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병사 2천 vs 여진 기병 17기 그 처절한 패배

 먼저 이걸 보시면 여진족의 전투 방식에 대해 알 수가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126년 1월 7일 종망이 이끄는 금군 6만이 개봉을 포위하고, 
굴욕적인 강화협상이 체결되자, 1월 17일 금군은 일시 포위를 풀게 됩니다.
이후 송의 서쪽에서 동진한 충사도가 이끄는 20만의 근왕병이 모이고 있었는데, 
공을 탐낸 요평중이 2월 1일 근왕병 1만으로 금군을 야습하게 됩니다.
야습이 실패하자 요평중은 그대로 내빼버렸고, 금군은 다시 2월 3일 개봉성을 재포위하게 됩니다.
어렵사리 다시 강화협상이 타결되었고, 
금군은 강화협상의 급보를 기병 17명을 선발하여 금국에 알리게 합니다.

한편 금군의 회군로에 있는 지방에는 조정에서 철군하는 금군을 공격하라는 흠종의 지시가 내려옵니다.
강화 체결 문서를 품에 지니고, 서둘러 북으로 달려가던 여진 기병 17명이 자주(磁州)를 지나는데
병마검할 이간(李侃)이 중앙군과 민병 2천 명을 이끌고 대항합니다.

하니 금 기병이 이렇게 말하지요.

금기병 : 님아~ 이미 화친했음둥! 나 지금 윗분들 서신 셔틀 중이니까 길 좀 텨주셈~
이간 : 올땐 니맘대로였지만 갈 땐 아니란다!
금기병 : 님아~ 우린 태어날 때부터 활 쏘고 사냥하던 몸이거든.
           그리고 빡치면 뵈는 게 없어
           들어봤지? 거란족 놈들이 우리보다 20배나 많았지만 그냥 씹어먹었거든!!!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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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처참하게 송군이 무너집니다. 
2천 명 중 절반 정도만 도주해서 살아남고, 1천 명은 서로 깔려 죽거나 창이나 화살에 죽었지요.

<1차 개봉 포위전 연표 : 출처 금사>

1125년

10

7

종한+희윤+여도 서경에서 출발
달라+사야 남경에서 출발
종망+도모 남경에서 출발

12

3

종한 삭주 함락

12

4

종망 백하에서 송 곽약사와 싸워 대파

12

9

송 곽약사 항복, 연산 평정

12

11

종한 대주 함락

12

19

종망 진정에서 송 5천군 격파

12

21

종한 태원 포위
야율여도 송 하동+섬서 원병 분하에서 격파

12

27

종망 신덕부 함락

1126년

1

2

종필 탕음 함락
대변 춘주 함락
적고보 여양 함락

1

3

금군 황하 도하

1

4

종망이 오효민을 사신으로 개봉에 보냄
휘종 태자에게 선위하고 개봉 탈출

1

7

금군이 개봉성 포위

1

8

송의 이절이 사신으로 와 사죄, 화친 애걸
종망이 수호 허락, 화친 조건 제시

1

12

강왕 조구, 소재 장방창 인질로 보냄

1

15

송이 서약서와 3진의 지도 바침
조카라 칭함

1

17

금군 포위 품

2

1

송 근왕병 요평중 40만명으로 종망 군영 습격, 격퇴

2

3

금군 다시 개봉성 포위
송과 화친 재성립, 인질 조추로 교대
금군 회군 시작

2

16

활주와 준주 송에 다시 내줌
종한 위승군, 융덕부 함락

3

17

종한 서경으로 돌아옴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1126년 2월 10일 기사中
二月十日丙午河北路兵馬鈐轄李侃以兵二千與金人十七騎戰敗績。
2월 10일 병오일(丙午日)에, 하북로(河北路) 병마(兵馬) 검할(鈐轄) 이간(李侃)이 병(兵) 2천(千)으로써
금인(金人) 17기(騎)와 함께 싸웠는데, 패적(敗績/패전)하였다.

