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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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慶元年。
秋九月,宋遣鄭允中、童貫使遼。
貫至,遼君臣相聚指笑曰:
「南朝人才如此。」
然天祚方縱肆,貪得中國玉帛珍玩,而貫所賚皆極珍奇,至運兩浙髹藤之具、火閣書櫃床椅等往獻。
天祚所以遺貫者,亦稱是。
貫使歸,至盧溝河,有燕人馬植者,得罪于燕,見貫,陳滅燕之策。
貫擕歸宋,改姓李,名良嗣,薦于朝,遂賜姓趙。
後天祚數移檄索取,貫諱不與。
復燕之議,蓋始此。
천경(天慶) 원년(元年) (1111년).
가을 9월에, 송(宋)이 정윤중(鄭允中)과 동관(童貫)을 사신으로 요(遼)에 보냈다.
동관(童貫)이 이르니, 요(遼)의 군신(君臣)이 상취(相聚/서로 모임)하여 지소(指笑/손가락질하며 비웃음)하며 말하길
「남조(南朝)의 인재(人才)가 이와 같구나.」
그러하여 천조(天祚)의 방(方/나라)이 종사(縱肆/종자縱恣/제멋대로 굼)하여,
중국(中國)의 옥백(玉帛/옥과 비단)과 진완(珍玩/진귀한 노리개)을 탐욕스럽게 득(得)하니,
이에 동관(童貫)이 준 것은 모두 극(極)히 진기(珍奇/진귀하고 기이함)하였는데,
양절(兩浙)에서 운반하여 이른 휴등(髹藤/옻칠한 등나무)으로 만든 그릇과
화각(火閣/불을 뜨겁게 넣은 집)에서 만든 서궤(書櫃/책을 넣는 궤짝)나 상의(床椅/평상과 의자) 등을 가서 바쳤다.
천조(天祚)가 동관(童貫)의 무리가 남기고 간 까닭으로, 역시 이를 칭찬(稱讚)하였다.
동관(童貫)의 사신 일행이 귀환(歸還)하여, 노구하(盧溝河)에 이르렀는데, 연인(燕人/연 지역 사람) 마식(馬植)이란 자가,
연(燕)에서 득죄(得罪)하여, (도망가) 동관을 만나, 연(燕)을 멸(滅)할 책략(策略)을 말하였다.
동관(童貫)이 (마식을) 이끌고 송(宋)에 돌아와, (동관이 마식을) 이씨(李氏)로 개성(改姓)하고, 이름은 양사(良嗣)라 하여,
조정(朝廷)에 천거(薦擧)하니, 마침내 (휘종이) 조씨(趙氏)를 사성(賜姓/임금이 성을 하사함)하였다.
후(後)에 천조(天祚)가 수차례 이격(移檄/급하게 격문을 돌림)하여 색취(索取/수색하여 취함) 하였는데,
동관(童貫)이 숨기고 주지 않았다.
연(燕)의 회복에 대한 논의(論議)가, 모두 이에 시작되었다.
天慶二年。
春,天祚如混同江釣魚,界外生女真酋長在千里內者,以故事皆來會。
適遇頭魚酒筵,別具宴勞,酒半酣,天祚臨軒,使諸酋次第歌舞為樂。
次至阿骨打,端立直視,辭以不能,諭之再三,終不從。
天祚密謂樞密使蕭奉先曰:
「阿骨打意氣雄豪,顧視不常,當以事誅之,不然,恐貽後患。」
奉先曰:
「阿骨打誠服本朝,殺之,傷向化之心。設有異志,蕞爾小國,何能為?」
阿骨打有弟姪曰吳乞馬、粘罕、胡舍輩,天祚歲入秋山,數人必從行,
善作鹿鳴,呼鹿使天祚射之,或刺虎,或搏熊,天祚喜,輒加官爵,後至圍場司差遣者有之。
阿骨打會釣魚而歸,疑天祚知其意,即欲稱兵。
是年秋,遂併吞諸鄰近部族,有趙三、阿鶻產大王者,拒之不從,阿骨打擄其家。
二人來訴於咸州詳穩司,送北樞密院。
時樞密使蕭奉先,本戚里庸才,懼其生事,但作常事以聞。
天祚指揮就送咸州取勘,欲使自新,阿骨打竟托病不至。
천경(天慶) 2년 (1112년).
봄에, 천조(天祚)가 혼동강(混同江)에 가 조어(釣魚/구어鉤魚/물고기를 낚시 함)하였는데,
계외(界外/관할 구역 밖)의 천리내 생여진(生女真) 추장(酋長)들이, 고사(故事)에 의해 모두 내회(來會/와서 모임)하였다.
