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水神) 정성공(11) ─ 코미디

 

 
 
 희극적일 정도로 멍청한 바보들 속에서 상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죄목으로 비명을 지르던 코예트는 필사적으로 전시 평의회를 설득하여, 자신들에게 남은 자원들을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자고 말했습니다. 동원 가능한 전함들을 말하는것이었습니다. 코예트의 의사에 따라 3척의 배가 섬 북쪽으로 떠났습니다. 과거 스흐라벤라덴 호 등이 정성공의 군대를 피해 잠시 머물렀던 지역입니다. 그곳에서는 소수지만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네덜란드 병사들이 스페인에게서 뺏은 요새에 거주하고 있었고, 코예트의 명령에 따라 신선한 음식과 함께 기운이 있는 병사들을 제란디아 요새로 보내라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코예트는 정성공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작전도 시행해 나갔습니다. 2척의 전함을 파견하여 대만과 팽호열도 사이의 바다를 초계하게 하면서, 접근하는 모든 중국 보급선을 공격하도록 명을 내린것입니다.
 
 
 
 코예트의 지시가 이행되면서 상황은 다시 뒤바뀌어지게 됩니다. 포위한 자들이 포위당한 형국이 된 것입니다. 섬 내에 말라리아가 돌며 지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들 모두가 고생했지만, 식량이 부족해 굶는 병사들이 많은 정성공이 더욱 심각했습니다. 정성공의 부관 양영은 어떻게든 물자를 찾아내어 병사들에게 나눠주려고 고생했지만, 본국의 정태를 비롯한 정씨 일족은 정성공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몹시 노여워 하고 있던 정성공은, 네덜란드 전함들이 보급품을 실고 제란디아 요새에 전해주는것을 보자 울화통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포위당하고 있는 제란디아 요새도 그렇게 여유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11월이 되자 네덜란드인 외과의사 한 명이, 요새 내에서 중국인 포로 한명을 산채로 해부하는 야만스러운 만행을 벌입니다. 더구나 그것은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청교도 네덜란드인들도 점점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VOC는 애국심에 불타는 네덜란드인 청년들을 제외하고도, 다른 유럽 국가 출신들도 병사들로 고용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그들은 오직 돈과 계약을 위해서만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제란디아 요새에서 강제로 복무기관이 연장된 병사들은 분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임금도 체납된지 오래고, 막강한 정성공 부대를 상대로 목숨 부지하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병사들 중에 한명인 프랑스 출신 용병 아브랑 뒤피(Abraham Dupuis)는 대놓고 코예트에게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이거야말로 동인도회사의 죄수 꼴이군. 요새를 떠날 수 있게 해주시오."
 
 "떠나고 싶으면 떠나시오!"
 
 코예트도 자제력을 잃고 소리쳤습니다.
 
 "요새가 바다 위에 떠 있게 되는 날 말이오!"
 
 
 
 그런데 전혀 뜻밖의 희망이 또 다시 찾아오게 됩니다. 정말 상상도 못하던 도움이었습니다.
 
 
 청나라의 도움이었습니다.
 
 
 
청나라 복건 도독 이솔태(李率太)는 코예트에게 동맹 협상을 제시했습니다. 코예트가 대만 북쪽으로 보낸 선박들은 폭풍우에 기존의 항로를 이탈하여 하문 인근의 해안으로 말려들어가버렸는데, 놀랍게도 선원들은 퍽 따뜻한 환대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이솔태와, 또 그 뒤에 있는 경계무가 코예트에게 보내는 서한을 받아들고 왔습니다. 그 3번의 일원 중 한명, 경계무 말입니다.
 
 
 이솔태는 자신이 네덜란드 인들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인들이 하문으로 오면, 그 근방 정씨 일족의 수송 선단을 공격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정성공은 이 소문을 미리 파악하고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해안을 봉쇄했지만 서한을 실은 선박은 놀라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봉쇄망을 뚫었습니다.
 
 
 코예트는 의기양양하여 전시 평의회를 열었습니다. 사실 이솔태의 제한 자체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는데, 대략 그 실상은 적당히 네덜란드 선박을 빌려 본토의 정씨 집단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장사 부분에 있어서는 눈이 밝은 VOC 사람들은 이 의도는 알아차렸습니다. 다만 그래도 그들은 이를 희망찬 소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계획대로 들어간다면 정성공은 보급선을 완전히 차단당하게 될 것이고, 적어도 일부 병력은 철수시켜 그들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란디아 요새의 압박도 다소간 줄어들게 될 터이고 말입니다.
 
 
 전시 평의회는 압도적인 지지로 청나라와의 협조에 기댈것을 선택했고, 다음은 계획 수립에 착수했습니다. 우선 평의회는 전시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요새 내의 입을 좀 줄여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나 아이들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바타비아로 보낼 선박에 사람들을 태울 자리야 충분히 있었지만, 재산 물건은 아닙니다. 평의회는 수표를 발행하여 귀중품을 담보해주기로 했습니다. 신용하기 어려운 담보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선박을 지휘하는 일을 누구에게 맡기냐 하는것이 다음 문제였는데, 코예트를 지원하러 왔던 야콥 캐우가 자원했습니다.
 
