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종이야기(19) 진군의 북소리, 퇴각의 징소리

 요즘 고려 문종조 이야기를 틈틈히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문종조에 행한 군사훈련중에 군령을 전달하는 북과 징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고려사 열전 왕총지(王寵之) 中

 

문종 초에는 중추사(中樞使)로서 서북면중군사(西北面中軍使) 겸 행영병마사(行營兵馬使)가 되었고 수사공(守司空)·상주국(上柱國)을 덧붙였다. 곧이어 이부상서(吏部尙書)로서 도병마사(都兵馬使)가 되자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전(傳)에 ‘편안할 때에 위태로움을 잊지 말라.’는 말이 있고, 또 ‘적이 오지 않는 것을 믿지 말고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음력 8월마다 동반(문관)·서반(무반)의 관리들을 교외(郊外)에 모아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더구나 제위(諸衛)의 군사들은 나라의 간성[爪牙/국가를 보위하는 무력)]이니

마땅히 농한기를 택하여 전투상 기본 동작인 <징을 치면 후퇴하고 북을 치면 전진하며 깃발로 신호하는데 따라 움직이는 등>

모든 절차와 군사 훈련을 실시하여야 합니다.

또 군마(軍馬)를 한꺼번에 훈련시킬 수는 없으니 먼저 선봉에 설 기마병을 뽑아 한 부대마다 말 갑옷 열 착씩을 지급해 군사행동을 익히게 하고, 또 어사대(御史臺)·병부(兵部)·육위(六衛)로 하여금 훈련과 열병을 맡게 하소서.”

이에 왕이 그 건의를 받아들였다.



예로부터 병법에 북은 진군할때 사용하며, 징은 퇴각할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보통 진군 할때에는 보폭에 맞춰 북을 두드리게 됩니다.

적과 대전시에는 처음에는 북을 보폭에 맞게 두드리다가, 점차 빨리 북을 두드리면 전군이 그소리에 맞춰 달려나가게 되지요.

반대로 징이 울리게 되면, 반드시 퇴각해야 합니다.

야간에는 이와 반대로 징은 공격할때, 북은 퇴각할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후한말 촉의 제갈량은 징과북을 이용한 병법을 많이 활용했다고 하네요.

한예로, 기습공격으로 적에게 혼란을 줄시에는 징과북을 동시에 요란하게 쳤다고 하네요.



추가로 군령을 전달하는 것중에는 나팔과 깃발, 피리(초금)가 있는데요.


나팔 : 고려사를 살펴보면 원군으로 전장에 돌입할때나, 기습공격을 할시에는 나팔을 불어 적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는 

         구절도 나옵니다.

 

깃발 : 수신호로 군령을 내릴때나, 군의 진군방향을 알릴때 사용하였는데요.

         고려도경에 의하면 우선 2군6위의 장군들은 작은 깃발(小旗)로 군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또 현재의 대위급인 산원기두(散員旗頭) 또한 기패(旗旆)를 들고, 부대의 진퇴를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또 기병부대의 맨앞에는 기두(旗頭)가 있어, 작은 붉은 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뿔피리 : 초금, 가(笳)라고 하는데요,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에는 요고(鐃鼓)라는 군악대?가 있어서 
            피리, 징, 북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고려사에서는 주로 개선할때 피리를 많이 불었습니다.




한줄요약 : 북(진군) / 징(퇴각) / 나팔(기습) / 깃발(이동방향) / 피리(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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