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年春正月,下詔親征,遣僧家奴持書約和,斥阿骨打名。
阿骨打遣賽剌複書,若歸叛人阿疏,遷黃龍府於別地,然後議之。
都統耶律斡里朵等與女直兵戰於達魯古城,敗績。
(천경天慶/요 천조제의 연호) 5년 (1115년) 봄 1월에, 친정(親征/임금이 친히 정벌에 나섬)한다는 조서를 내리고,
승가노(僧家奴)에게 화의를 약조하는 서신을 가지고 보내니, 아골타(阿骨打)의 이름이 드러났다.
아골타가 새자(賽刺/賽剌새랄)에게 다시 서신을 보내와,
만약 배반자 아소(阿疏)를 보내 준다면, 황룡부(黃龍府)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겠다 하니, 그런 연후로 의논하였다.
도통(都統) 야율알이타(耶律斡裏朵)등에게 달로고성(達魯古城)에서 여진병과 싸우게 하였는데, 패적(敗績/패전)하였다.
二月,饒州渤海古欲等反,自稱大王。
2월에, 요주(饒州)의 발해인(渤海人) 고욕(古欲)등이 배반하여, 자칭(自稱) 대왕(大王)이라 하였다.
三月,以蕭謝佛留等討之。
遣耶律張家奴等六人齎書使女直,斥其主名,冀以速降。
3월에, 소사불류(蕭謝佛留)등으로 하여금 (발해 고욕을) 토벌하게 하였다.
야율장가노(耶律張家奴)등 6인에게 제서(齊書/가지런한 글)를 가지고 여진에게 보내어,
그 주인(아골타)의 이름이 드러냈고, 속히 항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夏四月癸醜,蕭謝佛留等為渤海古欲所敗,以南面副部署蕭陶蘇斡為都統,赴之。
여름 4월 계축일(癸醜日)에, 소사불류(蕭謝佛留)등이 발해 고욕(古欲)에게 패하니,
남면부부서(南面副部署) 소도소알(蕭陶蘇斡)를 도통(都統)으로 삼아, 나아가게 하였다.
五月,陶蘇斡及古欲戰,敗績。張家奴等以阿骨打書來,複遣之往。
5월에, 도소알(陶蘇斡)이 급기야 고욕(古欲)과 싸웠는데, 패적(敗績)하였다.
장가노(張家奴)등이 아골타(阿骨打)의 서신을 가지고 왔는데, 다시 보내 가게 하였다.
六月己亥朔,清暑特禮嶺。壬子,張家奴等還,阿骨打複書,亦斥名諭之使降。
癸醜,以親征諭諸道。
丙辰,陶蘇斡招獲古欲等。
癸亥,以惕隱耶律末里為北院大王。
是月,遣蕭辭剌使女直,以書辭不屈見留。
6월 기해일(己亥日) 초하루에, 특례령(特禮嶺)에서 청서(清暑/피서)하였다.
임자일(壬子日)에, 장가노(張家奴)등이 돌아 왔는데, 아골타(阿骨打)가 다시 서신을 보내와,
역시 (요 임금의) 이름이 드러났으며 항복하기를 권유했다.
계축일(癸丑日/癸醜日)에, 친정할 것임을 각도에 알렸다.
병진일(丙辰日)에, 도소알(陶蘇斡)이 고욕(古欲)등을 결박하여 사로 잡았다.
계해일(癸亥日)에, 척은(惕隱/요 관명) 야율말리(耶律末里)를 북원대왕(北院大王)으로 삼았다.
이달에 소사랄(蕭辭剌)을 사신으로 여진에 보내었는데, (여진이) 글을 문제삼아 견해를 굽히지 않고 억류하였다.
秋七月辛未,宋遣使致助軍銀絹。丙子,獵於嶺東。是月,都統斡里朵等與女直戰於白馬濼,敗績。
가을 7월 신미일(辛未日)에, 송에 사신을 보내 원군과 은, 비단을 이르게 하였다.
병자일(丙子日)에, 영동(嶺東)에서 사냥하였다.
이달에, 도통(都統) 알리타(斡里朵)등에게 여진과 백마락(白馬濼)에서 싸우게 하였는데, 패적(敗績/패전)하였다.
八月甲子,罷獵,趨軍中。以斡里朵等軍敗,免官。
丙寅,以圍場使阿不為中軍都統,耶律張家奴為都監,率番、漢兵十萬;
蕭奉先充禦營都統,諸行營都部署耶律章奴為副,以精兵二萬為先鋒。
餘分五部為正軍,貴族子弟千人為硬軍,扈從百司為護衛軍,北出駱駝口;
以都點檢蕭胡睹姑為都統,樞密直學士柴誼為副,將漢步騎三萬,南出甯江州。
自長春州分道而進,發數月糧,期必滅女直。
8월 갑자일(甲子日)에, 사냥을 마치고, 군중(軍中)으로 뒤쫓아 갔다.
