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金史) 본기(本紀) 8세 태조(太祖) 아골타(阿骨打) 국역 7부(1120년)

 안녕하십니까. 길공구입니다.

고려 초중기 국제관계를 알아 보고자, 금사 초입 부분을 국역하고 있습니다.
본기1~3까지만 작업할 예정입니다.

1편 : 본기1 1세 시조(始祖)  함보(函普) http://cafe.naver.com/booheong/80490
2편 : 본기1 2세 덕제(德帝) 오로(烏魯) 
               3세 안제(安帝) 발해(跋海)
               4세 헌조(獻祖) 유가(綏可)
               5세 소조(昭祖) 석로(石魯)
               6세 경조(景祖) 오고내(烏古乃) http://cafe.naver.com/booheong/80574
3편 : 본기1 7세 세조(世祖) 핵리발(劾里缽) http://cafe.naver.com/booheong/81056
4편 : 본기1 7세 숙종(肅宗) 파자숙(頗刺淑) http://cafe.naver.com/booheong/81345
5편 : 본기1 7세 목종(穆宗) 영가(盈歌) http://cafe.naver.com/booheong/81511
6편 : 본기1 8세 강종(康宗) 오아속(烏雅束) http://cafe.naver.com/booheong/81570
7편 : 본기2 8세 태조(太祖) 아골타(阿骨打) 1부 http://cafe.naver.com/booheong/81679
         본기2 8세 태조(太祖) 아골타(阿骨打) 2부 http://cafe.naver.com/booheong/81862
       본기2 8세 태조(太祖) 아골타(阿骨打) 3부 http://cafe.naver.com/booheong/82156
       본기2 8세 태조(太祖) 아골타(阿骨打) 4부(1116년~1117년) http://cafe.naver.com/booheong/82409
       본기2 8세 태조(太祖) 아골타(阿骨打) 5부(1118년) http://cafe.naver.com/booheong/82697
       본기2 8세 태조(太祖) 아골타(阿骨打) 6부(1119년) http://cafe.naver.com/booheong/82762

사전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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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年二月,辭列、曷魯還自宋。
宋使趙良嗣、王暉來議燕京、西京地。
천보(天輔/금 태조의 연호) 4년(1120년) 2월에, 사열(辭列)과 갈로(曷魯)가 송에서 돌아왔다.
송의 사신 조양사( 趙良嗣)와 왕휘(王暉)가 연경(燕京)과 서경(西京)의 땅을 의논하고자 왔다.


三月甲辰,上謂群臣曰:
「遼人屢敗,遣使求成,惟飾虛辭,以爲緩師之計,當議進討。
   其令咸州路統軍司治軍旅、修器械,具數以聞。」
辛酉,詔咸州路都統司曰:
「朕以遼國和議無成,將以四月二十五日進師。」
令斜葛留兵一千鎮守,闍母以餘兵來會于渾河。
遼習泥烈以國書來。
3월 갑진일(甲辰日)에, 상(上)이 군신(群臣/뭇 신하들)에게 이르러 말하길
「요인(遼人)이 여러번 패하여, 사신을 보내 이룸을 얻고자 하며, 
   오직 허사(虛辭/거짓말)만을 꾸미고, 군대를 늦추고자 하는 계략을 꾸미니, 
   마땅히 의논하여 진토(進討/나아가 토벌함)해야 한다.
   이에 명하니 함주로도통사(咸州路統軍司)는 군려(軍旅.군세)를 다스리고, 기계(器械)를 수리하여,
   그 수량을 갖추어 전하라.
신유일(辛酉日)에, 조(詔)하여 함주로도통사(咸州路都統司)에게 말하길
요국(遼國)과의 화의(和議)가 이룸이 없으니 짐(朕)이, 장차 4월 25일에 군사을 진군시키겠다.
명하여 사갈(斜葛)에게 병력 1천으로 진수(鎮守/진영을 지킴)하여 머무르게 하고,
도모(闍母)는 남은 병력으로 혼하(渾河)에서 와서 모이도록 하였다.
요의 습니열(習泥烈)이 국서(國書)를 가지고 왔다.


四月乙未,上自將伐遼。
以遼使習泥烈、宋使趙良嗣等從行。
4월 을미일(乙未日)에, 상이 친히 장수가 되어 요를 정벌하였다.
요 사신 습니열(習泥烈)과 송사신 조양사(趙良嗣)등이 따라 왔다.


