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金史) 본기(本紀) 7세 세조(世祖) 핵리발(劾里缽) 국역 통합본

 안녕하십니까. 길공구입니다.

고려 초중기 국제관계를 알아 보고자, 금사 초입부분을 국역하고 있습니다.
본기1~3까지만 작업할 예정입니다.

1편 : 본기1 1세 시조(始祖)  함보(函普) http://cafe.naver.com/booheong/80490
2편 : 본기1 2세 덕제(德帝) 오로(烏魯) 
               3세 안제(安帝) 발해(跋海)
               4세 헌조(獻祖) 유가(綏可)
               5세 소조(昭祖) 석로(石魯)
               6세 경조(景祖) 오고내(烏古乃) http://cafe.naver.com/booheong/80574

사전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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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第二子襲節度使,是爲世祖,諱劾里缽。

生女直之俗,生子年長即異居。

景祖九子,元配唐括氏生劾者,次世祖,次劾孫,次肅宗,次穆宗。

及當異居,景祖曰:

「劾者柔和,可治家務。

  劾里缽有器量智識,何事不成。

  劾孫亦柔善人耳。」

乃命劾者與世祖同居,劾孫與肅宗同居。

景祖卒,世祖繼之。

世祖卒,肅宗繼之。

肅宗卒,穆宗繼之。

穆宗復傳世祖之子,至於太祖,竟登大位焉。

둘째 아들이 절도사(節度使)를 세습(襲)하였으니, 이가 세조(世祖)이며, 휘(諱)는 핵리발(劾里缽)이다.

생여직(生女直)의 풍속(俗)에, 아들이 태어나면 연장(年長)자는 곧 이거(異居/다른 곳에 거주함)한다.

경조(景祖)는 아들이 아홉인데,

원배(元配/본처) 당괄씨(唐括氏)가 핵자(劾者)를 생산(生)하였고,

다음이 세조(世祖), 다음이 핵손(劾孫), 다음이 숙종(肅宗), 다음이 목종(穆宗)이다.

이거(異居/다른 곳에 거주함)를 당(當)함에 이르러, 경조(景祖)가 말하길

「핵자(劾者)는 유화(柔和/부드럽고 온화함)하니, 가히(可) 가무(家務/집안일)를 다스릴만하다.

  핵리발(劾里缽)은 기량(器量/재능과 덕량)과 지식(智識)이 있으니, 

  어찌 불성(不成/이루지 못 함)할 일이 있겠는가?

  핵손(劾孫) 역시(亦) 유선(柔善/착하고 부드러움)한 사람일 뿐이다.」

곧 명(命)하여 핵자(劾者)와 더불어 세조(世祖)를 동거(同居/한 집에 같이 거주함)하게 하였고,

핵손(劾孫)과 더불어 숙종(肅宗)이 동거(同居/한 집에 같이 거주함)하게 하였다.

경조(景祖)가 졸(卒)하자, 세조(世祖)가 계승(繼)하였다.

세조(世祖)가 졸(卒)하자, 숙종(肅宗)이 계승(繼)하였다.

숙종(肅宗)이 졸(卒)하자, 목종(穆宗)이 계승(繼)하였다.

목종(穆宗)은 다시 세조(世祖)의 아들에게 전(傳)하여, 태조(太祖)에 이르러, 

마침내 대위(大位/제위)에 오르게 되었도다!



世祖,遼重熙八年己卯歲生。

遼鹹雍十年,襲節度使。

景祖異母弟跋黑有異志,世祖慮其爲變,加意事之,不使將兵,但爲部長。

跋黑遂誘桓赧、散達、烏春、窩謀罕爲亂,及間諸部使貳于世祖。

世祖猶欲撫慰之,語在跋黑、桓赧等傳中。

世祖嘗買加古部鍛工烏不屯被甲九十,烏春欲托此以爲兵端,世祖還其甲,語在《烏春傳》。

세조(世祖)는, 요(遼) 중희(重熙/요 7대 황제 흥종의 #2연호) 8년(1039년) 기묘세(己卯歲) 생(生)이다.

요(遼) 함옹(鹹雍/요 8대 황제 도종의 #2연호) 10년 (1074년)에, 절도사(節度使)를 세습(襲)하였다.

