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19) ─ 장작림 VS 풍옥상

 1924년 11월 17일, 장작림과 풍옥상이 단기서를 초청해서 천진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양홍지, 풍옥상, 장작림, 단기서, 노영상, 양우정, 장수원,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오광신이라는 사람입니다.



 오패부의 천하는 끝났습니다. 2차 직봉대전 기간 장작림은 오패부의 주위를 끌어내었고, 풍옥상은 북경 회군으로 상황을 종료시켰습니다. 손발이 퍽 맞아떨어졌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합작은 계속 이어지지 못합니다. 장작림 - 손문 - 단기서 - 풍옥상 등 처음부터 전혀 사상,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뭉친 이유는 단지 오패부 토벌 하나뿐이었기에, 본래부터 모순이 많았던 합작은 목적을 달성하자 자연스럽게 해체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작림과 풍옥상 모두 어서 빨리 세력을 넒히고, 패잔병을 끌어들여서 자기네 세력을 키우려고 마음 먹었습니다.풍옥상은 직예성과 북경을 확실하게 차지하려고 했고, 오패부의 패잔병들을 포로로 잡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장작림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당초 약속대로라면 "봉군은 절대 산해관을 넘어 입관하지 않는다." 였지만, 장작림은 직예성에 대한 탐욕으로 그 약속을 잊은듯 행동했습니다. 봉군의 장교였던 하주국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남하하여 진군하는 사정이 어렵게 된 후, 이윽고 직예를 놓고 장과 풍의 쟁탈이 벌어졌다. 먼저 풍과 같이 반란을 일으켰던 직예 독군 왕승빈이 천진 부근에서 오패부 부대의 잔병들을 접수헀다. 이곳에 기반을 확보하려는게 목적이었다. 이것은 봉군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작림은 즉시 직예 동부로 군대를 움직였습니다. 장종창이 2만명을 이끌고 란주를 점령했고, 장학량이 봉천군 주력 부대를 이끌고(총사령관은 장학량이지만 실제적으론 부사령관 곽송령이 책임을 맡음) 직예성의 동부 지역을 봉군의 통제 아래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입관 준비를 했는데, 참모인 양우정과 강등선이 단기서와 풍옥상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걱정 마라. 다 나에게 생각이 있으니. 군사적으로 상대가 안 되니 너희들이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보다야 한 수 위니 너희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11월 8일, 장작림은 마침내 당당하게 입관했습니다. 자동차가 5열이었고, 첫번째 행령은 진위대, 두 번째 행령은 보병대였습니다. 세 번째는 총사령부고 네 번째가 되어서야 장작림의 전용차 및 외빈 차량이었습니다. 다섯번 째는 군수용 차량이었습니다. 포귀경, 노영상, 탕옥린 등이 뒤를 따랐고 봉천 주재 일본, 영국, 독일의 영사단이 수행했는데 깃발이 펄럭이고 위세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렇게 장작림, 단기서, 풍옥상등은 천진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전후 처리 회의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장이 먼저 뒤치기를 칩니다. 한참 회의를 하고 있는데, 그날 봉군의 이경림 부대가 밑도 끝도없이 천진 이북의 풍옥상 부대를 습격해서 무장을 해제시켜버린 것입니다. 당한 것은 국민군 제3,제4 혼셩 여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직군의 무기들을 모두 거두어 들었습니다. 풍옥상은 이 소식을 듣고 경악합니다.


 풍옥상은 당황스러웠지만 계속 장작림, 단기서, 노영상 등과 일본 조계(租界)에서 머물며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사이에도 봉군의 이경림은 직예 독군 왕승빈의 제23사단, 그리고 제20사단 등을 맹렬하게 무장해제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견시키는 병력을 더 증가해서 천진 근처에 무려 7만여명의 봉군이 슬금슬금 나타나게 됩니다. 전부 장작림의 계략이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실력이 약세였기에 풍옥상은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단기서는 봉군 장령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장은 핑계를 대고 여기에 오지 않습니다. 단기서는 봉군에 호의적인 태도를 무시했지만 장은 짐짓 무시하면서 자기의 위치를 더 높이려던 것입니다.


 본래 풍옥상은 이 천진에 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회의를 해야 하긴 하는데 쑨원이 여기까지 오면 네명이 모여서 회의를 하자고 했지만, 단기서가 간곡하게 청하는걸 계속 거절하는것도 모양새가 안 좋아서 왔던 것입니다. 다음은 풍옥상의 기록입니다.




 ─ 단기서 선생은 자신이 할수 있는 성의를 다 하셨다. 그는 먼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의 처소를 준비해 놓았다. 하루는 이경림, 장학량, 양우정, 장종창, 양홍지 등을 청해 여러 명이 회식을 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흩어져 앉아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녀석들은 조곤과 오패부를 완전히 소탕하지도 못했는데 적을 눈아페 두고 당당했다. 상황이 많이 변했지만, 전일의 약속은 모두 팽개쳐 버리고 또다시 새롭게 아웅다웅하고 시라사욕에만 눈을 뜨고 있는것 같았다. 이들은 모두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쑨원 선생이 북상하는것을 성의를 다해 환영해야 하는데 도중에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 중 오광신은 고개를 숙이고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경박스럽게 말했다.


 "손악은 공산당원이다! 우리 모두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나는 이 녀석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은 모두 쑨원 선생의 북상을 열렬히 환영하고 국정을 주재하도록 해 자기들 모두 공산당원의 직함 하나씩을 더 얻으려는 수작이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당신은 손악 형을 높게 보시는군. 손악 선생은 매일 커다란 시거를 두 개나 피우는 데 이러한 공산당원 말인가?"