 "내가 직접 바타비아로 가서 상세한 보고를 하는것이 VOC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네덜란드인들은 캐우의 이런 발언을 미심쩍게 여겼습니다. 코예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평의회의 모든 위원들이 그의 말에 크게 놀랐다. 그들은 캐우의 자원이 그가 맡은 임무와 그의 명예, 그리고 그의 평판에 비추어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지적했다. 그는 정성공의 포위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구할 임무를 받고 파견된 장군임에도, 지금은 휘하의 부대를 남겨둔 채 서한 하나 달랑 들고서 바타비아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다. 적을 향해 칼을 빼들거나 자신에게 부과된 막중한 임무에 걸맞는 중요한 행동은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캐우는 이런 비난에 발칵 화를 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나는 평의회의 결정을 무시 할 수 있는 '비밀 지령' 을 받았소!"
 
 "무슨 지령입니까?"
 
 캐우는 즉답을 피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밝혀도 되는 위치에 있지 않소."
 
 
 이러자 네덜란드 인들은 분개했습니다. 그들은 회의장에서 캐우를 쫒아내어버렸습니다.
 
 
 "정말로 '비밀 지령' 을 받았다면, 떠나도 좋다는 의회의 승인 따위도 필요 없겠군! 그럼 당장 꺼져버리시지!"
 
 
 협의는 소란이 벌어진 후에도 계속 되었고, 민간인 소개는 본토에서 정씨 집안을 공격하는 작전을 벌인 다음에 착수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솔태에게 5척의 선박을 급파할것을 결의했습니다.
 
 
 "내가 가겠소!"
 
 
 그렇게 말하며 또 자원한 것은 캐우였습니다. 그는 평의회의 결정이 옳았으며, 자신은 "VOC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열망과 열정을 보여줄 기회를 아직까지 가져 보지 모했다." 고 호소했습니다. 평의회는 아까보단 진정된 분위기가 되어, 캐우에게 새로운 지침을 내렸습니다. 기상 상태에 문제가 없는 한 본토로 직행 할것이며, 날씨가 좋지 않다면 악천후를 피해 팽호 열도에 정박해 있다가, 서둘러 이솔태와 회동하라는 지침이었습니다. 캐우는 동의했습니다.
 
 
 
 이제 제란디아 성의 사람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약간의 흥분 상태가 되어 이솔태와의 동맹을 이야기했습니다. 게획대로만 된다면 대만에서 정성공 세력을 축출하는것은 물론, 이를 계기로 청나라 정부와 보다 영속적인 협정에 나설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40년 전부터 꿈꿔왔던 일, 중국 본토에 거점을 마련하는 일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12월 3일, 모든 네덜란드 인들의 희망을 가득 실고 캐우의 함대는 출항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캐우는 대만만을 벗어나자마자 휘하 선장들에게 팽호열도로 항로를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당황한 선장들은 "지금 만큼 좋은 날씨도 없으며, 폭풍우를 만났을때에만 팽호 열도로 뱃머리를 돌려야 하는것 아니냐" 라고 항의했지만, 캐우는 이를 묵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장들은 팽호 열도에 닻을 내렸습니다. 선장들은 닻을 내리면서 수심이 너무 깊다고 따졌지만, 캐우는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결국 5척의 선박은 수심이 깊은 곳으로 정박지를 잘못 택한 나머지 파도에 치여 요동쳤으며, 결국 3척은 닻을 잃어버리기까지 하여 대만으로 회항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떠났을 떄와 똑같이 외곽에 중국인 부대가 진을 치고 네덜란드 수비대를 포위하는 제란디아 요새로 돌아왔습니다.
 
 
 평의회는 당연히 격분했습니다. 새 닻을 설치한 선박은 다시 팽호 열도로 떠나면서, 캐우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서 정성공의 주의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평의회의 말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팽호 열도에 돌아오자, 캐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캐우는, 2척의 선박을 이끌고 시암으로 도주해버린 것입니다. 공해상에서 캐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3척은 결국 다시 또 대만으로 귀환해서, 작전은 모조리 실패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만주족과의 협상은 우습게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고, 고성능 대포에 병력, 여러 물자를 가득 실은 전함 2척만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뒷 이이기를 해보자면 캐우는 시암에 도착하여, 마치 임무를 성공한 장군처럼 당당하게 굴며 큰 대접을 받았고 휘하 선박에서 스스로를 기리는 수 백 발의 예포를 쏘게 하는가 하면, 곤복을 입고 완전무장을 한 병사 예닐곱 명을 경호원 삼아 항상 대동했습니다. VOC는 마침내 그의 진상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여 시암을 떠나라고 요구했고, 바타비아로 돌아와서도 거짓말을 일삼다가 직무 유기가 밝혀져 직무 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바다의 여신까지 정성공을 돕는지 제란디아 요새는 침수되어버렸습니다.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네덜란드 인들은 물이 차오른 요새 안을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질퍽질퍽 걸어다녔습니다. 병사들은 피로에 찌든 400여명 정도가 고작이었고, 비축한 물자는 바닥을 보였습니다.
 
일전에 코예트에게 항의한 아브랑 뒤피는 자기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지금 이 상황은 딱 '요새가 바다에 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는 몇몇 용병과 함께 성을 빠져나가 정성공에게 투항했습니다. 코예트는 독일 사람인 한스 유르겐 라디스(Hans Jugen Radis)를 보내 그들을 데려오게 했지만, 라디스 역시 정성공에 투항하고 맙니다.
 
 
 그들은 현재 요새 내부의 상황을 정성공에게 줄줄히 불었습니다. 정성공은 크게 기뻐했지만, 요새 내부의 식량이 그래도 아직 봄까지는 견딜만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얼굴을 일그러뜨립니다. 하지만 라디스는 비록 계급은 상사였지만, 유럽에서는 여러 전쟁터를 경험한 백전노장이었습니다. 그는 성을 함락시킬 방법을 정성공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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