(여진족 추장들을) 맞이하여 두어(頭魚/압록강 등에서 서식하는 대형 어종)의 주연(酒筵/술자리)에,
(추장들을) 별구(別具/구별하여 갖춤)하여 연로(宴勞/잔치를 열어 위로함)하였는데,
술이 반감(半酣/거나하게 취함)하자, 천조(天祚)가 임헌(臨軒/임금이 평평한 탁자에 앉음)하여,
각 추장(酋長)들로 하여금 차제(次第/차례)로 가무(歌舞/노래하고 춤춤)하여 (천조를) 즐겁게 하게 하였다.
아골타(阿骨打)의 차례에 이르자, 단립(端立/단정端正하게 서있음)하여 직시(直視/똑바로 바라봄)하며,
불능(不能/할 수 없음)의 이유로 사양(辭讓)하니, 재삼(再三) 타일렀으나, 끝내 부종(不從/따르지 않음)하였다.
천조(天祚)가 은밀히 추밀사(樞密使) 소봉선(蕭奉先)에게 이르러 말하길
「아골타(阿骨打)의 의기(意氣/기상氣像)가 웅호(雄豪/용감하고 호걸스러움)하고,
고시(顧視/돌이켜 봄)하면 불상(不常/예사롭지 않음)하니, 마땅히 이 일로 주살(誅殺)하여야 하며,
불연(不然/그렇지 아니 함)하면, 후환(後患)을 남길까 두렵다.」
소봉선(蕭奉先)이 말하길
「아골타(阿骨打)는 본조(本朝)에 성복(誠服/심복心服/心腹)하니, 죽인다면, 향화(向化/귀화歸化)의 마음이 상(傷)합니다.
설사(設使) 이지(異志/딴 마음)가 있다 한들, 촬이(蕞爾/아주 작음)한 소국(小國)이, 어찌 능히 (배반을) 하겠나이까?」
아골타(阿骨打)에게 제질(弟姪/동생과 조카)이 있었는데 오걸마(吳乞馬)와 점한(粘罕) 및 호사(胡舍)의 무리를 말하며,
천조(天祚)가 해마다 추산(秋山)에 들어갈 때, (오걸마 등) 수인(數人)이 반드시 종행(從行/뒤를 쫓아감)하여,
녹명(鹿鳴/사슴 울음소리)를 잘 내니, 사슴을 불러 모아 천조(天祚)에게 쏘게 하거나,
혹(或)은 호랑이를 찔러 죽이거나, 혹(或)은 곰을 사로잡으니, 천조(天祚)가 기뻐하여, 문득 관작(官爵)을 더하였는데,
후(後)에 위장사(圍場司/사냥터를 관리하는 관부)에 이르러 (요의 관직을) 차견(差遣/사람을 시켜 보냄)하는 자가 있었다.
아골타(阿骨打)가 회조어(會釣魚/천조제와의 낚시 모임)에서 돌아와,
천조(天祚)가 그 뜻(배신하려는 마음)을 알았음을 의심(疑心)하여, 곧 칭병(稱兵/거병擧兵)하고자 하였다.
이해 가을에, 드디어 각 인근(鄰近) 부족(部族)을 병탄(併吞/아울러 삼킴)하니,
조삼(趙三)과 아골산(阿鶻產) 대왕(大王)이란 자가 있어, 거부(拒否)하고 불종(不從/따르지 않음)하니,
아골타(阿骨打)가 그 가족(家族)을 사로잡았다.
두사람이 함주(咸州)의 상온사(詳穩司/요의 중앙과 지방에 설치된 관부)에 와 호소(呼訴)하니,
(두 사람을) 북추밀원(北樞密院)에 보냈다.
이때 추밀사(樞密使)는 소봉선(蕭奉先)인데, (소봉선은) 본시 척리(戚里/외척)로 용재(庸才/평범하고 졸렬한 재주)하여,
그 일이(천조제의 꾸짖음) 생길까 두려워하여, 단지(但只) 상사(常事/일상사, 흔히 있는 일)로 만들어 이로써 전하였다.
천조(天祚)가 지휘(指揮)하여 끝내 함주(咸州)에 취감(取勘/조사調査)하라 보내고,
자신(自新/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함)하게 하니, 아골타(阿骨打)가 마침내 탁병(托病/병을 핑계 삼음)하여 이르지 않았다.
*두어(頭魚) : 압록강 등에서 서식하는 대형 어종
*요사에는 두어연(頭魚宴)이라는 고유 명사로 기록함.