五月甲辰,次渾河西,使宗雄先趨上京,遣降者馬乙持詔諭城中。
壬子,至上京,詔官民曰:
「遼主失道,上下同怨。
   朕興兵以來,所過城邑負固不服者即攻拔之,降者撫恤之,汝等必聞之矣。
   今爾國和好之事,反覆見欺,朕不欲天下生靈久罹塗炭,遂決策進討。
   比遣宗雄等相繼招諭,尚不聽從。
   今若攻之,則城破矣!
   重以吊伐之義,不欲殘民,故開示明詔,諭以禍福,其審圖之。」
上京人恃禦備儲蓄爲固守計。
甲寅,亟命進攻。
上謂習泥烈、趙良嗣等曰:
「汝可觀吾用兵,以卜去就。」
上親臨城,督將士諸軍鼓噪而進。
自旦及巳,闍母以麾下先登,克其外城,留守撻不野以城降。
趙良嗣等奉觴爲壽,皆稱萬歲。
是日,赦上京官民。
詔諭遼副統餘睹。
壬戌,次沃黑河。
宗幹率群臣諫曰:
「地遠時暑,軍馬罷乏,若深入敵境,糧饋乏絕,恐有後艱。」
上從之,乃班師,命分兵攻慶州。
余睹襲闍母于遼河,完顏背答、烏塔等戰卻之,完顏特虎死焉。
5월 갑진일(日)에, 혼하(渾河)의 서쪽에 머물며, 사신 종웅(宗雄)을 먼저 상경(上京)으로 달려가게 하고,
항복한 자 마을지(馬乙持)를 보내어 성중을 조유(詔諭/조하여 타이름)하였다.
임자일(壬子日)에, 상경(上京)에 이르자, 조(詔)하여 관민(官民)에게 말하길
요주(遼主)가 실도(失道/도의에 어긋남)하여, 상하(上下)가 모두 원망하였다. 
   짐(朕)이 병을 일으킨 이래, 지나가는 성읍(城邑)마다 부고(負固/험한곳에 의지함)하여 복종하지 않는자는 
   즉시 공격하여 쳐서 빼앗고, 항복한자는 무휼(撫恤/어루만지고 구휼함)하였으니, 너희들도 필시 들었을 것이다.
   지금 너희 나라가 화호(和好/화친)의 일을 하고 있으나, 반복(反覆)하여 기만(欺瞞)하니,
   짐(朕)이 천하의 생령(生靈/생명,생민)이 도탄(塗炭/생활이 고통스럽고 곤궁함)에 빠짐을 오래 근심하지 않을수 없어,
   드디어 결책(決策/책략을 결정함)하여 진토(進討)하였다.
   가려 뽑은 종웅(宗雄)등을 보내 잇달아 초유(招諭)하였으나, 오히려 청종(聽從./듣고 쫓음)치 아니하였다.
   지금 만약 공격한다면, 곧 성은 격파될 것이다! 
   조벌(吊伐/정벌하고 위로함)의 의로움을 소중히 하여, 백성을 해치고자 함이 아니고, 
   명조(明詔/밝은 조서)로 개시(開示/가르쳐 타이름)하고자 하는 연고이니, 화복(禍福/화와 복)을 깨우쳐, 
   그것을 잘 살피고 헤아려야 할 것이다.
상경(上京)의 사람들이 고수(固守/굳게 지킴)의 계책을 마련하여 (양식을) 저축(儲蓄/쌓아놓고 저장함)하여 갖추어 막았다.
갑인일(甲寅日)에, 빠르게 명하여 진공(進攻/나아가 공격함)하게 하였다.
상(上)이 습니열(習泥烈)과 조양사(趙良嗣)등에게 이르러 말하길
「너희들은 나의 용병(用兵)이 꽤 볼만할 것이니, 거취(去就/진퇴,향배)를 점치어 보아라.
상(上)이 친히 성을 내려다 보고, 장사(將士/장졸)과 제군(諸軍/각군)을 감독하여 
고조(鼓噪/북을 치고 함성을 지름)하여 나아갔다.
해가 돋을 무렵부터 사시(巳時/09~11시)에 이르기까지, 도모(闍母)가 휘하(麾下)를 거느리고 선등(先登/맨 먼저 오름)하여,
그 외성(外城)을 함락하니, 유수(留守) 달부야(撻不野)가 성을 들어 항복하였다.
조양사(趙良嗣)등이 잔을 올려 장수를 비니, 모두 만세(萬歲)를 불렀다.
이날에, 상경(上京)의 관민(官民)을 사(赦/용서)하였다.
요의 부통(副統) 여도(餘睹)를 조유(詔諭/조하여 타이름)하였다.
임술일(壬戌日)에, 옥흑하(沃黑河)에 머물렀다.
종간(宗幹)이 군신(群臣)을 인솔하여 간(諫)하여 말하길
「땅은 먼데다 때는 더워, 군마(軍馬)가 파핍(罷乏/둔하고 피로함)하니, 만약 적의 국경에 깊이 들어간다면, 
   양궤(糧饋/양식과 먹이)가 핍절(乏絕/모자라고 떨어지다)하여, 후간(後艱/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상(上)이 (의견을) 따라, 이내 군을 되돌리고, 명하여 병을 나누어 경주(慶州)를 공격하였다.
여도(余睹)가 요하(遼河)에서 도모(闍母)를 습격하니, 완안배답(完顏背答)과 오탑(烏塔)등이 싸워 물리쳤는데, 
완안특호(完顏特虎)가 죽었다.