경조(景祖)의 이모제(異母弟/배다른 동생) 발흑(跋黑)이 이지(異志/딴 마음)가 있자,

세조(世祖)가 그 변(變)이 있을까 려(慮/생각함)하여,

가의(加意/특별히 주의함)하여 사(事/일함)하였고,

장병(將兵/장수와 병졸)을 불사(不使/부리지 아니 함)하고는,

단지(但) 부장(部長/부족장)으로 삼았다.

발흑(跋黑)이 마침내 환난(桓赧), 산달(散達), 오춘(烏春), 와모한(窩謀罕)을 유(誘/꾐, 유혹함)하여 

난(亂)을 일으켰고, 더불어 몰래 제부(諸部/여러 부족)로 하여금 세조(世祖)에게 이(貳/두 마음)가 있게 하였다.

세조(世祖)는 오히려 무위(撫慰/어루만지고 위로함)하고자 하였는데,

발흑(跋黑)과 환난(桓赧) 등(等)의 열전(傳) 중(中)에 말이 있다.

세조(世祖)가 일찍이 가고부(加古部) 단공(鍛工/대장장이) 오불둔(烏不屯)에게 피갑(被甲/갑옷) 90벌을 매(買/삼)하였는데,

오춘(烏春)이 이를 병단(兵端/전쟁의 구실)으로 생각하여 탁(托/맡김)하고자 하니,

세조(世祖)가 그 갑옷(甲)을 환(還/돌려보냄)하였는데, 《오춘(烏春) 열전(傳)》에 말이 있다.



部中有流言曰:

「欲生則附于跋黑,欲死則附於劾里缽、頗剌淑。」

世祖聞之,疑焉。

無以察之,乃佯爲具裝,欲有所往者,陰遣人揚言曰:

「寇至!」

部衆聞者莫知虛實,有保于跋黑之室者,有保于世祖之室者,

世祖乃盡得兄弟部屬向背彼此之情矣。

間數年,烏春來攻,世祖拒之。

時十月已半,大雨累晝夜,冰澌覆地,烏春不能進。

既而悔曰:

「此天也!」

乃引兵去。

부중(部中/부족내)에 유언(流言/떠도는 말)이 있어 말하길

「살고자 한다면 곧 발흑(跋黑)에게 귀부(附)하고,

  죽고자 한다면 곧 핵리발(劾里缽)과 파자숙(頗剌淑)에게 귀부(附)하라.」

세조(世祖)가 듣고는, 의심(疑)하였다.

찰(察/살핌)할 수가 없자, 이내 거짓으로 구장(具裝/흉내 내어 갖춤)을 삼아,

소왕(所往/가는 곳)이 있는 자(者)를 알아보고자,

은밀히 사람을 보내 양언(揚言/소리 높여 말함)하여 말하길

「구(寇/도적, 도둑)가 이르렀다!」

부중(部衆/부족 무리)의 들은 자는 허실(虛實)을 알지 못하여,

발흑(跋黑)의 집에서 보(保/보호함, 지킴)하는 자가 있었고,

세조(世祖)의 집에서 보(保/보호함, 지킴)하는 자가 있었으니,

세조(世祖)가 이내 형제(兄弟)와 부속(部屬)의 향배(向背/순종과 배반)와 피차(彼此/양쪽)의 정황(情)을 진득(盡得/모두 얻음)하였다.

수년(數年)간, 오춘(烏春)이 내공(來攻/공격하여 옴)하였는데, 세조(世祖)가 거(拒/막음)하였다.

때가 10월 중순이었는데, 큰비가 주야(晝夜)로 내렸고, 얼음이 땅을 덮자,

오춘(烏春)은 진군(進)이 불능(不能)하였다.

이윽고 회(悔/아쉬워함, 분하게 여김)하여 말하길

「이는 하늘이다!」

곧 인병(引兵/병력을 뒤로 물림)하여 가버렸다.