*완안부 여진인은 요의 관직을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음.
*거란국지 : 오걸마(吳乞馬), 점한(粘罕), 호사(胡舍)
→ 요사 : 오걸매(吳乞買), 점한(粘罕), 호사(胡舍)
→ 금사 : 오걸매(吳乞買), 종한(宗翰)/점한(粘罕),
天慶三年。
春三月朔,日食。
阿骨打將帶五百餘騎,徑赴咸州詳穩司,吏民驚駭。
明日,擁騎赴衙引問,與告人趙三、阿鶻產等並跪問於廳下,阿骨打隱諱不伏供,祈送所司取狀。
一夕,領從騎歸去,遣人持狀赴詳穩司云:
「意欲殺我,故不敢留。」
自是追呼不復至,第節次申北樞密院,遼國亦無如之何。
천경(天慶) 3년 (1113년).
봄 3월 초하루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아골타(阿骨打)가 장차 500여 기(騎)를 데리고, 함주(咸州) 상온사(詳穩司)에 경부(徑赴/곧장 다다름)하자,
이민(吏民/관리와 백성)이 경해(驚駭/몹시 놀람)하였다.
명일(明日/다음날)에, (아골타가) 옹기(擁騎/말을 끼고 호위 함)하여 관아(官衙)에 다다라 인문(引問/질문을 끌어 냄)하니,
고(告)한 자인 조삼(趙三)과 아골산(阿鶻產) 등과 함께 모두 청하(廳下/관청의 아래)에서 꿇어앉아 (요의 상온이) 문초하였는데
아골타(阿骨打)가 은휘(隱諱/숨기고 꺼림)하여 복공(伏供/굴복하고 받듦)하지 않으니,
소사(所司/관부의 2번째 관리)를 보내 상황(狀況)을 취하길 기(祈/구求함)하였다.
일석(一夕/하루 저녁)에, (아골타가) 따르는 기(騎)를 거느리고 돌아가 가버렸고,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을 보내 상온사(詳穩司)에 다다라 말하기를
「(상온사가) 나를 죽이고자 하는 뜻이 있어, 이런 연고(緣故)로 감(敢)히 머물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추가(追加)로 불러도 다시 이르지 않았고,
때마다 북추밀원(北樞密院)에서 거듭하여 머뭇거리니, 요국(遼國) 또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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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요약
-1111년 9월 송에서 정윤중과 동관이 사신으로 옴 → 천조제가 동관을 비웃음
→ 진귀한 보물을 많이 바침 → 동관이 귀국하다가 연사람 마식을 만남
→ 마식이 연지역의 회복책을 말해줌
→ 천조제가 마식을 수색함 → 동관이 숨겨 줌 → 데리고 귀국하여 이양사로 개명
→ 이양사가 휘종에게 여진을 끌어들여 요를 쳐 연지역을 탈취하자고 제안
→ 휘종 기뻐하며 조씨성을 하사
-1112년 2월 천조제가 혼동강에서 낚시할 때 인근 여진족 부족장이 내조함
→ 두어연에서 천조제가 추장들에게 춤추라 명령
→ 아골타 거부 → 다음날 천조제가 아골타를 죽이려 함 → 소봉선이 만류
→ 오걸매 등이 사슴, 호랑이, 곰 등을 잡아 바쳐 천조제를 기쁘게 함
→ 완안부로 돌아간 아골타는 병을 핑계로 불러도 다시 오지 않음
→ 아골타가 각 부족을 규합하여 병력을 모음
→ 조삼과 아골산이 거부 → 아골타가 그 가족을 사로잡음
→ 조삼과 아골산이 함주에 호소함
→ 북추밀원 추밀사 소봉선이 아골타를 살려 준 것에 대해 천조제에게 문책 당할까 봐 중간에서 별일 아니라고 꾸밈
→ 천조제 함주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명령
-1113년 3월 아골타가 500기를 이끌고 함주에 갑자기 나타남
→ 함주 상온사에서 아골타와 조삼+아골산이 무릎 꿇고 문제 해결을 청함
→ 함주 상온사 아골타를 문책함 → 아골타 불복하고 야밤에 돌아감
→ 아골타가 요 조정에 상온사가 자기를 죽이려 하자 떠났다고 전함
→ 함주에서 아골타에게 계속 출두 명령 내림 → 아골타 다신 오지 않음
→ 함주에서 조정에 보고해도 중간에 북추밀원에서 머뭇거림
-거란국지 3부에서 계속됩니다.-
P.S) 본 글은 동의 없이 어느 곳에나 담아 가셔도 됩니다. 출처는 남겨주시면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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