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의 중갑기병 투구 1부 (여진군을 창과 활로 죽이는 것은 불가하다)

 때는 [1차 개봉 포위전]이 끝나고, 재침입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1126년 5월이었습니다.

당시 항전을 주장하던 이강(李綱)에게 심관(沈琯)이 책략이 담긴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이 서신에는 금의 허실과 7가지 책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중 6번째에 여진군의 투구에 대한 내용이 나오길래 소개해 드립니다.

링크를 참고하시면 더욱 흥미로울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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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거란을 멸하다 3부 - 여진군의 전투 방식 http://cafe.naver.com/booheong/85824
송나라 병사 2천 vs 여진 기병 17기 그 처절한 패배 http://cafe.naver.com/booheong/87600
여진놈은 때려야 한다. 타여진(打女真) http://cafe.naver.com/booheong/85485
1126년1월 금군 1차 [개봉포위병력]과 [송근왕병]의 규모 http://cafe.naver.com/booheong/86934
무슨 여진족이 용, 호랑이, 물개, 원숭이냐? http://cafe.naver.com/booheong/87535
투구 따윈! 아골타 (만화) http://cafe.naver.com/booheong/8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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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권(卷) 30 1126년 5월 14일 기사中
沈琯與李綱書論金人兵虛實。
심관(沈琯)이 이강(李綱)과 더불어 서신(書)을 통해 금인(金人)의 병(兵)에 대한 허실(虛實)을 논(論)하다.
(중략)
六曰:金賊兜鍪極堅止露兩目所以槍箭不能入契丹昔用棍棒擊其頭項面多有墜馬請仿而行之欲令騎兵半持棍棒
여섯 번째로 말하길 금적(金賊)의 두무(兜鍪/투구)는 극(極)히 견고(堅)하여 양목(兩目/양쪽 눈)을 드러내는데 그치고,
이런 까닭으로 창전(槍箭/창과 화살)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글단(契丹/거란)이 예로부터 곤봉(棍棒)을 사용하여 그 두항(頭項/머리와 목덜미)을 타격(打擊)하였는데,
표면(表面)이 두터워 추마(墜馬/말에서 떨어짐)함이 있었습니다.
청(請)하건데, 이를 본떠(仿/모방模倣) 행(行)하여 장차 기병(騎兵)의 반(半)으로 하여금 곤봉(棍棒)을 쥐게 하여야 합니다.


알타이주립대 http://www.nsu.ru/aw/catalog.do?cid=25 의 가상박물관 링크에 있는
현 카자흐스탄 Krasnoyarovskogo, Shayginskogo 등지에서 발굴된 여진 11~12세기 철기병의 갑주, 투구 등이라고 합니다.

에 사진 몇개가 있네요.


















한줄요약하시는 짝다리 동관님의 말씀!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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