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종이야기(27) 국왕에게 안되요! 를 외친 위계정

 1. 선종이 사랑하는 첩 만춘이 집을 화려하게 짓자,

   → 안되요! 당장 헐어 버려야!

 

 

고려사 中

왕의 폐첩(嬖妾/사랑하는 첩) 만춘(萬春)이 제택(第宅)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짓자, 위계정(魏繼廷)이 아뢰기를,
“만춘이 임금의 마음을 광혹(狂惑)시키고 백성을 노역(勞役)하게 하니 헐어 버리기를 청합니다.”
하였으나, 회보(回報)하지 않았다.

 

 

 

2. 선종이 흥겨운 술자리에게 위계정에게 춤추라 하자,

   → 안되요! 제가 광대입니까?

 

고려사 中
위계정이 뒤에 추밀승선(樞密承宣)으로 전임되었는데, 연등(燃燈) 행사하던 날 밤에 왕이 연회를 배설했는데

술이 흥겨웠을 때 위계정에게 춤을 추라고 왕이 명령하였다.

이때 그는 왕의 명령을 사절하여 말하기를 "광대(伶人)가 있는데 어찌 제가 춤을 추겠습니까?"라고 하니 왕도 강요하지 못하고

그만 둔 일도 있었다. 그가 일을 당하면 거리끼지 않고 바른 말을 함이 이와 같았다.

 

 

3. 예종이 퇴직하지 말고 계속 일하라고 하자, 

   → 안되요! 저 아파요! 라며 7번 거절

 

고려사 열전中
(위계종이) 예종 초기에 문하시중으로 임명되었을 때 퇴직을 청원했으나 허락하지 않았고 재차 퇴직을 요청했으나 왕은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으며 좌승선(左承宣) 유인저(柳仁著)를 그의 집으로 보내 퇴직하지 말라고 타일렀으나 위계정은 병이라고 칭탁하고 왕에게 글(表)을 올려 굳이 퇴직할 것을 간청하였다.

그래도 왕은 허락하지 않고 특히 친필로 쓴 조서를 그에게 보내었는데 "그대는 탐오하고 간사한 무리들의 꺼리는바 있었으나 추호도 충직한 절조를 고치지 않았으므로 선왕께서는 그대의 어진 행적을 가상히 보시고 일찍이 중대한 임무를 맡기시었고 나는 즉위한 후 한 마음 한 덕으로 나가는 대신으로 여기고 있다. 그대는 금년 봄부터 병을 핑게 하고 퇴직을 요청하여 왔는데 이는 비록 만족한 것을 알고 그칠 데를 아는 가상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내가 의지하고 기대하는 마음과는 부합되지 않는바 있다. 행여나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지극한 성심을 알거든 지나친 사양을 하지 말라 전자에도 이미 간곡하게 유고한 바 있었는데 또 다시 무슨 말을 하는가?"라고 하고

 

드디어 내인 한교여를 보내 그를 설복하였으며 이내 수태보로 임명하였다.

 

그래서 다시 위계정이 출근하여 일을 보았는데 어사가 왕에게 아뢰기를 "위계정은 신병이 있어 일년 이상 일을 보지 못하고 누차 은퇴할 것을 청원하였는바 전하께서는 더욱 후대하시고 200일간 휴가를 주셨는데 이제 휴가 기일이 지난지 수십 일 만에 겨우 출근하였다는 것은 대신의 체통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그를 대신의 직위에서 파면시키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으나

왕은 파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후 2년간에 3차에 걸쳐 사직 청원서를 제출하니 왕이 조서를 내리기를

"그대의 청백한 범절과 후중한 덕행은 백관들이 복종하는 중진이며 곧은 절개와 높은 명망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놀랬다.

문종께서 그대를 등용하시어 사신(詞臣-문한으로 시종하는 신하)을 삼으셨고 돌아가신 순종께서는 수상(首相)으로 삼으셨다. 또 지금 나는 미숙한 사람으로 명철한 노대신의 보좌를 받고 있는데 그대는 신병이 있다고 갑자기 중책을 사퇴하려 하기에 재차 글을 내려 나의 지극한 심정을 말했으나 7차에 걸쳐 글을 올리고 굳이 뜻을 이르고자 하므로 그대의 견고한 청원도 막기 어려워서 편안히 휴식할 것을 허락하노니 잘 조섭하여 될수록 신속히 출근하도록 하라"고 간곡히 효유하고

또 뒤이어 중사(中使)를 보내 그를 위문하고 차와 약을 두 은합(銀合-은으로 만든 곳)을 보내 주었다.

 

 

 

4. 예종이 퇴직 승인하면서, 계속 급여를 받아가라고 하자,

   → 안되요! 저 못받아요. 라며 2번 거절

 

고려사 열전中

위계정이 다시 글을 올려 녹(祿)을 받지 않겠다고 사양하니 왕이 다음과 같은 조서를 주었다. "그대는 오랜 기간 재상으로서 보필하는 공적을 쌓아 왔는데 우연히 피부병에 걸렸으니 내 생각에는 몸을 편히 쉬우지 않으면 병이 속히 치료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고 비록 보내기는 몹시 아까웠으나 억지로 참고 은퇴 청원을 받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다시 글을 올려 녹(祿)을 받지 않겠다고 청원하는가? 퇴직한 후에 국록을 주는 것은 상례가 있는 일이니 나의 마음을 잘 체득하고 쓸데 없이 너무 사양하지 말라!"고 타일렀으나 위계정이 재차 글을 올려 녹을 사양하니 왕이 또 조서를 다음과 같이 보냈다.

 

"그대는 넓게 배우고 문장을 전공하여 문학계의 영수로 되었으며 몸을 바치고 곧은 절조를 가짐으로써 일대의 명신으로 되었다. 병으로 벼슬에서 은퇴하고 가는 것도 심히 애석하거늘 녹(祿)마저 아니 받겠다 하니 이것은 내가 어진이를 우대하고 노인을 존경하는 본의와 배치된다. 그래서 삼사(三司)에게 지시하여 녹의 반액을 공급할 것을 명령하노라."

 

 

강직했던 위계정은 예정 묘정에 배향 되었습니다.

 

P.S) 신문기사에도 난적이 있군요.^^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40337


P.S) 삼국전투기 라는 만화에서 오의 우번과 비슷한것 같네요.^^;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2027&no=382&weekday=wed

       우번과는 달리 위계정은 숙종 중기 무렵부터 재상이 되어서는,

       대세를 따르며 숙종에게 순종하였습니다. 

       숙종의 유명대신으로, 예종이 즉위하자 문하시중에 임명되었습니다.

       말년의 열전은 이렇습니다.

[나라 안 사람들이 모두 그가 높은 자리에서 큰 일을 할 것을 기대했으나 그러나 그가 정승(相)으로 되었을 때는 이미 몸이 늙고

  병들었을 뿐더러 또한 대세가 어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침묵을 지키고 아무런 건의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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