烏春舍于阿里矮村滓不乃家,而以兵圍其弟勝昆于胡不村。
兵退,勝昆執其兄滓不乃,而請蒞殺于世祖,且請免其孥戮,從之。
桓赧、散達亦舉兵,遣肅宗拒之。
當是時,烏春兵在北,桓赧兵在南,其勢甚盛。
戒之曰:
「可和則與之和,否則決戰!」
肅宗兵敗。
會烏春以久雨解去,世祖乃以偏師涉舍很水,經貼割水,覆桓赧、散達之家。
明日,大霧晦冥,失道,至婆多吐水乃覺。
即還至舍很、貼割之間,升高阜望之,見六騎來,大呼,馳擊之。
世祖射一人斃,生獲五人,問之,乃知蔔灰、撒骨出使助恆赧、散達者也。
오춘(烏春)은 아리왜촌(阿里矮村)의 재불내(滓不乃)의 집에서 사(舍/임시로 머묾)하였는데,
병(兵)으로써 그 (재불내의) 동생 승곤(勝昆)을 호불촌(胡不村)에서 포위(圍)하였다.
병퇴(兵退/병사를 물림)하자, 승곤(勝昆)이 그 형 재불내(滓不乃)를 잡아, 
세조(世祖)에게 다다라 죽일 것을 청(請)하고,
또한 그 노륙(孥戮/연좌제에 의한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을 면(免)하길 청(請)하니, 따랐다.
환난(桓赧)과 산달(散達) 역시(亦) 거병(舉兵)하자, 숙종(遣肅)을 보내 막게 하였다.
이때를 당(當)하여, 오춘(烏春)의 병(兵)은 북쪽에 있었고,
환난(桓赧)의 병(兵)은 남쪽에 있었는데, 그 세(勢)가 심(甚)히 성(盛)하였다.
경계(戒)하여 말하길
「화친(和)이 가능(可)하면 곧 더불어 화친(和)하고, 아니면 곧 결전(決戰)하라!」
숙종(肅宗)의 병(兵)이 패(敗)하였다.
때마침 오춘(烏春)은 구우(久雨/장마)로써 해거(解去/병을 풀고 돌아감)하니,
세조(世祖)가 곧 편사(偏師/일부 병력)로써 사흔수(舍很水)를 건너,
첩할수(貼割水)를 경유(經)하여, 환난(桓赧)과 산달(散達)의 집을 부(覆/노림)하였다.
명일(明日/다음날)에, 대무(大霧/짙게 낀 안개)하고 회명(晦冥/어두컴컴함)하자, 실도(失道/길을 잃음)하였는데,
파다토수(婆多吐水)에 이르러 곧 각(覺/깨달음)하였다.
곧 사흔(舍很)과 첩할(貼割)의 사이로 환(還/돌아옴)하였고, 
고부(高阜/높은 언덕)에 승(升/오름)하여 망(望/엿봄, 망을 봄)하니,
6기(騎)가 옴을 보고, 대호(大呼/크게 소리침)하고, 치격(馳擊/질주하여 공격함)하였다.
세조(世祖)가 1인을 쏘아 죽이고, 5인을 생획(生獲/생포)하였고, 문초(問)하니, 
곧 복회(蔔灰)와 살골(撒骨)이 환난(恆赧)과 산달(散達)를 구조(助)하기 위해 출사(出使)한 자(者)임을 알게 되었다.


世祖至桓赧、散達所居,焚蕩其室家。殺百許人,舊將主保亦死之。
比世祖還,與肅宗會,肅宗兵又敗矣。世祖讓肅宗失利之狀。
세조가 환난과 산달의 거주지에 이르자, 그집을 분탕(焚蕩/집안의 재산을 모두 없애버림)하였다.
백여인을 죽였으며, 구장(舊將) 주보(主保) 역시 죽였다.
세조가 돌아와, 숙종과 회합하여, 숙종의 병사가 또 패한것을 알았다. 세조가 숙종이 실패한 것을 꾸짖었다.

遣人議和,桓赧、散達曰:「以爾盈歌之大赤馬、辭不失之紫騮馬與我,我則和。」二馬皆女直名馬,不許。
화의(의화議和) 사자를 보내자, 환난과 산달이 말하길
「영가(盈歌)의 대적마(赤馬/붉은큰말)와, 사불실(辭不失)의 자류마(紫騮馬/밤색말)를 나에게 보낸다면, 
   나는 곧 화의하겠다
두말은 모두 여진의 명마니, 불허하였다.

