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세기 여진 부족 2부 - 숙여진(熟女眞)(북여진北女眞)

 보통 금사 등을 보면 여진 부족은 크게 3개로 나뉩니다.

Ⅰ. 숙여진/계요적여진 (요 국적의 여진 부족)
Ⅱ. 생여진
Ⅲ. 오국부


위치 비정 출처 : 중화민국(中華民國) 만족협회(滿族協會), 바이두 백과사전, 금사, 요사 등

Ⅰ(2) 숙여진 中 요양 북부 일대, 북여진
-요양(遼陽)을 경계로 그 이북 주로 철령시, 개원시, 심양시 일대
-요의 소속으로 일반적으로 계요적여진(系遼籍女直)이라 불림


A. 청안(清安) : 현 요령성(遼寧省) 철령시(鐵嶺市) 창도현(昌圖縣) 노성(老城) 일대
B. 안주(安州) : 현 요령성(遼寧省) 철령시(鐵嶺市) 창도현(昌圖縣) 사면성진(四面城鎭) 일대
C. 함주(咸州) : 현 요령성(遼寧省) 개원시(開原市) 석탑촌(石塔村) 로성(老城) 일대
D. 동주(同州) : 현 요령성(遼寧省) 개원시(開原市) 남부 일대
E. 은주(銀州) : 현 요령성(遼寧省) 철령시(鐵嶺市) 은주구(銀州區) 일대
F. 요주(遼州) : 현 요령성(遼寧省) 심양시(沈阳市) 신민현(新民縣) 요빈탑(遼濱塔) 일대
G. 쌍주(雙州) : 현 요령성(遼寧省) 철령시(鐵嶺市) 창도현(昌圖縣) 유수보(榆樹堡) 일대
H. 용화주(龍化州) :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통요시(通遼市) 내만족(奈曼族) 일대
                              → 요사 병위지에 의하면 상경 예하로 장정 2천 명
                              → 용화주의 위치가 좀 생뚱맞긴 함

Ⅰ(3) 속요적여진(屬遼籍女真)
→ 위치는 생여진이나, 소속은 요 국적인 여진, 
    만족협회에서는 생여진도 아니고 숙여진도 아니다고 규정
A. 회발부(回拔部) : 현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휘남현(辉南县) 일대



아골타가 금을 건국하기 전의 여진 부족을 6개의 대부족, 77개의 소부족으로 구분하였습니다.
1. 완안부(完顏部) 예하의 12 부족
2. 오고륜부(烏吉論部) 예하의 14 부족
3. 흘석렬부(紇石烈部) 예하의 30 부족
4. 포찰부(浦察部) 예하의 7 부족 → 숙여진 中 알민수 포찰부+북여진
5. 도단부(徒丹部) 예하의 7 부족
6. 갈소관부(噶蘇館部) 예하의 7 부족 → 숙여진 中 남여진

※ 포찰부(浦察部)
이중 여진 제2 부족이라는 포찰부는 크게 
안출호수(按出虎水)와 알민수(斡泯水)/알니수(斡泥水) 포찰부로 나뉘는데, 
바이두 백과사전에 따르면 고리전(姑里甸) 포찰부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훗날에 알민수 포찰부는 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고 하네요.


A. 알민수 포찰부 : 현 길림성(吉林省) 사평시(四平市) 이통(伊通) 만족자치현(滿族自治縣)
                            → 훗날 현 길림성(吉林省) 길림시(吉林市)
B. 안출호수 포찰부 : 현 흑룡강성(黑龍江省) 합이빈시(哈爾濱市) 도외구(道外區) 
                               아십하(阿什河) 일대
C. 고리전 포찰부 : 현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宁安市) 동경성(东京城) 일대

이중 알민수 포찰부는 생여진이라고 치기에는 위치상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여진 제2의 부족이라는 타이틀은 아마 안출호수 포찰부를 말하는 듯싶습니다.

해서 위의 포찰부와 7개 부족은 알민수 포찰부 + 북여진으로 구분할까 합니다.
뭐 사실 포찰부와 북여진의 관계가 상하 관계는 절대 아니었을 겁니다.
북여진은 요의 영향하에 있었고, 포찰부는 생여진으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알민수 포찰부도 생여진의 중심부인 완안부와도 거리가 상당한데다가
또한 요의 영역인 황룡부와 영강주의 남쪽에 위치하니, 
지역적으로 생여진으로 분류하기는 좀 이상한 면이 있지요.

안출호수 포찰부

포찰부


생여진과 숙여진의 경계선
-3부 생여진 中 흑룡강성 일대에서 계속됩니다-


P.S) 위 지도의 요 경계 안에는 거란족+발해족+숙여진족+해족 등등 다양한 종족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숙여진의 지역으로 표기된 지역만 여진부족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니, 
       전체 영역이 숙여진의 땅이라고 볼 수는 없을듯싶습니다.
       일례로 동경, 현 요양시 일대는 발해인이 다수 거주하였습니다.
       각종 사서에 발해인이 최소 5천 호, 장정 3만 명 이상이 거주하였습니다.

P.S) 본 글은 동의 없이 어느 곳에나 담아 가셔도 됩니다. 출처는 남겨주시면 고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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