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四年春正月,如春州。
初,女直起兵,以紇石烈部人阿疏不從,遣其部撒改討之。
阿疏弟狄故保來告,詔諭使勿討,不聽,阿疏來奔。
至是女直遣使來索,不發。
천경(天慶/요 천조제의 #2 연호) 4년 (1114년) 봄 1월, 춘주(春州)에 갔다.
처음에, 여진(女直)이 기병(起兵/병을 일으킴)하니, 흘석렬부(紇石烈部) 사람 아소(阿疏)가 부종(不從/따르지 않음)하니,
그 부족에 살개(撒改)를 보내 토벌하게 하였다.
아소(阿疏)의 동생 적고보(狄故保)가 (요에) 내고(來告/고하여 옴)하니,
사신을 보내 조유(詔諭/조하여 타이름)하여 토벌하지 말라 하였는데,
불청(不聽/듣지 않음)하고 아소(阿疏)가 내분(來奔/도망쳐 옴)하였다.
이에 이르러 여진(女直)이 사신을 보내 수색하여 왔으나, 불발(不發/이루워지지 않음)하였다.
夏五月,清暑散水原。
여름 5월에, 산수원(散水原)에 청서(清暑/피서)하였다.
秋七月,女直復遣使取阿疏,不發,乃遣侍御阿息保問境上多建城堡之故。
女直以慢語答曰:
「若還阿疏,朝貢如故;不然,城未能已。」
遂發渾河北諸軍,益東北路統軍司。
阿骨打乃與弟粘罕、胡舍等謀,以銀朮割、移烈、婁室、闍母等為帥,集女直諸部兵,擒遼障鷹官。
及攻寧江州,東北路統軍司以聞。
時上在慶州射鹿,聞之略不介意,遣海州刺史高仙壽統渤海軍應援。
蕭撻不也遇女直,戰于寧江東,敗績。
가을 7월에, 여진(女直)이 다시 사신을 보내 아소(阿疏)를 취(取)하고자 하였는데, 불발(不發)하고,
이에 시어(侍御/임금을 모시는 근신) 아식보(阿息保)를 보내 경상(境上/변경 근처)에 성보(城堡)를 많이 세우는 연고를 물었다.
여진(女直)이 만어(慢語/거만하게 말함)하여 답하여 말하길
「만약 아소(阿疏)를 돌려보낸다면, 조공(朝貢)을 여고(如故/예전대로 함) 할 것이나,
부연(不然/그렇지 아니 함)하다면, 성(城)을 (보수하는 것을) 능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요가) 혼하(渾河)의 북쪽에서 각 군(軍)을 일으키고, 동북로(東北路) 통군사(統軍司)를 더하였다.
아골타(阿骨打)가 이에 동생 점한(粘罕)과 호사(胡舍) 등과 함께 모의(謀議)하여,
은출할(銀朮割), 이열(移烈), 누실(婁室), 도모(闍母) 등을 장수(將帥)로 삼고, 여진(女直)의 각 부족의 병사를 모아,
요(遼)의 장응관(障鷹官/매 조공을 담당하던 관리)을 사로잡았다.
급기야 영강주(寧江州)를 공격하였는데, 동북로(東北路) 통군사(統軍司)가 이문(以聞/임금에게 여쭘)하였다.
이때 상(上)은 경주(慶州)에서 사슴을 쏘고 있었는데, 듣고서도 대략 개의(介意/마음에 두고 생각함)치 않고,
해주자사(海州刺史) 고선수(高仙壽)를 보내 발해군(渤海軍)을 통솔하여 응원(應援/호응하여 도와 줌)하게 하였다.
소달불야(蕭撻不也)가 여진(女直)과 조우(遭遇)하여, 영강(寧江)의 동쪽에서 싸웠는데, 패적(敗績/패전)하였다.
冬十月壬寅朔,以守司空蕭嗣先為東北路都統,靜江軍節度使蕭撻不也為副,發契丹奚軍三千人,中京禁兵及土豪二千人,
別選諸路武勇二千餘人,以虞候崔公義為都押官,控鶴指揮邢穎為副,引軍屯出河店。
兩軍對壘,女直軍潛渡混同江,掩擊遼眾。
蕭嗣先軍潰,崔公義、邢穎、耶律佛留、蕭葛十等死之,其獲免者十有七人。
蕭奉先懼其弟嗣先獲罪,輒奏東征潰軍所至劫掠,若不肆赦,恐聚為患。
上從之,嗣先但免官而已。
諸軍相謂曰:
「戰則有死而無功,退則有生而無罪。」
故士無鬥志,望風奔潰。
겨울 10월 초하루 임인일(壬寅日)에, 수사공(守司空) 소사선(蕭嗣先)을 동북로도통(東北路都統)으로 삼고,
정강군절도사(靜江軍節度使) 소달불야(蕭撻不也)를 부도통(副都統)으로 삼아,
글단(契丹/거란)과 해(奚)의 군(軍) 3천 인과, 중경(中京)의 금병(禁兵)과 더불어 토호(土豪) 2천 인과,
별선(別選/특별히 선발함)한 각 지역의 무용(武勇/무예가 뛰어나고 용감함)한 2천 여인을 일으켜,
우후(虞候/절도사의 막료) 최공의(崔公義)를 도압관(都押官/절도사의 근위병을 이끄는 관명)으로 삼고,
공학(控鶴/숙위군)을 지휘(指揮)하는 형영(邢穎)을 부도압관(副都押官)으로 삼아,
인군(引軍/군을 인솔함)하여 출하점(出河店)에 진을 치게 하였다.