和議已定金人遣十七騎持文字報其國中經由磁州
李侃以身為兵官且承掩殺之旨乃率禁軍民兵二千往擊之與十七騎相遇。
(初金人抵京師也。淵聖詔河北州軍略曰:
   種師道姚平仲遠提西兵以助天討雲:
   雲:
   深恐其宵遁令河北州軍盡行掩殺)
(송과 금 사이에) 화의(和議)가 이정(已定/이미 정해짐)하여 금인(金人/종망)이 (기병) 17기(騎)를 
지문자(持文/문서를 지님)하여 그 국중(國中/국내/금나라)에 보냈는데, 자주(磁州)를 경유(經由/거치어 지나감)하였다.
이간(李侃)은 몸을 일으켜 병관(兵官)이 되었는데, 또 엄살(掩殺/엄습하여 죽임)의 성지(聖旨/임금의 뜻, 조서)를 받아들였고,
이에 금군(禁軍)과 민병(民兵) 2천(千)을 인솔(引率)하여 왕격(往擊/가서 공격함)하여,
(금 기병) 17기(騎)와 함께 상우(相遇/서로 만남)하였다.
(처음에 (종망이 이끄는) 금인(金人)이 경사(京師/수도 개봉)에 이르렀을 때였다.
   연성(淵聖/송 흠종)이 조(詔)하여 하북(河北)의 주군(州軍)에 간략(簡略)하게 말하기를
   종사도(種師道)와 요평중(姚平仲)이 서병(西兵)을 원제(遠提/멀리서 이끌고 옴)하니 
   천토(天討/천자가 보낸 토벌군)를 도우라 일컬었다.
   (또) 일컫기를,
   그 밤에 (금군이) 달아날까 심공(深恐/매우 걱정함)하여 영(令)하니 
   하북(河北)의 주군(州軍)은 모두 엄살(掩殺/습격하여 죽임) 행(行)하라 하였다.

金人曰:
「不須用兵,今城下已講和矣。
   我乃被太子郎君差往國中幹事
금인(金人)이 말하기를
마땅히 용병(用兵)은 안되니, 지금 (개봉성) 성하(城下/성아래)에서 이미 (금과 송이) 강화(講和)하였다.
   우리는 이에 태자낭군(太子郎君)의 선택(選擇)을 받아, 국중(國中/금나라)에 간사(幹事/일을 맡아 처리함)하여 가고 있다.

侃不信欲與之戰
十七騎者分為三以七騎居前各分五騎為左右翼
而稍近後前七騎馳進官軍少卻左右翼乘勢掩之。
且馳且射官軍奔亂死者幾半。
金人退師。
이간(李侃)이 불신(不信/믿지 않음)하여 함께 싸우고자 하였다.
(금의) 17기(騎)가 3개로 나뉘어, 7기(騎)는 거전(居前/앞에 자리 잡음)하고, 
(나머지 10기는) 5기(騎)씩 각분(各分/각각 나눔)하여, 좌우익(左右翼)으로 하였다.
그리고 점점 가까이 온 후에, 앞의 7기(騎)가 치진(馳進/질주하여 나감)하였는데, 
(송의) 관군(官軍)이 소각(少卻/점점 물러남)하니,
(금 기병 10기) 좌우익(左右翼)이 승세(乘勢/기세를 탐)하여 엄습(掩襲/갑자기 공격함)하였다.
또 돌격(突擊)하고 또 쏘니, 관군(官軍)이 분란(奔亂/어지럽게 도망감)하니, 
(송 관군 중에) 사자(死者/죽은 자)가 기반(幾半/거의 절반)이었다.
(이에) 금인(金人)이 퇴사(退師/군을 물림)하였다.












P.S1) [임란 중 기병 6기?에 무너진 1만 조선군] 과 쌍벽을 이루네요. http://cafe.naver.com/booheong/59859

P.S2) 1592년 6월 15일의 조선군과 1126년 2월 10일의 송군이 전장에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막 달려들다가 가까이 접근하면 서로 놀라 모두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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