 이 말이 끝나자 모두 한마디씩 하고 웃었다.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 진실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모두 허튼소리들만 하고 앉아 있었다. 이렇게 회의는 끝났다.





 본래, 풍옥상은 북경 회군을 하면서 호경익 ─ 손악과 연대를 맺었습니다. 오광신은 봉군 제6군 부군단장 출신인데, 갑자기 아무 증거도 없이 손악이 공산당 운운하는것은 풍옥상에게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풍옥상은 성질아 닜지만 대충 농담으로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그리고 장작림은 이 회의에도 나오지 않고 무게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봉군이 풍군의 군대를 무장 해제시키고, 기세등등해서 사람을 억누르려 하는데 풍옥상이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할 것입니다. 풍옥상은 자신의 기록에서 "장작림이 관내 진입을 안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는데, 정말 마적질하던 짓거리" 라고 이때 장작림의 태도를 욕했습니다. 장작림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마적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봉군의 장교들은 풍옥상 살해 계획까지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 이경림, 장종창등은 연회에서 매복을 하고 있다가 풍옥상을 암살하려고 했는데, 풍옥상이 눈치를 차려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시도는 아무렴 장작림이라도 그렇게까지 막나가고 싶진 않아 계획은 유야무야되었습니다. 


 일단 이렇게 난리가 벌어지는 회의판에서 결론은 나와서, 장작림과 노영상, 풍옥상등은 모두 단기서를 임시 총통으로 내세웠습니다. 단기서는 북양 군벌 원로기도 했고, 무엇보다 단기서나 장작림이나 친일파 성향이라 장작림 입장에서는 협조를 끌어내기 좋았습니다. 풍옥상의 입장을 보자면, 풍옥상은 광동 접우의 쑨원을 매우 흠모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장작림에 비하여 자신의 실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쑨원에 대한 태도를 밝히기 어려웠습니다. 별 수없이 단기서를 지지해서 자신의 개성이 없는듯 위장술을 펼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패부가 쓸려나간 뒤 남은 직계 군벌들도 북양 원로 단기서를 지지하며 살길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단기서가 다시 한번 무대로 등장했습니다. 단기서는 장과 풍의 균형을 잘 저울질 하면서 영역을 나눴는데, 풍옥상은 이렇게 기반을 얻게 되긴 했지만 요지는 장작림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풍옥상은 자신이 상당히 위태롭다는것을 느꼈습니다. 장작림이 자신을 심하게 견제한 것입니다. 그래서 놀랄만한 일을 벌이는데, 모든 병권을 놓고 하야하겠다고 밝혔던 겁니다. 그리고 장작림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영 불편하군요. 산에 가서 정신 수양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홍군 지휘관 주덕의 이야기에 따르면, 산에 가서 수양한다는것은 군벌들이 지지 기반을 잃었을때 자주하던 짓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쉬면서 그럴듯한 글을 몇개 쓰고 ─ 글재주가 없으면 썩은 유생들에게 한두푼 주고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를 하고 ─ 시간을 끌어 명망을 다시 키운다음 다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당시 군벌이었던 주덕 본인이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할때, 주위에서는 만류하면서 저런 짓을 하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여하간 풍옥상은 장작림의 눈을 벗어나는게 목적이었는데, 풍을 계속 눈앞에 두고 감시하려던 장작림은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안 돼! 갈 수 없소! 당신이 이런식으로 간다면 내가 나쁜 놈이 되는것 아니오?"


 하지만 풍은 적당히 핑계를 대고 북경 근처의 산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풍옥상의 부하들이 장작림 암살 음모를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작림은 이런 방면에선 보통 사람이 아니고 수차례나 암살 음모에서 몸을 구해낸 사람입니다. 그는 천진 주변에 6만이 넘는 군대를 준비시켰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군사작전을 벌이도록 했습니다. 풍옥상의 동지인 호경익이 지방 군벌과 싸우면서 협조를 구하자 풍옥상은 악유준, 등보산이라는 두명의 부하에게 가서 도와주라고 명령했는데, 이들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지원하러 가지 않는 거냐?"

 
 "우린 안 갑니다. 그쪽 방면의 일은 작은 일일 뿐입니다. 우린 여기서 큰일을 해야 합니다."


 "큰 일이라는게 다 무엇이냐?"


 "장작림 부자를 처치하는 일입니다!"


 "뭐?"


 부하들은 감정이 격앙되어서 마구 말했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거사를 일으켜 장씨 부자를 잡아 죽여 화근을 없애려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이미 정확하게 정보를 접수했는데 장씨 부자가 북경에 와 있고 수행하는 병사도 많지않다고 들었습니다. 총사령부의 허락만 있으면 바로 일을……"

 
"안 되는 일이다!"


 풍옥상은 대경실색했습니다.

 "이 일은 절대로 실행될 수 없다. 너희들이 두 사람을 체포하면 북경 밖에 주둔하는 봉군들이 격분하여 모두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혼란에 빠지고 양쪽의 승부가 나지 않으면, 일본이 바로 이 기회를 틈타 동삼성을 차지한다! 일본인을 도와주는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야!"


 "봉군은 오합지졸입니다! 장씨 부자만 잡아버리면 봉군 장령들은 반드시 흩어집니다!"



 "글쎄, 안된다고 하잖느냐!"


 새벽 3시가 되도록 풍옥상은 부하들을 설득했고, 결국 간신히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장작림이 미리 군사를 충분히 배치해 놓은게 위협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위협을 느낀 풍옥상이 산에 들어가 은거를 하게 된 일인데, 그냥 아무 대책 없이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1924년 10월 25일, 풍옥상은 국가 대계를 위해 쑨원의 북상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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