양군(兩軍)이 대루(對壘/보루堡壘를 구축하여 대치함)하였는데,
여진군(女直軍)이 혼동강(混同江)을 잠도(潛渡/몰래 건너 옴)하여, 요(遼)의 무리를 엄격(掩擊/갑자기 공격함)하였다.
소사선(蕭嗣先)의 군(軍)이 무너지고, 최공의(崔公義), 형영(邢穎), 야율불유(耶律佛留), 소갈십(蕭葛十) 등이 죽었으며,
그 사로잡힘을 면(免)한 자가 열에 일곱이었다.
소봉선(蕭奉先)이 그 동생 사선(嗣先)이 획죄(獲罪/죄를 얻음)할 것을 두려워하여,
문득 아뢰기를 동정(東征/동쪽을 정벌함)한 궤군(潰軍/궤멸한 군)이 이르는 곳마다 겁략(劫掠/겁탈하고 노략질 함)하니,
만약 (동정군을) 사사(肆赦/과실을 사면함)하지 않는다면, (동정군의) 무리가 근심이 될까 두렵습니다.
상(上)이 따르니, 사선(嗣先)을 단지 면관(免官/면직)할 뿐이었다.
각 군이 서로 일컬어 말하길
「싸우면 곧 죽음만 있으면서 공(功)은 없고, 퇴각하면 곧 살면서도 죄(罪)가 없다.」
이런 연고(緣故)로 군사(軍士)들이 투지(鬥志/싸울려는 마음)가 없어,
망풍(望風/멀리서 위세를 바라봄)하기만 하여도 분궤(奔潰/도망가 무너짐)하였다.
十一月壬辰,都統蕭敵里等營于斡鄰濼東,又為女直所襲,士卒死者甚眾。
甲午,蕭敵里亦坐免官。
辛丑,以西北路招討使耶律斡里朵為行軍都統,副點檢蕭乙薛、同知南院樞密使事耶律章奴副之。
11월 임진일(壬辰日)에, 도통(都統) 소적리(蕭敵里) 등이 알린락(斡鄰濼) 동쪽에 진영(陣營)을 세웠는데,
또 여진(女直)이 그곳을 습격(襲擊)하자, 사졸(士卒) 중에 죽은 자가 심(甚)히 많았다.
갑오일(甲午日)에, 소적리(蕭敵里)를 또 연좌(連坐)하여 면관(免官)하였다.
신축일(辛丑日)에, 서북로초토사(西北路招討使) 야율알리타(耶律斡里朵)를 행군도통(行軍都統)으로 삼고,
부점검(副點檢) 소을설(蕭乙薛)과 동지남원추밀사사(同知南院樞密使事) 야율장노(耶律章奴)를
행군부도통(行軍副都統)으로 삼았다.
十二月,咸、賓、祥三州及鐵驪、兀惹皆叛入女直。
乙薛往援賓州,南軍諸將實婁、特烈等往援咸州,並為女直所敗。
12월에, 함주(咸州), 빈주(賓州), 상주(祥州)의 3주와 더불어 철려(鐵驪)와 올야(兀惹)가 모두 배반하여 여진(女直)에 들어갔다.
을설(乙薛)이 빈주(賓州)를 구원하러 갔고, 남군(南軍)의 각 장수 실루(實婁)와 특렬(特烈) 등이 함주(咸州)를 구원하러 갔는데,
모두 그곳에서 여진에게 패배하였다.
--------------------------------------------------------------------------------
14부 요약
-1월 춘주에 감
-여진에서 아소 송환을 요구 함
-5월 산수원에 피서 감
-7월 여진에서 다시 아소 송환을 요구 함
-아식보를 보내 국경에 성보의 세우는 이유를 묻게 함
→ 아식을 송환하면 조공하겠다고 거만하게 말함
-천조제 동북로 통군사에게 군을 모으라 명령
-아골타 요의 매 조공관을 사로잡음
-여진군 영강주 공격 → 천조제 경주에서 사냥 중에 이를 듣고도 개의치 않음
-해주자사 고선수에게 발해병 3천으로 구원케 함
-소달불야가 여진과 영강주 동쪽에서 싸워 패전함
-10월 소사선을 동북로도통, 소달불야를 부도통으로 삼아 7천병으로 출하점에 진치게 함
→ 여진 혼동강을 넘어 급습함 → 전군의 30% 손실 됨
→ 추밀사 소봉선이 동생 소사선이 죄를 받을까 두려워 천조제에게 패군을 위로하라 건의
→ 소사선 면직 됨
→ 이후 요군의 투지가 상실됨
-11월 도통 소적리가 알린락에 진을 침 → 여진군 급습, 대패 → 소적리 면관
-야율알리타를 행군도통, 소을설과 야율장노를 부도통으로 삼음
-12월 함주, 빈주, 상주가 여진에 항복 함
-철려와 올야가 여진에 항복 함
-소을설이 빈주를, 실루와 특렬이 함주를 되찾기 위해 진군하였으나 모두 패함
-천조제 15부에서 계속됩니다.-
P.S) 본 글은 동의 없이 어느 곳에나 담아 가셔도 됩니다. 출처는 남겨주시면 고맙고요.^^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