桓赧、散達大會諸部來攻,過裴滿部,以其附于世祖也,縱火焚之。
환난과 산달이 다수의 각 부족과 함께 공격해 올때, 배만부(裴滿部)를 지나다가, 세조에게 붙었다 하여, 불사르게 하였다.

蒲察部沙祇勃堇、胡補答勃堇使阿喜來告難,世祖使之詭從以自全,曰:「戰則以旗鼓自別。」
포찰부(蒲察部)의 사기(沙祇) 발근(勃堇/여진족 관명)과, 호보답(胡補答) 발근(勃堇)이 아희(阿喜)를 보내 통고하니,
세조가 그들을 시켜 거짓으로 따라 스스로를 보전하게 하고 말하길
「전투에서는 기고(旗鼓/군기와 북)로 서로를 구별한다.

世祖往禦桓赧之衆,將行,有報者曰:「跋黑食於愛妾之父家,肉脹咽死矣!」
세조가 환난의 무리를 방어하기 위해, 장차 가려고 하는데
보고자가 있어 하는말이 
「발흑이 애첩(愛妾)의 아버지 집에서 식사하다가, 고기가 목에 막혀 죽었습니다!

乃遣肅宗求援於遼,遂率衆出。
곧 숙종을 보내 요(遼)에 구원(求援)을 요청하니, 드디어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使辭不失取海姑兄弟兵,已而乃知海姑兄弟貳於桓赧矣。欲並取其衆,徑至海姑。
해고형제(海姑兄弟)의 병력을 취(取)하고자 사불실(辭不失)을 보내니, 
이내 해고형제가 환난에게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그무리를 취하고자, 해고의 지름길로 갔다.

偵者報曰:「敵已至。」
정탐하는 자가 보고하길 :「적이 왔다.」고 하였다.

將戰,世祖戒辭不失曰:「汝先陣於脫豁改原,待吾三揚旗,三鳴鼓,即棄旗決戰。死生惟在今日,命不足惜!」
장차 전투에 이르자, 세조가 사불실에게 경계하며 말하길
너의 선봉대가 탈활개원(脫豁改原)에 이르고, 내가 깃발을 세번 높히 올리고, 세번 북을 치면,
   즉시 결전에 돌입해라. 죽고 사는것이 오직 오늘에 있으니, 목숨을 아끼지 마라!

使裴滿胡喜牽大紫騮馬以爲貳馬,馳至陣。時桓赧、散達盛強,世祖軍吏未戰而懼,皆植立無人色。
배만(裴滿) 부족의 호희(胡喜)로 하여금 대자류마 두마리를 끌게하고, 급히 진(陣)으로 질주해갔다.
이때 환난과 산달의 세력이 강성하니, 세조의 군사들이 두려워 싸우려 하지 않고, 모두 공포에 질려 안색이 변해 있었다.

世祖陽陽如平常,亦無責讓之言,但令士卒解甲少憩,以水沃面,調麨水飲之
세조가 평상시와 다름없이 양양(陽陽/의젓)하고, 또 책양(責讓/꾸짖음)의 말이 없었으며, 
단지 사졸로 하여금 갑옷을 풀고 쉬게 명하고, 물로 얼굴을 씻으며, 보리가루를 넣은 물을 만들어 마셨다.

有頃,訓勵之,軍勢復振。乃避衆獨引穆宗,執其手密與之言曰
잠시후에, 훈세(訓勵타일러 힘쓰게함)하니, 군세(軍勢)가 다시 떨치었다.
이내 무리를 피해 홀로 목종을 당기며, 그 손을 잡고 은밀히 말하기를

「今日之事,若勝則已,萬一有不勝,吾必無生。汝今介馬遙觀,勿預戰事。若我死,汝勿收吾骨,勿顧戀親戚,亟馳馬奔告汝兄頗剌淑,於遼系籍受印,乞師以報此仇!」
「오늘일은, 이기기가 힘드니, 만일 이기지 못하면, 나는 반드시 살지 못할 것이다. 
   너는 지금 개마(介馬)를 몰고 멀리가, 싸움에 참여하지 말하라. 
   내가 죽으면, 너는 내뼈를 거두지 말고, 친척(親戚)을 고련(顧戀/마음에 맺히어 잊지못함)하지 말고,
   빨리 말을 달려 너의 형 파자숙(頗剌淑/파랄숙)에게 고하고, 요(遼)의 계적(系籍)의 인장을 받아, 
   군사를 빌어 원수를 갚아라!」

