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밀(李密)은 수나라 말기에 일어났던 군웅으로, 초기에 가장 막강한 세력을 지녔으며 패자가 되기에 가장 가까워보였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주 잠깐의 머뭇거림 때문에 모든것을 날려버렸습니다.
이밀은 북주(北周)의 팔주국(八柱國) 가문의 사람으로, 수나라 문제 양견이 북주의 신하였을 무렵에는 오히려 이밀의 가문이 더 나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나라가 세워지고 나서 이밀의 가문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듯 합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남의 관상을 볼 줄 아는 수나라 양제는, 조회를 하고 난 후 아무래도 마음이 걸려서 우문술(宇文述)을 불러 자기가 본 낯선자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 말이군요. 이밀입니다. 이관(李寬)의 아들이지요."
"내 보기에 그 자 관상이 좋질 않아. 두 눈이 이상하니 내 호위를 맡기지 말게나."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쫒겨난 이밀은 집에서 사기, 한서같은 역사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 없이 그냥 자기가 사직했다고도 하고, 아버지 포산공(浦山公)의 작위를 이어받았으나 병을 핑계로 관직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여간에 책을 계속 읽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이밀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날 이밀은 소에 타고 가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 쇠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한서를 들고 보고 있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재상 양소(楊素)는 그 광경이 하도 신기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어디 사는 선생님이십니까?"
"이밀이라고 합니다."
양소는 이밀이 상당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데리고 자기 집에 와서 아들인 양현감(楊玄感)과 사귀게 했습니다.
"너 같은 사람은 도저히 미치지 못할 인물이다!"
양현감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죠. 잘 아시다시피 고구려 원정을 떠난 수양제는 양현감이 군량을 보내주질 않고 반란을 일으키자, 진퇴양난에 빠지며 돌아올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진압당하구요. 이밀은 이 과정에서 도망쳤습니다. 양현감은 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이밀의 조언을 청했는데, 그때 이밀은 세가지 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상책 - 요동에 있는 수양제의 뒤를 공격할것
중책 - 수도 장안을 함락할것
하책 - 낙양을 공격할것
수양제의 군대를 요격해서 분쇄시킨다면, 그 시점에서 모든것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더 고생을 할 필요도 없고, 확실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양제의 수나라 원정군은 수도 많고 질도 비교적 농민군보다는 크기에 위험부담이 너무 막대했습니다. 양현감은 이때문에 이밀의 '상책'을 거절합니다.
장안을 공격한다면 수나라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제국의 중심지 관중을 손바닥에 넣게 됩니다. 하지만 양현감은 멀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낙양을 공격한것은 그곳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낙양을 찍고 장안을 가자는것인데 문제는 낙양의 방비가 매우 견고해서 양현감으로서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수양제의 본대가 회군하기에도 장안보단 낙양이 가까웠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부랴부랴 양현감은 장안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이미 너무 늦어서, 고구려 원정군은 도착했고 우문술과 내호아등은 괴멸적인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무슨 성벽이나 방어 수단이 있는것도 아니고, 병력의 질도 훨씬 떨어진 양현감은 대패하고 반란을 실패로 끝났습니다. 613년 6월에 시작해서 8월에 모든것이 끝나버렸습니다.
양현감은 죽었고, 이밀은 이 과정에서 사로잡혔지만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탈주에 성공했습니다.
당나라를 세운 고조 이연도 팔주국, 이밀도 팔주국의 일족으로 가문으로 치면 둘다 엄청났지만, 이연은 정부군을 이끌고 돌궐의 바로 앞에서 있어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던 반면, 벼슬에 나가지 않았던 이밀은 자기만의 군대나 도당이 없었습니다. 팔주국 가문 이밀은 그러자 아주 밑바닥부터 굴러보기로 작정을 합니다. 도적때에 들어가는 거지요.