알리타(斡里朵)등이 패전하였기에, 면관(免官/면직,해임)하였다.
병인일(丙寅日)에, 위장사(圍場使/국립 사냥터 관리) 아부(阿不)를 중군도통(中軍都統)으로 삼고,
야율장가노(耶律張家奴)를 도감(都監)으로 삼아, 번부(番部)와 한병(漢兵) 10만을 인솔하게 하였다.
소봉선(蕭奉先)을 충어영(充禦營) 도통(都統)으로 삼고, 제행영도부서(諸行營都部署) 야율장노(耶律章奴)를 부도통(副都統)으로 삼아, 정병(精兵) 2만으로 선봉을 삼았다.
남은 5부(部)는 정군(正軍/중앙군)으로 삼고, 귀족자제(貴族子弟) 천여명은 경군(硬軍/창병)으로 삼았으며,
백사(百司/많은 관리)가 호종(扈從)하여 호위군(護衛軍)으로 삼았는데, 북쪽 낙타구(駱駝口)로 출발하였다.
도점검(都點檢) 소호도고(蕭胡睹姑)를 도통(都統)으로 삼고,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 시의(柴誼)를 부도통(副都統)으로 삼아,
장차 한족 보기병 3만으로, 남쪽 영강주(甯江州)로 출발하였다.
장춘주(長春州)에서 부터 길을 나누어 진군하고, 수개월치 양식을 베풀어, 기필(期必)코 여진을 멸(滅)하고자 하였다.
九月丁卯朔,女直軍陷黃龍府。
己巳,知北院樞密使蕭得里底出為西南面招討使。
9월 정묘일(丁卯日) 초하루에, 여진군이 황룡부(黃龍府)를 함락하였다.
기사일(己巳日)에, 지북원추밀사(知北院樞密使) 소득리저(蕭得里底)를 서남면초토사(西南面招討使)로 삼아 보냈다.
辭剌還,女直複遣賽剌以書來報:若歸我叛人阿疏等,即當班師。
上親征。粘罕、兀術等以書來上,陽為卑哀之辭,實欲求戰。
소사랄(蕭辭剌)이 돌아왔는데, 여진이 다시 새랄(賽剌)을 파견해 서신을 보내 알리기를
만약 나에게 배반자 아소등을 보낸다면, 즉시 군을 돌릴 것이다.
상(上/임금,황상)이 친정(親征)하였다.
점한(粘罕)과 올술(兀術)등이 상에게 서신을 보내 왔는데, 겉으로는 낮추고 애처롭게 청하였으나,
실은 전쟁을 구(求)하고자 하였다.
書上,上怒,下詔有
「女直作過,大軍翦除」
之語。
서신을 올리니, 상이 노(怒)하여, 조서를 내렸는데
「여진이 화를 만들었으니, 대군(大軍)으로 전제(翦除/멸하여 없앰)하겠다.」는 말이었다.
女直主聚眾,面仰天慟哭曰:
「始與汝等起兵,蓋苦契丹殘忍,欲自立國。今主上親征,奈何?非人死戰,莫能當也。不若殺我一族,汝等迎降,轉禍為福。」
여진주(女直主/아골타)가 무리를 모아, 하늘을 우러러 통곡(慟哭)하며 하는말이
「비로소 너희들과 기병(起兵/병을 일으킴)하니, 글단(契丹/거란,계단)이 잔인(殘忍)함이 오래 되어서,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 지금 주상(主上/요 천조제)이 친정하니, 어찌 하겠는가?
사람이 죽음으로써 싸우지 않는다면, 능히 당해낼 수가 없다.
만약 나의 일족을 죽이지 못하겠다면, 너희들은 항복하고 영접하여, 전화위복(轉禍為福)하라. 」
諸軍皆曰:
「事已至此,惟命是從。」
각군이 모두 말하기를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오직 명을 따를 뿐입니다.」
乙巳,耶律章奴反,奔上京,謀迎立魏國王淳。上遣駙馬蕭昱領兵詣廣平澱護後妃,行宮小底乙信持書馳報魏國王。
을사일(乙巳日)에, 야율장노(耶律章奴)가 배반하여, 상경(上京)으로 달아나,
위국왕(魏國王) 순(淳/천조제의 백부)을 영립(迎立/임금으로 모심)하길 꾀하였다.
상이 부마(駙馬/왕의 사위) 소욱(蕭昱)에게 병력을 통솔케 하여 보내 광평전(廣平澱)에 이르러 후비(後妃)를 보호하니,
행궁(行宮/임금의 별궁)의 소저(小底/요 관명) 을신(乙信)이 서신을 가지고 달려 위국왕(魏國王)에게 알리었다.