語畢,袒袖,不被甲,以縕袍垂襴護前後心,韔弓提劍,三揚旗,三鳴鼓,棄旗搏戰,身爲軍鋒,突入敵陣,衆從之。
말을 마치자, 소매를 걷어 올리고, 갑옷도 입지 않고, 앞가슴과 등을 보호해주는 삼베옷을 벗어 버린후
활을 활집에 넣고 칼을 뽑아, 깃발을 세번 올리게 하고, 세번 북을 울린후, 기를 버리고 박전(搏戰/격한전쟁)하려,
몸소 선봉이 되어, 적진에 돌입하니, 무리가 뒤를 따랐다.

辭不失從後奮擊,大敗之。乘勝逐之,自阿不彎至於北隘甸,死者如僕麻,破多吐水水爲之赤,棄車甲馬牛軍實盡獲之。
사불실이 따라와 분발하여 공격하니, 크게 부수었다. 승세를 몰아 적을 쫓으니,
북애전(北隘甸)에 이르기까지 굽히지 않아, 죽은자가 산처럼 쌓였고, 파다토수(破多吐水)의 물이 붉게 물들었고,
버린 수레,갑옷,말,소등의 군수물자를 모두 획득하였다.

世祖曰:「今日之捷,非天不能及此,亦可以知足矣。雖縱之去,敗軍之氣,沒世不振。」乃引軍還。
세조가 말하길 「오늘의 승리는, 천명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또한 이로써 알게 되었다.
비록 저들이 도망갔으나, 패한군대의 기운으로는, 죽음을 떨치지 못할것이다.」이내 적군을 보내 주었다.

世祖視其戰地,馳突成大路,闊且三十隴。手殺九人,自相重積,人皆異之。
세조가 그 전지를 보고, 치돌(馳突/갑자기 세차게 질주함)하여 대로를 만드니, 드넓기가 또한 30농(隴)이나 되었다. 
친히 아홉사람을 죽여 서로 중첩해 쌓으니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桓赧、散達自此不能復聚,未幾,各以其屬來降,遼大安七年也。
환난과 산달이 이때부터 세력을 회복하지 못해, 
오래지 않아, 그무리를 이끌고 항복해 왔으니, 요(遼) 대안(大安/도종의 연호) 7년 (1091년) 이였다.



*환난(桓赧)은 환적피(桓赤皮)라고도 함

初,桓赧兄弟之變,不術魯部卜灰、蒲察部撒骨出助之。至是,招之,不肯和。
처음에, 환난 형제의 난 당시, 부술로부(魯部) 복희(卜灰)와 포찰부(蒲察部) 살골출(撒骨出)이 도왔다.
이때에 이르러, 부르니, 화친에 응하지 않았다.

卜灰之党石魯遂殺卜灰來降。撒骨出追躡亡者,道傍人潛射之,中口而死。自是舊部悉歸。
복회의 무리 석로가 드디어 복회를 죽이고 항복해 왔다. 
살골출이 도망하자 이를 추격해, 길옆에 숨어 있다가 화살을 쏘니, 명중하여 죽었다.
원래 부족으로 모두 돌려 보냈다.



景祖時,斡勒部人杯乃來屬,及是,有他志。會其家失火,因以縱火誣歡部,世祖征償如約。
경조때, 알륵부(斡勒部) 사람 배내(杯乃)가 복종하였는데, 그당시, 딴마음이 있었다.
그집이 화재로 소실되었을때, 원인은 무환부(誣歡部)가 불을 질렀기 때문인데, 
세조가 약조대로 정벌하였다.

杯乃不自安,遂結烏春、窩謀罕舉兵。使肅宗與戰,敗之,獲杯乃,世祖獻之於遼。
배내가 안심하지 못하고, 드디어 오춘과 와모한(窩謀罕)이 거병할때 합세하였다.
숙종을 보내 싸우게 하여, 깨트리고, 배내를 사로 잡아, 세조가 요에 바쳤다.



臘醅、麻產侵掠野居女直,略來流水牧馬。世祖擊之,中四創,久之疾愈。
랍배(臘醅)와 마산(麻產)이 야거여진(野居女直)을 침략하여, 내유수(來流水)의 목마(牧馬)를 노략질하였다.
세조가 공격하던 중에, 네군데의 상처를 입어, 오랫동안 병을 고치었다.

