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眞) 만인적(萬人敵) 한세충(韓世忠) 열전 국역 3부[만인적 칭호를 듣고 방랍을 직접 사로잡다]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宣和二年,方臘反、江、浙震動,調兵四方,世忠以偏將從王淵討之。
次杭州,賊奄至,勢張甚,大將惶怖無策。
世忠以兵二千伏北關堰,賊過,伏發,眾蹂亂,世忠追擊,賊敗而遁。
淵歎曰:
「真萬人敵也。」
盡以所隨白金器賞之,且與定交。
時有詔能得臘首者,授兩鎮節鉞。
世忠窮追至睦州清溪峒,賊深據岩屋為三窟,諸將繼至,莫知所入。
世忠潛行溪穀,問野婦得徑,即挺身仗戈直前,渡險數里,搗其穴,格殺數十人,禽臘以出。
辛興宗領兵截峒口,掠其俘為己功,故賞不及世忠。
別帥楊惟忠還闕,直其事,轉承節郎。
선화(宣和/휘종의 #6 연호) 2년(1120년)에
방랍(方臘)이 반란(反亂)하여 강(江)과 절(浙)이 진동(震動)하니, 
사방(四方)에서 조병(調兵/병사를 뽑아 조련함)하였는데,
한세충(韓世忠)이 편장(偏將/대장 휘하의 부하 장수)으로써 왕연(王淵)을 따라 토벌(討伐)하였다.
항주(杭州)에 머물렀는데, 적(賊)이 문득 (항주에) 이르렀고, 
세(勢)가 장심(張甚/기세가 오르고 대단함)하니, 
대장(大將)이 황포(惶怖/매우 두려워함)하여 무책(無策/계책이 없음)하였다.
한세충(韓世忠)이 병(兵) 2천으로써 북관(北關)의 둑에 매복(埋伏)하였다가, 
적이 지나가자, 복발(伏發/복병이 일어남)하니, (적의) 무리가 유란(蹂亂/혼란하여 서로 짓밟음)하였고, 
한세충(韓世忠)이 추격(追擊)하니, 적(賊)이 패(敗)하여 달아났다.
왕연(王淵)이 탄식(歎息)하며 말하길
「진(真) 만인적(萬人敵)이다.」
모두의 의견을 좇아 백금(白金)의 그릇을 상(賞)으로 내리고, 
또한 (왕연과) 더불어 교제(交際)를 정(定)하였다.
이때 조(詔)가 있어 능(能)히 방랍(方臘)의 머리를 득(得)하는 자(者)는, 
양진(兩鎮/강과 절)의 절월(節鉞/옥절과 부월)을 수여(授與)한다 하였다.
한세충(韓世忠)이 궁추(窮追/끝까지 쫓음)하여 목주(睦州)의 청계동(清溪峒)에 이르자,
적(賊)이 세 개의 굴(窟)에 암옥(岩屋/암굴집)을 짓고 심거(深據/깊은 곳에 의지함)하니,
제장(諸將)이 계속(繼續)하여 이르렀으나, 소입(所入/들어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한세충(韓世忠)이 계곡(溪穀/溪谷)에 잠행(潛行/몰래 행함)하여, 
야부(野婦/들녘의 아녀자)에게 물어 지름길을 얻으니,
곧 창(戈/과)에 의지(依支)하여 곧장 앞으로 정신(挺身/앞장서 나감, 솔선)하였고, 
수 리(里)를 도험(渡險/험한 곳을 건넘)하여, 그 동굴(洞窟)을 공격하고는, 
수십인(數十人)을 격살(格殺/때려죽임)하였고, 방랍(方臘)을 사로잡아 (동굴에서) 나왔다.
신흥종(辛興宗)이 영(領)하여 병(兵)으로 동구(峒口/동굴의 입구)를 막게 하고,
그 (한세충이 잡은 방랍의) 사로잡음을 자기(自己)의 공(功)으로 탈취(奪取)하였는데,
이런 연고(緣故)로 상(賞)이 한세충(韓世忠)에게는 불급(不及/미치지 못함)하였다.
별수(別帥/별동대 장수) 양유충(楊惟忠)이 환궐(還闕/궐에 돌아옴)하여, 그 일을 직언(直言)하니,
(한세충은) 승절랑(承節郎/종9품 무관직)으로 영전(榮轉)하였다.

*진만인적야(真萬人敵也) : 진실(眞實)로 만(萬) 명을 상대(相對)할 만 하구나.