이때의 이밀은 궁예가 생각나는 행보를 보이는데, 몇군데 도적무리에 들어갔다가, 인정을 받지 못하자 미련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다 적양(翟讓)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와강군(瓦崗軍) 반란군에 합류,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두각을 나타내면서 굴러들어온 돌인 자기가 오히려 와강군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적양은 하급 관리 출신이었고, 그때문에 팔주국 가문인 이밀에게 존경심을 보였을 수 있습니다. 이밀이 오기전, 적양은 서세적(이세적)이라는 17살의 용감한 소년과 함께 무리를 결성, 수적질을 하면서 1만이나 되는 무리를 모아놓았습니다.
형양(滎陽)의 여러곳을 공격하던 와강군은, 낙구창(洛口倉)을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낙구창이 엄청난 곡물 창고였기 때문입니다.
낙구는 낙수와 황하가 합류하는 입구로, 정부의 곡물 창고가 있었는데, 둘레 길이가 30리나 되고 3000여 개의 굴을 파고 매 굴마다 양곡 8000석을 저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으로, 양제의 손자 양동이 지키고 있었지만, 양동이 나이가 어려 지휘가 분산되고 사기가 낮은 틈을 이용해 이밀은 7천의 병력으로 이 곳을 점령했습니다. 이때를 전기로, 와강군은 엄청난 기세로 불어나게 됩니다.
낙구창의 곡물은 그 시점의 이밀로서는 거의 무한정의 자원이나 다를 바 없었고, 이밀은 이것을 풀어 백성들에게 '가져가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가져가게 하면서 그렇게 몰려드는 사람중에 젊은 이들로 자신의 병력을 키웠습니다. 와강군은 순식간에 최강의 세력이 되었고, 이밀은 위공(魏公)으로 즉위하며 천천히 황제가 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부터 이밀의 몰락이 찾아왔습니다.
확실한 물자에 수십만이나 되는 인파들의 행렬, 이밀의 아래로 맹양, 학효덕등 수많은 군웅들이 몰려 들었고 적양은 재상이 되었으며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서세적은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이밀은 그런 힘으로 다음 목표를 정했는데, 낙양이었습니다. 낙구창의 자원을 버릴수는 없고, 가까운 곳을 찔러야 하는데 낙양이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이밀이 양현감에게 했던 조언과 비슷했습니다. 양현감 비슷하게 이밀은 낙양을 공격했지만, 낙양은 엄청난 견고함으로 버티고 있었고 이밀은 낙양과 수나라 양제가 파견한 왕세충의 10만 군대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며 전투로 시간만 보내면서 별 소득을 못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움직인것이 이연을 비롯한, 훗날 당나라를 건국하게 되는 세력들입니다.
이연을 비롯한 세력들은 거병을 하고 난후, 뜻밖의 선택을 했는데 근거지를 바꾸는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이연의 근거지는 태원, 삼국지 시리즈에 자주 나오는 진양이었는데, 이곳을 버리고 관중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죠.
이 같은 판단이 가능한것은 수양제가 수나라 최강의 병력을 데리고 남쪽으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양제는 그곳에서 놀고 먹으면서 안좋은 소식들은 듣지 않으며 현실도피를 했고, 제국의 중심지이자 꿀의 땅인 관중은 무주공산이었습니다.
이연에게 있어 단 한가지 문제는, 관중으로 가는데 있어 이밀의 세력권에 근접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최강 이밀과 이연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연은 이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매우 겸손했습니다. 이밀에게 "대제" 운운하면서, 자신은 용의 비늘을 잡고 봉황의 날개를 붙잡을 뿐, 이라는 식이었지요.
이밀을 안심시킨 이연은 넷쨰 아들 이원길을 태원에 남겨놓고, 장남 이건성, 차남 이세민을 앞세워 관중으로 진군했습니다. 관중에는 역시 별다른 세력이 없었고, 3만의 군대는 눈깜짝할 사이에 무려 20만의 대군으로 불어났습니다.가는곳마다 인심을 사면서 수도 장안을 간단하게 함락, 너무도 쉽게 관중을 손아귀에 넣고 막강한 힘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연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강한 세력이 되는동안, 이밀은 낙양에서 허우적대며 갈피를 못잡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내분이 일어나 적양을 죽이게 되었고, 왕세충의 군대는 계속 자신을 괴롭혀 대었으며, 낙양은 함락될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변수가 생기는데, 수양제를 지키던 우문화급이 이끄는 군대가 북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양제를 지키던 병사들은 대부분 관중 출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제가 남쪽에서 어슬렁거리는것에 불만을 가졌고, 또 이연이 관중을 장악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기에 불만이 폭발, 수양제를 살해하고 맙니다. 그리고 북쪽으로 진군한것이지요.