臘醅等復略穆宗牧馬,交結諸部。世祖復伐之,臘醅等紿降,乃旋。
랍배등이 다시 목종의 목마를 노략질하자, 각 부족과 연합하였다.
세조가 다시 정벌하니, 랍배등이 거짓으로 항복하고, 이내 돌아갔다.

臘醅得姑里甸兵百十有七人,據暮稜水守險,石顯子婆諸刊亦在其中。
랍배가 고리(姑里) 근방의 병력 117인을 획득하고, 수험(守險/험한곳) 근거하였는데,
석현(石顯)의 아들 파제간(婆諸刊)이 또 그가운데 있었다.

世祖圍而克之,盡獲姑里甸兵。麻產遁去。遂擒臘醅及婆諸刊,皆獻之遼。
既已,復請之,遼人與之,並以前後所獻罪人歸之。
세조가 군대로 이기자, 고리 근방의 병력을 모두 획득하였다. 이에 마산이 도망갔다.
드디어 랍배를 사로잡고, 파제간과 함께 요에 바쳤다.
이어, 재차 요청하자, 요나라 사람과 함께 와, 앞뒤로 나란히 하여 죄인의 처분을 위임하였다.



歡都在破烏春等於斜堆,故石、拔石皆就擒。世祖自將與歡都合兵嶺東,諸軍皆至。
환도(歡都)가 사퇴(斜堆)에서 오춘등을 공격하여, 고석(故石)과 발석(拔石)을 모두 사로잡았다.
세조가 환도와 함께 영동(嶺東)에서 합병(合兵)하여 자신의 장수로 삼았으며, 이에 각 군이 모두 이르렀다.

是時,烏春已前死,窩謀罕請於遼,願和解。既與和,復來襲,乃進軍圍之。窩謀罕棄城遁去。
이때는, 오춘이 죽기 전 이였는데, 와모한(窩謀罕)이 요(遼)에 요청하여, 화해(和解)를 원했다.
화친이 이루워지자, 다시 습격해 왔고, 이내 군을 진군하여 에워 쌓았다.
이에 와모한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破其城,盡俘獲之,以功差次分賜諸軍。城始破,議渠長生殺,衆皆長跪,遼使者在坐。
그성을 파하고, 모두 사로잡자, 공의 위차에 의해 각군에 나눠 주었다.
성을 비로소 파하자, 죽이고 살리는 것을 의논하여,
무리가 길게 꿇어 앉으니, 요(遼) 사자(使者)가 자리에 앉았다.

忽一人佩長刀突前咫尺,謂世祖曰:「勿殺我!」遼使及左右皆走匿。
갑자기 한사람이 지척에서 큰칼을 들고 돌입하자, 세조에게 고하며 말하길
「나를 죽이지 마라!」하니, 요사자의 좌우가 모두 달아났다.

世祖色不少動,執其人之手,語之曰:「吾不殺汝也。」
於是罰左右匿者,曰:「汝等何敢失次耶?」罰既已,乃徐使執突前者殺之。
其膽勇鎮物如此。
세조는 미동도 하지 않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손으로 잡으며, 하는말이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소하고 좌우에 도망간 사람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어찌 감히 도망 갈 수 있느냐?꾸짖고는, 이내 사자로 하여금 돌격한 자를 죽이게 하였다. 
그 담용(其膽/담력과 용기)으로 진압하고 살피는게 이와 같았다.



師還,寢疾,遂篤。元娶拏懶氏哭不止,世祖曰:「汝勿哭,汝惟後我一歲耳。」
肅宗請後事,曰:「汝惟後我三年。」
肅宗出,謂人曰:「吾兄至此,亦不與我好言。」乃叩地而哭。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 오자, 병에 걸려, 드디어 위독해졌다..
첫부인인 나라씨(拏懶氏)가 곡(哭)을 그치지 아니하자, 세조가 말하길
「너는 곡하지 마라, 너는 내가 1년 뒤에 듣겠다
숙종이 후사(後事)를 청하자, 말하길
 너는 내가 삼년 후에 생각해 보겠다
숙종이 나가서, 사람을 불러 이르길 
「내 형님이 다 되셨으니, 다시는 내게 좋은 말을 못하실것이다이내 땅을 두드리며 곡하였다.