七月癸卯,上至自伐遼。
7월 계묘일(癸卯日)에, 상(上)이 몸소 요을 정벌하고자 이르렀다.


九月,燭隈水部實里古達等殺孛堇酬斡、僕忽得以叛。
9월, 촉외수부(燭隈水部) 실리고달(實里古達)등이 패근(孛堇/여진 관명) 수알(酬斡)과 복홀(僕忽)을 죽이고 배반하였다.


十月戊辰朔,日有食之。
戊寅,命斡魯分胡剌古、烏春之兵以討實里古達。
10월 초하루 무진일(戊辰日)에, 일식(食/日蝕)이 있었다.
무인일(戊寅日)에, 알로(斡魯)에게 명하여 호랄고(胡剌古)와 오춘(烏春)의 병력을 나눠 실리고달(實里古達)을 토벌하게 하였다.


十一月,東京留守司乞本京官民質子增數番代,上不許,曰:
「諸質子已各受田廬,若復番代,則往來動搖,可並仍舊。」
11월에, 동경유수(東京留守) 사걸(司乞)이 본경(本京) 관민(官民)의 질자(質子/볼모)를 수를 늘려
번대(番代/교대로 번을 섬)하게 하니, 상(上)이 불허하며, 말하길
「각 질자(質子)은 이미 각기 전려(田廬/농가)를 받았는데, 만약 다시 번대(番代)하게 한다면, 
   곧 오고 가며 동요(動搖)가 있을 것이니, 모두 예전대로 하는것이 옳다.


十二月,宋復使馬政來請西京之地。
12월에, 송(宋)이 다시 사신 마정(馬政)을 보내 서경(西京)의 땅을 청(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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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요약

2월 
*사열, 갈로 송에서 돌아옴
*송 사신 조양사, 왕휘 요의 연경과 서경을 청함

3월
-3월04일 요와의 화친 결렬 선언하고 전쟁 준비 지시
-3월21일 
*태조 함주로도통사에게 4월25일 친정하겠다 조함
*사갈에게 1천 병력으로 진영을 지키게 함,
*도모는 남은 병력을 데리고 혼하에 모이라 함
*요 사신 습니열이 국서를 가지고 옴


4월
-4월25일
*태조 친정하여 요 정벌 개시
*요 사신 습니열과 조양사가 태조를 따라옴


5월
-5월05일
*금군 혼하 서쪽에 주둔
*종웅을 상경으로 먼저 보내고, 뒤이어 투항자 마을지를 상경성에 보내 회유함
-5월13일 태조 상경에 이르러 상경성에 투항 조서 내림
→ 상경성 거부
-5월15일
*상경성 공격을 명함
*태조 요 사신 습니열과 송사신 조양사에게 금군의 공성을 지켜보라 말함
*오전 9시에 공성이 시작하여 도모가 맨 먼저 외성을 함
→상경유수 달부야 항복
*송 사신 조양사 잔을 올려 태조의 장수를 빎, 금군 모두 만세를 부름
*상경의 관민을 사면함
*요 부통 야율여도를 조유함
-5월23일
*옥흑하에 주둔
*종간 회군 건의(무더위와 군량 이유)
→ 태조 회군 승낙
→ 회군하면서 경주 공략
*요 야율여도 반격
→ 완안배답, 오탑이 물리침, 완안특호 전사

7월
-7월05일 금 태조 재차 친정


9월
-촉외수부 실리고달이 패근 수알과 복홀을 죽이고 배반

10월
-10월01일 일식
-10월11일 알로에게 호랄고와 오춘의 병력으로 실리고달을 토벌하라 명함

11월
-동경유수 사걸이 볼모의 수를 늘려 교대로 번을 서게 해달라 청하자 동요가 있을 것이라며 태조 거부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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