일단 정규군이긴 한데, 군대에 관원에 궁녀들까지 정처없이 따라가는 이상한 광경에, 황제를 살해할 정도니 사기는 바닥이고 장병들은 불평불만에 가득해서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문화급은 낙양을 목적으로 진군했습니다.
그때쯤 낙양을 구하러 왔던 왕세충은 양통이라는 사람을 꼭두각시 황제로 삼아 조종했는데, 수양제를 살해한 우문화급은 양호라는 사람을 꼭두각시로 삼았습니다. 황제는 둘이 될수가 없으니 결판을 내야 했고, 이밀 역시 수나라를 비난하는 세력이었기에 아군이 될순 없었던 것입니다.
왕세충은 이밀을 이용해서 우문화급을 막을 생각을 하고 그에게 관직을 내려주려고 했습니다. 또한 왕세충의 꼭두각시인 양통 역시, 이밀을 끌어들여 왕세충과 대립시켜 그의 횡포를 막아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밀은 태위, 상서령, 위국공, 대행군원수 등 어마어마한 직책을 받았습니다.
이밀은 즉시 우문화급 군대의 배후를 공격, 단번에 쫒아버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낙양에 들어가 관직을 받으려고 했지만, 교활한 왕세충은 오히려 먼저 공격을 해서 방심한 이밀의 군대를 한번에 박살내었습니다. 자살을 하려던 이밀은 부하들의 만류로 이연에게 달아나서 몸을 의탁했습니다.
이연의 아래에서 이밀은 광록시의 절이 되었는데, 광록시는 음식내는 일을 관장한다고 합니다. 전에는 편지로 자신에게 설설 기던 사람에게, 이제는 술과 음식을 차려야 하니 이밀은 분통이 터졌습니다.
이밀은 뛰어난 부하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세적이 되는 서세적이 그랬고, 유명한 정치가 위징 역시 있었습니다. 이연은 교활하게도 서세적에게 이씨성을 내리며 크게 칭찬하여 높은 지위를 주었고, 위징에게 벼슬을 주어 이밀의 신하 입장에서 자신의 신하로 만들었습니다. 이밀의 가장 큰 패들이 자신의 손에서 떠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밀은 자신이 산동으로 가면 옛 부하들이 있으니 그쪽을 평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뜻밖에도 당나라 조정은 허락했는데, 이밀을 풀어놓는것은 위험하지만 이미 이밀의 팔은 다 꺾어두었고, 또 이 기회에 그를 죽이려는 목적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밀의 감시관으로 장보덕이라는 사람이 따라갔는데, 장보덕은 얼마 가지도 않아서 "이밀이 반란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밀이 무언가 수를 쓸것 같고, 그렇다면 차라리 이밀이 반역했을때 감시관으로 책임을 지기보단 먼저 이밀이 반란했다는 이야기를 꾸미는 편이 이롭다, 는것이 장보덕의 생각이었죠.
당나라 조정은 이밀에게 혼자서 오라고 했습니다. 이미 보냈다가 불러들이는것도 이상한데, 혼자 오라면 분명히 죽이겠다는 뜻이기에 이밀은 달아났지만 곧 추격군에 잡혀서 참수당했습니다.
화려한 비상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무한 최후였습니다.
이밀은 낙구창을 장악해서 큰 힘을 얻었지만, 반면에 그 낙구창에 얾매여서 낙양에서만 어슬렁거리며 별다른 움직임을 못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이연은 별 미련도 없이 태원에서 주력을 빼서 관중을 손에 넣었습니다. 거기다 막판에는 위징이나 이세적같은 명신들마저 손에서 빼앗겨버렸고, 이연을 비롯한 세력들이 활동하기 편하게 해준것 밖에 해낸것이 없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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