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종조 이야기를 틈틈이 하고 있는 데요, 오늘은 문종조 고려에 군현설치를 요청한
여진부락들의 기록을 토대로, 여진 1개 부락의 규모에 대해 알아 볼까 합니다.
-----------------------------------------------------------------------------------------
*예전에도 한번 여진 1부락의 규모에 대해 알아본적이 있었는데 약간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고려사절요에는 1073년 6월에 군현편입을 요청한 기사에
<삼산(三山),대란(大蘭),지즐(支櫛) 등 마을의 번장 1238호> 라고 하여 3개 마을 1238호로 계산한적이 있었습니다.
하여 당시에 1부락의 평균 호수를 400으로 잡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고려사세가에는 삼산등 9개촌 1238호라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것을 간과 하였습니다.
-----------------------------------------------------------------------------------------
우선 기록은 이러합니다.
1073현 동여진 귀부현황
-2월 고도화등 15부락 군현설치 요청
-5월 삼산촌(三山村)등 9개 부락 1238호 군현설치 요청
-6월 대제촌(大齊村)등 12개 부락 1970호 군현설치 요청
1073년 서여진 귀부현황
-5월 서여진 추장 만두불(曼豆弗)등 여러부족 동여진의 전례에 따라 군현설치 요청
-5월 이제촌(伊齊村)에서 멱해촌(覓害村)으로 이주한 골어부(骨於夫)가 이끄는 35호 인구 252명 고려에 호적등재요청
-5월 삼산촌(三山村)의 도적?(서여진 흑수말갈족의 말에 의하면) 150호, 보기병 500 명
-5월 나갈촌(羅竭村) 전투의 여진 30개 부락 연합군 2030 명, 고려 장수의 참관요청
-5월 나갈촌 전투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추정되는 다어개(多於皆)와 아반니(阿半尼)가 이끄는 2개 부락 병력 680 여명
-1081년 1월 서여진의 아부환(阿夫渙)등 9개 추장이 고려에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서북면병마사의 건의가 있자
9추장을 모두 장군으로 봉함
우선 5,6월의 동여진 21개 부락을 합산하면 21개촌 총합이 3208 호이며, 1촌당 평균 153 호입니다.
1073년에 군현설치 요청을 하여 번병을 자처한 동여진 부락의 총수는 36부락이며, 1촌당 153호로 잡으면 약 5500 여호가 됩니다.
서여진의 경우 이제촌에서 남쪽 멱해촌으로 이주한 부족이 35호에 인구 252명으로, 1호당 평균 7.2 명입니다.
이 부족은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주한 경우라 부락규모가 적다고 생각되네요.
여진족의 호수당 인구가 나와 있는 드문 경우임으로, 이 수치를 표준으로 볼까 합니다.
또한 병력규모는 삼산촌(三山村)에 침입한 나갈촌(羅竭村) 부족의 경우를 예로 들까 합니다.
나갈촌 부족은 총호수가 150여호, 병력은 보기병을 합하여 500 여명입니다.
이 부족이 상당히 강해 인근부족들을 많이 괴롭힌 모양입니다.
하여 서여진 흑수말갈 30부족이 나갈촌을 연합하여 공격하게 됩니다. 이때 고려에 참관요청을 하여
이에 정주 낭장 문선이 통역관과 군인 15명을 이끌고 여진족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이전투에 참관하게 됩니다.
기사에 서여진은 참관요청, 고려는 지휘를 하였다고 하니
서여진은 30개 부족을 통합할 명분을 위해 고려를 끌어 들인듯 싶고, 고려 장수는 대체 무슨일인가 싶어서 참전한듯 싶습니다.
연합군과 나갈촌의 첫전투에서 나갈촌 병력 220 명이 죽자, 승세를 탄 연합군은 나갈촌성을 공격하여 330명을 사로잡고
나머지는 불태워 죽여 버립니다. 이 전투후 남은 30개 부족의 연합군은 2030 명이였습니다.
이후 연합군은 나갈촌의 잔당이 숨어 있는 유전촌(由戰村)을 공격하였으나, 성의 수비가 견고하고 병량이 떨어져 해산하고 말지요.
나갈촌 부족의 경우 총호수는 150호, 병력은 보기병 500,
1호당 평균병력은 3.3명, 1호당 평균 7.2명으로 계산하면 약 1080 여명이 됩니다.
1천여명의 부족민중에 거의 반수가 병력이 되는 셈이지요.
1호당 3.3명의 병력동원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치입니다.
전투 한번에 부족의 생사가 걸려 있는 상황, 상시 타부족과의 긴장상태등을 고려하면
여진족으로 살아가기도 상당히 힘들었을듯 싶습니다.
또 나갈촌 전투에서 가장 큰세력으로 추정되는 2개 부족의 병력이 680 여명 이였습니다.
30개 부족이 연합했다고 하나 병력의 1/3이 두부족에서 나온 셈이지요.
2부족의 한부족당 평균병력이 340 명인데, 나머지 28개 부족은 1부족당 평균 50 여명 꼴입니다.
이를 보면 부족간 결속력이 심하게 떨어지거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추정됩니다.
즉 고려의 이름을 내걸고 부족을 끌어 모았다고도 보여지네요.
이도 나갈촌과 직접 영향이 있는 몇몇 부족만이 제대로된 병력을 끌고 왔고
나머지 부족들은 원병 수준이였던듯 싶습니다.
또한 30개 부족의 연합군이 대대적으로 구성되었는데, 병량이 몇일분 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들이 총력전을 벌인것은 아닌란 생각이 드네요. 아니면 당시가 식량이 없을 5월임을 감안할수도 있겠지요.
이쯤에서 제가 생각하는 결론을 요약하겠습니다.
1. 여진 1개 부락의 평균 호수 → 150 여호
2. 여진 1개 부락의 평균 인구 → 1호당 7.2명 약 1100 여명
3. 여진 1개 부락의 동원 병력 → 1호당 3.3명 약 500 여명
-다음에는 나갈촌 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길공구-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