*송사통속연의(宋史通俗演義) 제57회 中 → 20세기 초반 채동번(蔡東藩)이 쓴 역사소설
斬首至萬餘級,仍未得方臘下落。
有一小校,挺身仗戈,帶領同志數人,潛行溪谷間,遇一野婦,問明方臘所在,野婦卻指明行逕。
他竟直前搗入,格殺數十人,大膽進去,見方臘擁著婦女,尚在取樂,〔縱樂如恐不及,想亦自知要死。〕不由的大喝道:
「叛賊速來受縛!」
方臘瞧著,方將婦女推開,拔刀來鬥,戰不數合,被小校用戈刺傷,活擒而出。
참수(斬首)가 만여 급(級)에 이르렀는데, 오히려 방랍(方臘)의 하락(下落/소재所在)를 얻지 못하였다.
한 소교(小校/하급 장교)가 있어, 창(戈/과)에 의지(依支)하여 정신(挺身/앞장서 나감, 솔선)하니,
동지(同志/뜻이 같은 사람) 수인(數人)을 대령(帶領/데리고 거느림)하고는, 
계곡(溪谷) 간(間)에 잠행(潛行/몰래 행함)하여, 한 야부(野婦/들녘의 아녀자)를 만나, 
방랍(方臘)의 소재(所在)를 문명(問明/물어 밝힘)하니,
야부(野婦)가 뒤로 물러나 행경(行逕/가는 길)을 지명(指明/가리키어 나타냄)하였다.
그 사람은 마침내 곧장 앞으로 나가 도입(搗入/들어가 공격함)하여, 
수십인(數十人)을 격살(格殺)하였으며, 
대담(大膽/담력이 매우 큼)하게 진거(進去/앞으로 나아감)하였는데, 
부녀(婦女)를 옹저(擁著/끼고 달라붙음)하는 방랍(方臘)을 발견(發見)하니,
(방랍은) 오히려 취악(取樂/즐거움을 취함)하고 있었는데,
〔종악(縱樂/방종하여 즐거워함)함은 
   (실은) 여공불급(如恐不及/일이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함)하는 것이니,
   생각건데 역시 스스로도 요사(要死/죽음을 맞이함)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급 장교가 화가 나서) 저절로 대갈(大喝/큰 소리로 꾸짖음)하였다.
반적(叛賊)은 속(速)히 나와 수박(受縛/포박을 받음)하라!」
방랍(方臘)이 몰래 훔쳐보고, 막 부녀(婦女)를 추개(推開/밀어냄)하고는, 
발도(拔刀/칼을 빼내 듦)하여 내투(來鬥/싸우러 옴)하여, 싸웠는데 수합(數合)도 되지 않아,
소교(小校/하급 장교)가 쓰는 과(戈/창)에 자상(刺傷/창에 찔린 상처)을 입으니,
(하급 장교가) 활금(活擒/생포)하여 (동굴에서) 나왔다.

看官道小校何人?便是後來大名鼎鼎的韓世忠。
〔世忠為南宋名將,應用特筆。〕
간관(看官/독자 여러분)은 소교(小校/하급 장교)가 어떤 사람이라 보는가? 
변시(便是/다른 것이 없이 곧) 후(後)에 대명정정(大名鼎鼎/이름을 높이 날림)한 한세충(韓世忠)이다.
한세충(韓世忠)은 남송(南宋)의 명장(名將)이 되니, 응용(應用)하여 특필(特筆/특별히 적음)한다.〕

世忠擒住方臘,行至窟口,適值辛興宗領兵到來,便令世忠放下方臘,
飭軍士將他縛住,自己帶兵再入窟中,搜得臘妻邵氏,臘子亳二太子,
並偽將方肥等五十二人,一並縶歸,所有被掠婦女,概置不問。
後來上表奏捷,只說方臘是自己擒住,把韓世忠的功勞,略去不提。
看官你道他刁不刁,奸不奸呢?
한세충(韓世忠)이 방랍(方臘)을 금주(擒住/생포)하여, 굴구(窟口/굴 입구)에 이르렀는데,
마침 병(兵)을 거느리고 도래(到來/이르러 옴)하는 신흥종(辛興宗)을 만났는데,
문득 영(令)하여 한세충(韓世忠)에게 방랍(方臘)을 방하(放下/내려놓음)하게 하고는,
군사(軍士)에게 신칙(申飭/단단히 타일러 경계함)하여 장차 그를 박주(縛住/산 채로 포박함)하여,
자기(自己)가 데려온 병(兵)으로 굴(窟) 중(中)으로 재입(再入/다시 들어감)하고는,
방랍(方臘)의 처(妻) 소씨(邵氏)와 방랍(方臘)의 아들 박이(亳二) 태자(太子)와 더불어 
위장(偽將/방랍이 임명한 거짓 장수) 방비(方肥) 등 52인을 수득(搜得/수색하여 얻음)하고는,
일병(一並/일체)으로 집귀(縶歸/잡아매어 돌아감)하였고,
(방랍이) 소유(所有)한 피략(被掠/약탈을 당함)한 부녀(婦女)는, 대개 불문(不問)에 부치었다.
후(後)에 주첩(奏捷/승첩)을 상표(上表/임금에게 글을 올림)하여 오자,
단지 서술(敍述)하기를 방랍(方臘)을 자기(自己)가 금주(擒住/생포)하였다 하고는,
한세충(韓世忠)의 공로(功勞)를 묶어버리고, 약거(略去/생략)하고는 제시(提示)하지 않았다.
간관(看官/독자 여러분) 당신이 보기에 이것이 간사한가? 간사하지 않은가?, 
간사한가? 간사하지 않은가?





























--------------------------------------------------------------------------------

P.S) 본 글은 동의 없이 어느 곳에나 담아 가셔도 됩니다. 출처는 남겨주시면 고맙고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