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생 육가 열전
“竖儒,几败而公事!”
─ 유후세가
유방의 언행을 보면 자기를 일컫는 몇가지 표현이 보입니다. 내공(乃公)과 이공(而公)이라는 식의 표현인데, 의미는 비슷하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건 '자신' 을 가리키는 식의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乃나 而는 "너" 아니면 "자네" 정도의 의미가 되는데, 뒤에 公이 붙이니 그렇다면 "자네 아버지" "네 어르신" 정도의 의미가 될 겁니다.
그런데 유방은 여기서 이 표현을 자신에게 사용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건 자기를 일컫어 "네 아버지" "(너희 아버지에 해당하는) 이 어르신" 같은 묘한 어감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상대 역시 그렇다면 "아들" "조무래기" 같은 상황이 되고.
왜 김용 무협 소설 등을 보면 위소보 같은 주인공이 상대편에게 "내가 그걸 하면 넌 날 아버지로 모셔라." 라는 식의 말을 하는것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여하간 그렇게 생각하고 번역을 하자면, 첫번째 문장은 이런 느낌이 될 겁니다.
"이 어르신께서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으셨다. 그런데 시, 서 따위가 대관절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두번째 문장도 이런 느낌일 겁니다.
"같잖은 유생 놈 때문에 이 어르신이 대사를 그르칠 뻔 했구나!"
여하간에 3인칭으로 자신을 호칭하면서, 상대를 밑으로 내리는건 맞을 겁니다. 물론 이후 황제들이 자신을 3인칭으로 일컫기도 하지만, 유방의 이 3인칭화는 '황제의 어법' 이라기보다는 앞서 위소보 이야기도 했듯이, '건달이 쫄따구에게' 하는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 '쫄따구 풋내기' 등을 일컫는 수자(豎子)라는 적절한 표현이 있습니다. 왜 이문열 초한지 등에서 '더벅머리 놈' 같은 식으로 표현이 되는데, 이와 대조해서 보면 더욱 인상적인 표현입니다.
"吾惟豎子固不足遣,而公自行耳。"
─ 유후 세가
경포의 반란때 여후의 아들인 혜제가 나설 지경이 되자, 여후가 울면서 만류하여 유방이 말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유방은 자기 아들을 수자(豎子)로 표현하고, 자신을 이공(而公)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느낌이 됩니다.
"나도 그런 조무래기가 나서기에 적절치 않다는건 알고 있었다. 이 어르신께서 직접 가시겠다."
혹은 "그 조무래기가 시원치 않으니, 당신 남편이 나서야겠구만." 같은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에 재밌는 부분이죠. 보통 황제들의 어법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평민 출신으로 황제가 된 유방의 묘한 어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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