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금사 본기1~본기3까지 국역하고 있는데요, 금사만 가지고는 중요한 달로고성, 황룡부, 호보답강 전투를 알기가 부족하여
내친김에 요사 1115년과 1116년만 국역코자 합니다.
요사(遼史) 천조제(天祚帝) 천경(天慶) 5년 (1115년) 국역 http://cafe.naver.com/booheong/82157
사전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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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年春正月丙寅朔,東京夜有惡少年十餘人,乘酒執刃,垣入留守府,問留守蕭保先所在:
「今軍變,請為備。」
(천경天慶/요 천조제의 연호) 6년 (1116년) 봄 1월 초하루 병인일(丙寅日)에, 동경(東京)에 악소년(惡少年/흉악한 소년) 10여 명이 있었는데 밤에, 술기운을 타고 칼을 잡아, 유수부(留守府)의 관아로 들어가,
유수(留守) 소보선(蕭保先)의 소재(所在/있는 곳)에서 묻기를
「지금 군이 움직였으니, 대비할 것을 청합니다.」
蕭保先出,刺殺之。戶部使大公鼎聞亂,即攝留守事,與副留守高清明集奚、漢兵千人,盡捕其眾,斬之,撫定其民。
소보선(蕭保先)이 나왔는데, 찔러 죽였다. 호부사(戶部使) 대공(大公) 정문란(鼎聞亂)이, 곧 유수사(留守事)을 다스려,
부유수(副留守) 고청명(高清明)과 함께, 해병(奚兵)와 한병(漢兵) 천명을 모아, 그무리를 모두 잡아, 참(斬)하니,
그 백성을 무정(撫定/어루만지고 안정시킴)하였다.
東京故渤海地,太祖力戰二十餘年乃得之。而蕭保先嚴酷,渤海苦之,故有是變。其裨將渤海高永昌僭號,稱隆基元年。
遣蕭乙薛、高興順招之,不從。
동경(東京)은 발해(渤海)의 땅인 연고로, 태조(太祖)가 20여년을 역전(力戰/힘을 다해 싸움)하여 겨우 얻었다.
소보선(蕭保先)이 엄혹(嚴酷/매우 엄격하고 모짐)함으로써, 발해가 괴로워하여, 이 변란이 있는 연고였다.
그 비장(裨將/막료, 부장) 발해인 고영창(高永昌)이 참호(僭號/참람된 호칭)하여, 융기(隆基) 원년이라 칭(稱)하였다.
소을설(蕭乙薛)과 고흥순(高興順)을 보내 초지(招之/부름, 초유招諭)하니, 따르지 않았다.
閏月己亥,遣蕭韓家奴、張琳討之。
戊午,貴德州守將耶律余睹以廣州渤海叛附永昌,我師擊敗之。
윤월(閏月) 기해일(己亥日)에, 소한가노(蕭韓家奴)와 장림(張琳)을 보내 토벌하였다.
무오일(戊午日)에, 귀덕주(貴德州) 수장(守將/수비를 맡은 장수) 야율여도(耶律余睹)가 광주(廣州)의 발해인을 데리고
고영창에게 배반하여 붙자, 우리의 군사가 공격하여 깨트렸다.
二月戊辰,侍禦司徒撻不也等討張家奴,戰於祖州,敗績。
乙酉,遣漢人行宮都部署蕭特末率諸將討張家奴。
戊子,張家奴誘饒州渤海及中京賊侯概等萬餘人,攻陷高州。
2월 무진일(戊辰日)에, 시어사도(侍禦司徒) 달부야(撻不也)등이 장가노(張家奴)등을 토벌하여,
조주(祖州)에서 싸웠는데, 패적(敗績/패전)하였다.
을유일(乙酉日)에, 한인(漢人) 행궁도부서(行宮都部署) 소특말(蕭特末)을 보내 제장(諸將)을 인솔하여
장가노(張家奴)를 토벌케 하였다.
무자일(戊子日)에, 장가노(張家奴)가 요주(饒州)의 발해인을 꾀어 중경(中京)의 적(賊) 후개(侯概)등 만여명과 함께,
고주(高州)를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三月,東面行軍副統酬斡等擒侯概於川州。
3월에, 동면행군(東面行軍) 부통(副統) 수알(酬斡)등이 천주(川州)에서 후개(侯概)를 사로 잡았다.