俄呼穆宗謂曰:「烏雅束柔善,若辦集契丹事,阿骨打能之。」遼大安八年五月十五日卒。
갑자기 목종을 불러 이르길
「오아속(烏雅束)은 유선(柔善/부드럽고 착함)하니, 거란(契丹)과의 일이 힘들것이나, 아골타(阿骨打)는 능히 할수 있을것이다
요(遼) 대안(大安/도종 연호) 8년 (1092년) 5월 15일 졸(卒)하였다.

襲位十九年,年五十四。明年,拏懶氏卒。又明年,肅宗卒。
肅宗病篤,歎曰:「我兄真多智哉!」
습위(襲位/위를 이어받음)한지 19년이요, 수는 54세 였다. 다음해, 나라씨(拏懶氏)가 졸(卒)하였다.
또 다음해에, 숙종(肅宗)이 졸(卒)하였다.
숙종의 병이 위독해지자,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형님이 진실로 지혜가 많구나!」

世祖天性嚴重,有智識,一見必識,暫聞不忘。
세조는 천성이 엄중(嚴重)하고, 지식(智識)이 있었으며, 한번 본것은 반드시 알았고, 잠깐 들은것도 잊지 않았다.

凝寒不縮栗,動止不回顧。每戰未嘗被甲,先以夢兆候其勝負。
응한(凝寒/냉병)에도 움추리지 않았고, 몸을 돌보지 않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매번 싸울때마다 갑옷을 입지 않았으며, 몽조(夢兆/꿈자리점)로 승부를 살폈다.

嘗乘醉騎驢入室中,明日見驢足跡,問而知之,自是不復飲酒。
술에 취해 나귀를 타고 집안으로 들어 왔는데, 다음날 당나귀의 발자국을 보고, 
물어보아 이를 안후, 다시는 음주(飲酒)를 하지 않았다.

襲位之初,內外潰叛,締交爲寇。世祖乃因敗爲功,變弱爲強。既破桓赧、散達、烏春、窩謀罕,基業自此大矣。
위를 이어 받았을 초기에, 내외가 배반하여 무너졌고, 도적들이 서로 연합하였다.
세조가 실패한 것을 바꾸어 성공 하였으며, 약세에서 강세로 변하였다.
이어서 환난, 산달, 오춘, 와모한를 깨트리고, 그일을 스스로 훌륭하다 여기였다.

天會十五年,追諡聖肅皇帝,廟號世祖。皇統四年,號其藏曰永陵。五年,增諡世祖神武聖肅皇帝。
천회(天會) 15년, 성숙황제(聖肅皇帝)로 추시(追諡)되었고, 묘호(廟號)는 세조(世祖)이다.
황통(皇統) 4년, 그 묘를 이르러 영릉(永陵)이라 불렀다.
5년, 세조신무성숙황제(世祖神武聖肅皇帝)로 증시(增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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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파자숙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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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핵리발은 오고내의 2남으로 추장이 됨.
-머리좋고, 성격 대담함
-추장직을 이어받자 내외의 적들에 둘러싸임,
-최초 전투는 숙부 발흑이 외부 부족들을 끌어 들여 시작됨.
-수년에 걸쳐 여러 부족에 포위 되었다가, 모두 격파함.
-랍배등을 진압하다 몸에 상처를 입음.
-죽은후 절도사직은 동생 파자숙이 이어 받음
-두아들 오아속과 아골타가 훗날 부족장이 됨

적들
1숙부 발흑부족내에서 파벌이 갈림오춘과의 전쟁당시 식사도중 급사
2오춘완안부 북쪽에 위치 가장 큰적
수년간 핵리발을 공격해옴
 
3환난/산달완안부 남쪽에 위치
오춘이 거병 할때 합세
해고부 전투에서 대패후 항복
4와모한오춘, 환난, 산달과 연합근거지를 빼앗기고 도주
5배내알륵부인 배반파자숙에게 잡혀 요나라 압송
6랍배,마산말도적떼랍배,파제간 요압송
7고석,발석오춘의 수하 사퇴전투에서 사로잡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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