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주, 송금강, 두건덕, 왕세충. 이 모든 적을 무찌르고 스물 다섯의 장수를 뒤로 세우고 1만의 기병과 3만의 무사를 대동하고 장안으로 귀환하는 이세민의 위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는 여러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일이었지요.
당나라가 건국되고 안정되는데 이세민의 공훈이 너무나도 막대하다는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세민이 태자였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지금 태자는 이건성이었죠. 이건성은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세민에게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세민을 공격하는 수 밖에 없었고, 이세민 역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형을 공격해야만 하는 안 좋은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갈등이 아직 표면화되기전, 이리 낌새를 챈 이세민의 진왕부와 이건성의 태자 진영은 경쟁적으로 인재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문학관(文學館)을 장악한 이세민은 18학사(十八學士)들을 자신을 편으로 만들고 일종의 참모양성소 비슷하게 꾸몄습니다. 또한 수하인 굴돌통(屈突通)을 낙양에 남기고 장량(张亮)을 시켜 낙양의 호걸들을 알아보라고 명령을 내렸지요.
또한 방현령(房玄龄) 등 역시 꾸준히 사람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세민에게 가장 유리한것은 이세민이 정복전쟁을 하면서 그의 세력이 일치감을 가졌다는것과, 이세민이 지나간 사방에 자기 세력을 남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성도 이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편을 끌어모았지요. 둘의 인재풀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태자 이건성의 진영
제왕 이원길, 위징(魏徵), 왕규(王珪), 위정(韋挺), 이예
진왕 이세민의 진영
방현령, 두여회(杜如晦), 단지현(段志玄), 위지경덕, 장손무기(長孫無忌), 장량, 굴돌통, 온대아(溫大雅), 정교금(程咬金), 진경(秦琼), 장공근(張公謹), 설만철(薛萬徹), 두엄(杜淹), 장사귀(張士貴)
중립적인 입장에 있거나 간을 보면서 확실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쪽
봉덕이(封德彛), 이정(李靖), 이세적
이건성에게는 매우 막강한 카드가 있었는데 바로 제왕 이원길입니다. 이연의 넷째 아들로 이건성과 이세민의 동생이 되었죠.이원길은 몹시도 잔혹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생긴것도 추하게 생겼다고 하고, 부하들을 두패로 갈라 진검을 주고 막싸움을 시키는가 하면, 자기에게 충고하는 유모를 부하를 시켜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합니다. 물론 이세민이 당태종이 된 후에 일부러 안좋게 왜곡 시켰을 수도 있지만, 그런것까지 알 수야 없고 넘겨 짐작하면 일이 별로 안좋아지죠.
이건성은 이런 이원길을 자기 편으로 끌여들었습니다. 이원길은 본래 창을 잘 쓰는 사람 이었는데, 이세민 휘하의 위지경덕과 세번 창을 겨루다 세번 다 손도 못써보고 당하는 망신을 당해 약간 앙심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얻은 이원길은 이건성에게는 엄청난 패가 되었지요.
이건성 휘하의 신하들이 이세민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워낙 공도 큰데다 무엇보다 황제의 아들입니다.이건성 자신이 나서는것도 좋지 않습니다. 태자가 진왕을 견제한다는 모습이 보이니까요. 하지만 이원길은 달랐습니다. 제 3자 입장에 있는데다 황제의 아들인 이원길은 언제든지 이연 앞에서 이세민을 공격 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이 둘의 연합은 이세민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위징도 위협적입니다. 깐깐한데다 영리한 위징은 뛰어난 참모였기에 진왕부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황제가 된 이연과 이세민이 사사건건 충돌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연은 여러번 측근에게 "둘째는 사람이 달라졌다." "이제 예전의 그 아이가 아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떠나버렸던 것이죠.
그러다가 두건덕의 부하인 유흑달(劉黑闥)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초 조정에서는 이세민을 파견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유흑달의 세력이 막강하여, 이를 진압하라고 보낸 이세적이 패배합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이세민을 파견하여 진압하였지요.
하지만 이세민이 철수 한 후 유흑달은 다시 돌궐을 등에 엎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번에는 이건성이 움직입니다. 바로 위징과 왕규의 간언때문이었지요.
"진왕의 공이 너무 큽니다! 하지만 태자께서는 동궁에 계시느라 이에 미치지 못하는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유흑달의 난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어마어마하니, 태자께서는 이를 무찌르겠다고 선언하십시오. 산동 호걸들이 지지해줄 것입니다."
이에 이건성은 당고조 이연에게 말해 출정하였고 반란을 진압, 산동에 자신의 세력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이세민의 대공에 비하면야 부족했지만, 세상에 당나라에 진왕만 있는것이 아니라 태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것을 과시하였지요.
거기다 이세민은 아버지인 황제 이연의 비빈들에게 전혀 평판이 있지도 않았고 평판을 키울 생각도 없었던것에 비해, 이건성은 어느정도 그쪽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비빈들은 계속해서 이연에게 이세민에 대한 험담을 했습니다.
이건성이 가지고 있는 이 힘이 여실없이 들어간 것이 양문간(楊文幹) 사건입니다. 양문간 사건으로 이건성은 큰 피해를 입을뻔했지만 반대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길긴 하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말하면 양문간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건성이 배후에 있었다는것으로 사실이 밝혔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진짜 이건성의 소행인지, 진왕부쪽의 책략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태자가 기를 쓰고 반란을 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점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일로 이건성은 큰 공격을 받았고, 결국 이연은 이세민을 태자로, 이건성을 촉왕으로 하겠다고 말을 하였고 이세민은 양문간의 반란을 진압하러 떠났습니다.