時章奴先遣王妃親弟蕭諦里以所謀說魏國王。王曰:
「此非細事,主上自有諸王當立,北、南面大臣不來,而汝言及此,何也?」
密令左右拘之。
이때 장노(章奴/야율장노)가 먼저 왕비(王妃)의 친동생 소체리(蕭諦里)를 보내 위국왕(魏國王)을 꾀로서 달래었다.
왕(王)이 말하길
「이와 같은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니, 주상(主上/임금)께서 몸소 제왕(諸王)을 세움이 마땅히 있을것이고,
북과 남면에서 대신(大臣)이 오지 않았는데, 너의 말이 이에 미치니, 어찌 된 일이냐?」
밀령(密令)을 내려 좌우(左右)에게 체포하게 하였다.
有頃,乙信等寃禦劄至,備言章奴等欲廢立事。魏國王立斬蕭諦里等首以獻,單騎間道詣廣平澱待罪。
上遇之如初。
잠시후, 을신(乙信)등이 억울해 하며 항거하자 찌르고, 장노(章奴)등이 폐립(廢立)하고자 하는일을 대한 말을 갖추었다.
위국왕(魏國王)이 그 자리에서 소체리(蕭諦里)등을 참수하여 올리고,
단기(單騎)로 샛길로 가 광평전(廣平澱)에서 이르러 벌을 기다렸다.
상이 만나 처음과 같이 하였다.
章奴知魏國王不聽,率麾下掠慶、饒、懷、祖等州,結渤海群盜,眾至數萬,趨廣平澱犯行宮。
장노(章奴)는 위국왕(魏國王)이 청을 듣지 않음을 알고,
휘하(麾下)를 인솔하여 경주(慶州), 요주(饒州), 회주(懷州), 조주(祖州)등을 약탈하고, 발해의 도둑 무리와 결탁하여,
무리가 수만에 이르니, 광평전(廣平澱)으로 달려가 행궁(行宮)을 범(犯)하였다.
順國女直阿鶻產以三百騎一戰而勝,擒其貴族二百餘人,並斬首以徇。
순국여진(順國女直/계요적여진系遼籍女直, 요국적의 여진) 아골산(阿鶻產)이 300 기로 일전(一戰)하여 승리하고,
그 귀족(貴族) 200 여명을 사로잡자, 모두 머리를 베어 돌렸다.
其妻子配役繡院,或散諸近侍為婢,餘得脫者皆奔女直。
그 처자(妻子)를 수원(繡院/수를 놓은 관청)으로 나누어 일을 시키고,
혹은 각 근시(近侍/가까운 신하)에게 노비로 나누어 주니, 남아 있는 탈출자들은 모두 여진으로 도망갔다.
章奴詐為使者,欲奔女直,為邏者所獲,縛送行在,腰斬於市,剖其心以獻祖廟,支解以徇五路。
장노(章奴)가 사자로 가장하여, 여진으로 급히 도망가고자 하였는데,
순찰자에게 포획되어, 포박되어 행재(行在/임금이 있는 곳)로 보내니,
저자에서 요참(腰斬/허리를 잘라 죽임)하고, 그 심장은 쪼개어 조묘(祖廟)에 바치고,
지해(支解/팔다리를 찢는 형벌)하여 다섯 길에 돌렸다.
冬十一月,遣駙馬蕭特末、林牙蕭察剌等將騎兵五萬、步卒四十萬、親軍七十萬至駝門。
겨울 11월에, 부마(駙馬) 소특말(蕭特末), 임아(林牙/요 관명) 소찰랄(蕭察剌)등에게 장차 기병 5만과 보졸 40만을 보내고,
친군(親軍/친히 군을 이끔)하여 70만을 이끌고 타문(駝門)에 이르렀다.
十二月乙巳,耶律張家奴叛。
戊申,親戰於護步答岡,敗績,盡亡其輜重。
12월 을사일(乙巳日)에, 야율장가노(耶律張家奴)가 배반하였다.
무신일(戊申日)에 호보답강(護步答岡)에서 친전(親戰)하였으나, 패적(敗績)하여, 그 치중(輜重/군수 물품)을 전부 잃어 버렸다.
己未,錦州刺史耶律術者叛應張家奴。
庚申,北面林牙耶律馬哥討張家奴。
癸亥,以北院宣徽使蕭韓家奴知北院樞密使事,南院宣徽使蕭特末為漢人行宮都部署。
기미일(己未日)에, 금주(錦州) 자사(刺史) 야율술자(耶律術者)가 장가노(張家奴)에 응(應)하여 배반하였다.
경신일(庚申日)에, 북면(北面) 임아(林牙) 야율마가(耶律馬哥)가 장가노(張家奴)를 토벌하였다.
계해일(癸亥日)에, 북원(北院) 선휘사(宣徽使) 소한가노(蕭韓家奴)를 지북원(知北院) 추밀사사(樞密使事)로 삼고,
남원(南院) 선휘사(宣徽使) 소특말(蕭特末)를 한인(漢人) 행궁도부서(行宮都部署)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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