夏四月戊辰,親征張家奴。
癸酉,敗之。
甲戌,誅叛黨,饒州渤海平。
丙子,賞平賊將士有差;而蕭韓家奴、張琳等複為賊所敗。
여름 4월 무진일(戊辰日)에, 장가노(張家奴)를 친정(親征)하였다.
계유일(癸酉日)에, 깨트렸다.
갑술일(甲戌日)에, 배반한 무리를 베고, 요주(饒州)의 발해(渤海)를 평정하였다.
병자일(丙子日)에, 적을 평정한 장사(將士/장졸)을 차이를 두어 상(賞)주었다.
소한가노(蕭韓家奴)와 장림(張琳)등으로서 적의 소굴을 깨트렸다.
五月,清暑散水原。
女直軍攻下瀋州,複陷東京,擒高永昌。
東京州縣族人痕孛、鐸剌、吳十、撻不也、道剌、酬斡等十三人皆降女直。
5월에, 산수원(散水原)으로 청서(清暑/더위를 가심, 피서)하였다.
여진군이 심주(瀋州)를 공하(攻下/점령)하고, 거듭하여 동경(東京)을 함락하여, 고영창(高永昌)을 사로잡았다.
동경(東京) 주현(州縣)의 족인(族人) 흔패(痕孛), 탁랄(鐸剌), 오십(吳十), 달부야(撻不也), 도랄(道剌), 수알(酬斡)등
13인이 모두 여진에 항복하였다.
六月乙丑,籍諸路兵,有雜畜十頭以上者皆從軍。
庚辰,魏國王淳進封秦晉國王,為都元帥;
上京留守蕭撻不也為契丹行宮都部署兼副元帥。
丁亥,知北院樞密使事蕭韓家奴為上京留守。
6월 을축일(乙丑日)에, 등록된 각 지역의 병(兵)중에, 잡축(雜畜/마소이외의 가축)을 10마리 이상 가지고 있는자는
모두 종군(從軍)하게 하였다.
경진일(庚辰日)에, 위국왕(魏國王) 순(淳)을 진진국왕(秦晉國王)으로 진봉(進封/봉작을 더함)하여, 도원수(都元帥)로 삼았다.
상경유수(上京留守) 소달부야(蕭撻不也)을 글단(契丹) 행궁도부서(行宮都部署) 겸 부원수(副元帥)로 삼았다.
정해일(丁亥日)에, 지북원추밀사사(知北院樞密使事) 소한가노(蕭韓家奴)를 상경유수(上京留守)로 삼았다.
秋七月,獵秋山。
春州渤海二千餘戶叛,東北路統軍使勒兵追及,盡俘以還。
가을 7월에, 추산(秋山)에서 사냥하였다.
춘주(春州)의 발해인 2000 여호(戶)가 배반하여, 동북로통군사(東北路統軍使)가 늑병(勒兵/군대를 통솔함)하여 추급(追及/뒤쫓아 따라붙음)하니, 모두 사로잡아 귀환하였다.
八月,烏古部叛,遣中丞耶律撻不也等招之。
8월에, 오고부(烏古部)가 배반하니, 중승(中丞) 야율달부야(耶律撻不也)등을 보내 초지(招之)하였다.
九月丙午,謁懷陵。
9월 병오일(丙午日)에, 회릉(懷陵)을 참배하였다.
冬十月丁卯,以張琳軍敗,奪官。
庚辰,烏古部來降。
겨울 10월 정묘일(丁卯日)에, 장림(張琳)의 군이 패하니, 벼슬을 빼앗았다.
경진일(庚辰日)에, 오고부(烏古部)가 항복하여 왔다.
十一月,東面行軍副統馬哥等攻曷蘇館,敗績。
11월에, 동면행군(東面行軍) 부통(副統) 마가(馬哥)등이 갈소관(曷蘇館)을 공격하였는데, 패적(敗績)하였다.
十二月乙亥,封庶人蕭氏為太皇太妃。辛巳,削副統耶律馬哥官。
12월 을해일(乙亥日)에, 서인(庶人/서민) 소씨(蕭氏)를 봉(封)하여 태황태비(太皇太妃)로 삼았다.
신사일(辛巳日)에, 부통(副統) 야율마가(耶律馬哥)의 관직을 깎았다.
P.S) 본글은 동의 없이 어느 곳에나 담아 가셔도 됩니다. 출처는 남겨주시면 고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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