한참 이세민이 싸우고 있었을때, 갑자기 다른 소식이 들려옵니다. 취소! 그런 계획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에 큰 공을 세운것이 이원길, 그리고 황제의 비빈들이었습니다. 이연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었죠. 이연은 위징, 왕규, 그리고 진왕부의 두엄을 처벌하는것으로 이 일을 끝내버렸습니다.
이렇듯 이건성과 이세민의 경합에서는 이건성이 점점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세민의 대공에 기가 눌리던 이건성이지만, 점점 정치적인 투쟁에서 유리한 쪽을 점해가고 있었지요. 태자 일파에서는 끊임없이 이세민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이연에게 하고, 이연은 그럴수록 치를 떨었고, 반대로 진왕부 쪽의 공격은 어느정도 대처하면서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진왕부의 인물들을 여기저기 흩어놓으면서 분열시켰구요. 그리고 일대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626년, 돌궐이 당나라의 변방을 공격했습니다. 이건성은 이 기회를 이세민 일파의 일망타진을 생각하면서 이원길을 통병원사(統兵元師)로 추천하여 돌궐군을 막는 병사들을 지원하라고 권하였습니다. 조정에서는 이를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사실 목적은 이 지위를 이용해서 위지경덕, 진경등 진왕부의 사람들을 참전 시키는것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사령관으로 아랫사람을 처리하는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지요.
계획은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 어떻게 된것인지 이세민 일파로 흘러들어가고 맙니다. 이에 진왕부는 격렬하게 들끓으면서 반발했습니다. 물론 이런 계획도 '이건성이 먼저 우리를 죽이려고 했으니, 우리도 이건성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는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피곤하니 일단 넘어가구요.
당시 방현령과 두여회는 조정의 신하라는 신분이었기에 이 모임에 참석할수 없었습니다. 대신 장손무기가 중심이 되어 이세민을 설득했습니다. 무력을 써서 거병하자고 말입니다. 이세민은 어물쩡 거렸지만, 위지경덕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대왕께서 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더이상 저도 대왕곁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대왕께선 지켜보기나 하십시오!"
그때서야 이세민은 움직이며 자신의 칼을 위지경덕에게 주었습니다.
"방현령과 두여회를 데려오게. 오지 않겠다면....베어버리게!"
626년 6월 3일, 이세민은 황제 앞에 나서서 이건성과 이원길이 이연의 후궁들을 강제로 희롱했다고 고발합니다. 그러면서 몹시 격렬한 언사를 취했습니다.
"저는 죽습니다만은, 그보다 죽어서 왕세충과 두건덕을 보는것이 더 수치스럽습니다!"
"내일 대질 심문을 해보겠다."
이 고발은 전혀 황당무계한 것이었는데, 대질을 해서 이세민이 거짓말을 한것이 밝혀지면 큰일이 나겠지만, 이세민의 목적은 이를 통해 이건성을 불리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이원길은 이건성에게 충고합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차라리 우리의 병력을 모으고, 어떤 핑계를 대어 가지 않도록 합시다. 그러면 안전하겠지요."
"우리 준비는 이미 철저하니 직접 궁으로 가서 상황을 확인하는것이 좋지 않겠느냐."
6월 4일 새벽, 이건성과 이원길은 밖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현무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정도 가던 이건성은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이거 느낌이 안 좋구나. 돌아가자!"
“대형(大兄)!”
갑작스러운 외침에 이건성과 이원길은 달아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완전무장한 이세민이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원길은 화살을 세번이나 쏘았으나 워낙 놀라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반면에 계획을 세우고 침착했던 이세민은 천천히 활시위를 들어 겨냥, 손을 놓았습니다.
화살은 치명적일 정도로 정확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이건성의 목덜미를 피육, 하고 맞추어버렸습니다. 이건성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즉시 이건성이 데려온 수하들과 이세민의 부하들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숫자는 이세민의 부하들이 많았지만, 태연하게 형을 살해하긴 했지만 이세민 본인도 워낙 놀랍고 떨리는 일이었던 것 때문인지 이세민은 나무에 걸려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원길은 이때 이세민의 화살을 뺏어서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위지경덕이 있었습니다. 위지경덕에 의해서 이원길까지 죽어버렸고, 이 모든 일은 종료되었습니다.
위지경덕은 완전 무장한체 이원길을 죽이고 온 몸에 피가 듬뿍 묻은 모습 그대로 이연에게 달려갔습니다. 마침 이연은 연못에 배를 뛰우고 구경하고 있엇는데, 지옥에 올라온 악귀같은 위지경덕을 보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누가...반란을 일으킨 것이냐?"
"태자와 제왕입니다. 하지만 진왕께서 이들을 살해하셨습니다. 황상이 놀라실까봐 저를 보낸 것입니다."
이연은 자기가 할 수 있는것이 모두 끝나버렸다는것을 알고, 결국 병권을 그 자리에서 이세민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이세민은 태자가 되었고, 두 달 후에는 황제가 되었지요.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서 황제가 된 이세민, 당태종은 역사에서 이름을 안좋게 남기지 않으려면 정말 많은 업적을 세워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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