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 거란을 멸하다 3부 - 여진군의 전투 방식

 


금사 병지 中
金興, 用兵如神, 戰勝功取, 無敵當世, 曾未十年遂定大業.
금이 흥할 때, 용병(用兵)이 신(神)과 같아, 싸움에서 이겨 공을 취하였으니, 
당시에 무적(無敵)하여, 일찍이 10년도 채 되지 않아 드디어 대업(大業)을 평정하였다.

1. 여진군은 모두 기병(騎兵)
   → 사람과 말을 하나로 묶음

2. 1대(隊) 50 명이 부대의 기준 
→ 2대(隊) 100 명이 1 모극(謀克) → 300 호의 소부족 족장급
→ 10모극(謀克) 1000 명이 1 맹안(猛安) → 3000 호의 대부족 족장급

3. 1대의 부대 편성
    전열에 20명의 중무장 창+곤봉 기병
    후열에 30명의 경무장 궁 기병
    맨 선두에 1~2명의 정찰 기병


4. 전투 방식
→ 맨 먼저 정찰 기병 1~2명이 적진으로 빠르게 달려감
→ 정찰 기병이 적의 전후좌우를 돌면서 빈틈을 찾음
→ 본군 50명은 적에게 다가감
→ 100 보 앞에 이르면 30명의 궁기병이 화살을 쏨
→ 활을 어릴 적부터 일상적으로 쏘아 명중률이 거의 100%에 가까움
    송막기문에 따르면 여진인은 늙은이까지 모두 시력이 대단히 좋다고 함.
→ 중무장 창+곤봉 기병 20명을 선두로 적중으로 돌진함
→ 금건국 이전부터 맹안모극제는 여진의 고유 병력 운용체계이며, 
   1114년 10월에 찰지수 전투 이후 아골타가 3000호 1천 명 1맹안 제도를 확립시켰음.
→ 금사 병지에 따르면 1184년 대정 24년에 등록된 맹안모극은 
    맹안(猛安) 202, 모극(謀克) 1878, 호(戶) 615624

5. 여진군의 병법
→ 금사 병지에 기록되길 1199년 금황제 장종이 우승상 청신(清臣)에게 병법의 사용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함.

금사 병지 中
「兵書一定之法,難以應變。本朝行兵惟用正奇二軍,臨敵制變,以正為奇,以奇為正,故無往不克。」
「병서(兵書)에는 일정(一定)한 법(法)이 있사온데, 응변(應變/임기응변)함이 어렵습니다.
   본조(本朝)는 오직 정군(正軍)과 기군(奇軍)의 2 군(軍)만 사용하여 행병(行兵)하였는데,
   임적(臨敵/적에 임함, 교전)하면 제변(制變/변통變通/경우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함)하여,
   정(正)이 기(奇)가 되고, 기(奇)가 정(正)이 되니, 
   이런 연고(緣故)로 언제나 이기지 못함이 없었습니다.」

→ 즉 여진군에는 앞서 말한 [선 정찰병 → 100보 앞 궁시 → 적진 돌격] 등의 정해진 병력 운용법과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바뀌는 임기응변에 능했다는 이야기 임.

→ 같이 생활하는 부족 공동체라 평시부터 단체 행동에 익숙하여, 특별한 군사훈련 등은 필요치 않았음


거란국지 천조황제 1114년 기사 中
初,女真之叛也,率皆騎兵。
旗幟之外,各有字號小木牌,繫人馬上為號,五十人為一隊。
前二十人全裝重甲,持鎗或棍棒;後三十人輕甲操弓矢。
每遇敵,必有一二人躍馬而出,先觀陣之虛實,或向其左右前後,結陣而馳擊之。
百步之外,弓矢齊發,無不中者。
勝則整陣而復追,敗則復聚而不散。
其分合出入,應變若神,人人皆自為戰,所以勝也。
처음에, 여진(女真)이 배반(背叛)하였는데, 모두 기병(騎兵)을 거느렸다.
기치(旗幟/전쟁 중 사용하는 깃발) 외(外)에, 각자 글자가 적힌 작은 목패(木牌)를 가지고 있었는데,
인마(人馬)를 묶어 (목패의) 위에 적어 1 호(號)로 하였으며50 인을 1 대(隊)로 하였다.
(1대 50명 중에) 앞에는 20 인이 전부(全部) 중갑(重甲/무거운 갑옷)으로 무장(武裝)하여, 
창(鎗)이나 혹은 곤봉(棍棒)을 쥐었고,
뒤에는 30 인이 경갑(輕甲/가벼운 갑옷)을 입고 궁시(弓矢)를 잡고 있었다.
매번(每番) 적(敵)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한 두 명이 말을 빨리 달리면서 나와,
먼저 (적의) 진(陣)의 허실(虛實)을 보거나, 혹(或)은 그 좌우전후(左右前後)로 향(向)하고
(본진은) 결진(結陣/진을 침)하면서 치격(馳擊/질주하여 공격함)하였다.
100 보(步)의 밖에서, 궁시(弓矢)를 제발(齊發/일제히 쏨)하니, 적중(的中)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기면 곧 진(陣)을 정돈(整頓)하면서 다시 추격하고, 패하면 곧 다시 (무리를) 모아 흩어지지 않았다.
그 분합(分合/나누거나 합침)하고 출입(出入/나가고 들어옴)함의, 
응변(應變/임기응변)이 신(神)과 같았고,
(여진족) 개개인마다 모두 자발적으로 싸움하니, 이런 까닭으로 승리(勝利)하였다.

-------------------------------------------------------------------------------------

-4부 영강주성 전투에서 계속됩니다.-

P.S) 본 글은 동의 없이 어느 곳에나 담아 가셔도 됩니다. 출처는 남겨주시면 고맙고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