로 삼아 다른 지방으로 돌려보냈소. 그러나 [여진(女眞)이] 중조(中朝)에 해마다 조공(朝貢)하기에 감히 병사를 징발하여 보복하지 아니하였는데, 도리어 [우리 고려(高麗)를] 무고(誣告)하여 성덕(聖德)을 현혹시킬 줄이야 어찌 생각하였겠소? 당도(當道)는 대대로 [송(宋)나라의] 정삭(正朔)을 받아 조공(朝貢)을 이행하고 있는데, 감히 두 마음을 품고 외국(外國)과 서로 내통하겠소? 더구나 거란(契丹)은 요해(遼海)의 밖에 끼어 있는데다가 또 대매(大梅)·소매(小梅) 두 강으로 막혀 있으며, 여진(女眞)·발해(渤海) 등은 본시 일정한 주거가 없는데, 어떤 경로를 따라 왔다 갔다 하겠소? 그런데 뜻밖에도 참소하니 울분으로 가슴이 꽉 막히겠소. 해와 달은 지극히 밝으니 명찰(明察)하기 바라오. 요사이는 여진(女眞)에서 난리를 피하여 온 무리를 모두 구휼하였고, 또 관직도 준 경우도 있는데 오래 우리나라에 머무르고 있소. 그 직위가 높은 사람으로는 물굴니우(勿屈尼于)·나원(郍元)·윤능달(尹能達)·나로정(郍老正)·위가야부(衞迦耶夫) 등 십여 명이나 되오. 바라건대 그들을 경사(京師)의 대궐로 불러들여 당도(當道)의 조공(朝貢)하는 사신과 더불어 [대궐] 뜰에서 그 사실을 해명하도록 한다면, 단석(丹石)같은 성심(誠心)이 아마 밝혀질 것이오.”하였다. 그러자 [한(韓)]국화(國華)는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고, 바로 병사를 징발하여 서쪽으로 모이도록 하였다. 그런데 치(治)가 시일이 지체하여 곧장 조서(詔書)대로 행하지 아니하자, 한국화(韓國華)는 자주 독촉하여 병사를 징발하였다는 보고를 듣고서야 환국(還國)하여 여진(女眞)에 대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여 아뢰었다.

 




고려사절요 성종4년 (985년) 5월 기사中

이보다 앞서 거란이 여진을 칠 때, 지나는 길이 우리 국경을 경유하기 때문에 여진은 우리가 적(거란)을 인도하여 화란을 만들었다 말하며 송 나라에 말을 바치고 이어 무고하기를, “고려가 거란과 더불어 서로 지원하며 백성을 약탈한다." 하였다. 한수령(韓遂齡)이 송에 갔을 때, 황제가 여진이 급함을 고한 목계(木契)를 내어 수령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본국에 돌아가거든 그들(여진)의 포로를 돌려보내라고 말하라."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한국화(韓國華)가 오자 왕이 말하기를, “여진은 탐욕스럽고 속임수가 많다. 지난 겨울에 두 번이나 목계를 급히 보내어, 거란의 군사가 그 국경에 다다를 것이라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허위인가 의심하여 곧 구원하지 않았는데, 과연 거란이 와서 사람을 죽이고 노략함이 매우 많았다. 여진의 남은 무리들이 도망하여 우리나라의 회창(懷昌)ㆍ위화(威化)ㆍ광화(光化)의 지경으로 들어왔는데, 거란 군사가 이를 추격하여 잡고 우리 수졸(戍卒)을 불러 말하기를, '여진이 매양 우리 변경 지역을 도둑질하므로 이제 이미 원수를 갚고 군사를 정돈하여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에 여진에서 우리나라로 도망쳐 온 2천여 명이나 되는 자들에게 모두 노자와 양식을 주어 돌려보냈는데, 뜻밖에 도리어 숨어 있던 군사가 갑자기 닥쳐서는 우리 관리와 백성을 살해하고 약탈하며 정장(丁壯)을 사로잡아 가서 적몰하여 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그들이 대대로 중국을 섬기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감히 원수를 갚지 않았는데 어찌 도리어 우리를 무고하여 황제를 속일 줄 알았겠으며, 우리나라는 대대로 정삭(正朔)을 받고 삼가 직공(職貢)을 닦아 깊이 은총을 입고 있는데 감히 두 마음을 갖고 외국과 교통하리오. 하물며 거란은 요해(遼海) 밖에 끼어 살며 또 두 하수(河水 발해(游海)의 요하(遼河)ㆍ혼하(渾河))에 가로막혀 있으므로 서로 사귈 길이 없는데다가 여진에서 피난 와서 우리나라의 관직을 받고 있는 수십 인이 아직도 소명을 바라 궁궐에 달려올 자가 있으며 이자들을 중국으로 불러다가 우리나라의 입공사(入貢使)에게 어전에서 시비를 분별하게 하면 실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니, 황제께 품달(稟達)하여 주기 바란다." 하니, 국화가 이를 허락하였다.



요사 이국외기 고려中

○ 성종(聖宗) 통화(統和) 3년(A.D.985; 高麗 成宗 4) 가을 7월에 모든 도(道)에 조칙(詔勅)을 내려 무기(武器)를 정비하여 동쪽으로 고려(高麗)를 정벌하는데 대비하도록 하였다가, 8월에 요(遼)나라 진펄이 비습(卑濕)한 까닭으로 출병(出兵)을 중지하였다.



송사 외국열전 정안국中

○ [태평흥국(太平興國)] 6년(A.D.981; 高麗 景宗 6) 겨울에 때마침 여진(女眞)의 조공(朝貢) 사신의 길이 정안국(定安國)을 경유하게 되자, 여진(女眞)의 사신에게 부탁하여 표(表)를 부쳐 올렸는데, “정안국왕(定安國王) 신(臣) 오현명(烏玄明)]은 말씀드립니다. 성왕(聖王)의 하늘과 땅에 두루 미친 은혜를 입어 오랑캐의 풍속을 단속하고 있으니, 신(臣) 현명(玄明)은 정말 기뻐서 손뼉을 치고 머리를 조아려 재배(再拜)합니다. 신(臣)은 본래 고려(高[구,句]麗)의 옛땅인 발해(渤海)의 유민(遺民)으로서, 한쪽 귀퉁이에 웅거하여 여러 해를 지내오는 동안 고르게 감싸준 은덕을 우러러 보고 한량없이 적셔준 덕택을 입어 저마다 살 곳을 얻어 본성(本性)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전(年前)에 거란(契丹)이 그 강폭(强暴)함을 믿고 국토를 침입하여 성채(城砦)를 쳐부수고 인민(人民)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러나 신(臣)의 조고(祖考)가 지절(志節)을 지켜 항복하지 않고, 백성들과 함께 [난리를] 피하여 다른 지역으로 가 가까스로 백성들을 보전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또 부여부(扶餘府)가 일전에 거란(契丹)을 배반하고 모두 본국(本國)으로 귀속하였으니 앞으로 닥칠 재화(災禍)가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천조(天朝)의 은밀한 계획을 받아 승병(勝兵)을 거느리고 가 [거란(契丹)] 토벌을 도와 기필코 원수를 갚을 것이며, 감히 명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신(臣) 현명(玄明)은 진실로 정성을 다하여 기원하면서 머리 조아려 재배(再拜)합니다.”라고 하였으며, 그 표(表)의 끝에다, “원흥(元興) 6년(年) 10월(月) 일(日)에 정안국왕(定安國王) 신(臣) 현명(玄明)은 성황제(聖皇帝) 앞에 표(表)를 올립니다.” 하고 기제(記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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